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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05. 2024

허들을 넘으며

통제라는 불안

어느 날, 잠이 덜 깬 채 식탁에 앉은 사춘기가 멍하니 턱을 괴고 있었다.

'밥상에서 턱 괴는 거 아니야!'

하마터면 이 말을 할 뻔했다. 그 말이 실제로 튀어나오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식탁에서 턱을 괴면 왜 안 된다고 했더라?     

"엄마 빨리 죽으라고 고사 지내니?"


턱 괴는 것이 좋은 자세라 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 엄마의 매운 표현 덕분에 나는 턱을 괴려다가도 그 말이 떠올라 손을 내리곤 했다. 그 외에도 식사 중에 왜 말하면 안 되는지, 베개는 왜 세로로 세우면 안 되고, 문지방을 밟으면 왜 복이 달아난다는 건지, 과거엔 이유도 알 수 없이 금기된 것이 많기도 했다.     


그것은 모두 형체가 없어 더욱 두려운 불안이었다. 때론, 너무 불안한 나머지 그걸 직접 찾아내 확인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어린 나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나온다는 뱀의 생김새를 자주 상상했었다. 큰 뱀일까? 작은 뱀일까? 또, 문지방을 밟으면 달아난다는 '복'이란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문지방 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막연한 통제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내면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때때로 삶의 기준을 흔들고, 아귀가 맞지 않는 경첩처럼 삐걱대기 일쑤였다.     


한 번은 대학에 다니던 큰딸에게 화장하기를 권했다가 딸이, 왜 여자는 화장해야 하냐고 되물은 일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말 왜 그래야 하지?’ 변변히 할 말이 없어 막막했었다.

내가 평소 불이익을 받는 여성 약자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딸에게 아무렇지 않게, 여자애가 좀 꾸미고 다니라는 망발을 한 것이다.


거기엔 여자와 남자의 위계가 명확했던 내 어린 시절 환경이 큰 몫을 차지했다. 더구나 그것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 같은 여자인 엄마였던 사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통제는 한 존재에 깊게 뿌리내렸고, 삶은 지뢰를 피하듯 불안의 허들을 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때는, 수많은 기우와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을 물려준 걸 원망도 했다. 하지만 어린 내게 산처럼 큰 어른이던 내 부모도 그때 불안했기 때문이란 걸 이젠 알 것 같다.


나 역시 양육자가 되고, 산처럼 큰 책임감과 그 무게에 눌려 두려움마저 느꼈으니까. 그럼에도 그날 아침, 나도 모르게 사춘기에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말을 할 뻔했다.


자녀에게 양육자의 말과 행동은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소리 없이 젖어 들어 조심스럽다. 습관 들여 좋지 않은 행동은 정확한 근거를 들어 알려주기로 다짐했다.


여전히 식탁에서 턱을 괸 채 잠을 쫓는 사춘기의 맞은편에서 나는 턱에 꽃받침을 하고 마주 앉았다. 우린 말없이 서로 마주 보다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무엇보다 사춘기가 ‘나다움’을 지키며 성장하길 바랐다. 우린 손을 잡고, 우리 앞에 놓인 허들 하나를 가볍게 넘었다.

사춘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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