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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16. 2024

삶에, 예스

#20. 에필로그

평온한 움직임

마지막.


그날 저녁

네 사람의 식탁에서

인영의 이야기와


독백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어떤 이에게 삶은 너무 큰 고통이라,

무난히 평범하게 살아온 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어려웠죠.


또 한 편

들여다볼수록 표현하기 힘든 내 안의 진실,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각자가 자기 안에서 찾을 이며

자기 삶으로 경험하여 온전한데,

굳이 내가 보태어 말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나는 왜 표현하고 싶어 하지?'


이 질문이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

가지가 됐어요.


나의 영혼이 원하니 그렇게 하자.

하고 싶은 게 아니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영혼에게

큰 아픔을 겪어

큰 기쁨을 얻고자 용기를 낸 그들이기에,


기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약속이지만

감내하기로 결심한 그들이기에,


당신은 참 멋지다고...


설사 그들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여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들로

아낌없이 응원해 보자.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자.


모두에겐 각자의 아픔과 시련이 있어요.

자기만의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꼭 풀고 싶은 숙제가,

유난히 신경 쓰이는 주제가 있어요.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알고 있잖아요.

그 눈물이 믿음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나를 믿기로 했어요.


약점이라 아프고

그래서 더 들여다보는 주제에 힌트가 있어요.


반복해서 질문하며 파고들었던 개인의 문제가

구체화되고, 구체화되어... 결국 보편화될 때

아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돼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잘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그래서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지 않다면

그냥 살지, 죽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삶에 대한 욕심이 컸어요.

최고로 완벽한 삶을 꿈꿨어요.

 

그런 저에게 시련은

크고 작은 어려움 그 자체보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오면 안 된다는

강한 저항감이 만들어내는 것이었죠. 


고통 없는 삶은 없어요.

 

고통이 없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였어요.

 

해결되지 않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았더라도

파국이 아니며

 

때로 비난받고

때로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체로 충분한 것이었어요.

 

저항하지 않을 때

고통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러면서 이 어려운 숙제들이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며,

삶이 알려주는 힌트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결코 완전하지 않은

그렇기에 완전한


'자기완성'의 길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걷고 있죠.


치트키 있나요?

없으면 만들어둬요.


혼란과 어둠에서 허우적거릴 때

늪에서 빠져나올 있는

강력한 주문.


저에겐 그게 '예스'에요.

 

수없이 많은 예스를 하고 나서야

소란한 마음이 잔잔해지고

고요한 그대로가 펼쳐졌어요.

 

처음 예스를 말했을 때 저는

내 안에 돋아있는 가시를 보았어요.

 

차마 안을 수 없어

수시로 찔리고

그럴수록 더욱 깊이 박혀

보기에도 아픈 가시였죠.

 

빼달라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깊이 박히는 것 같았죠.


나중에야 알았어요.


가시와 함께 살며

정말로 중요한  배웠음을.


가시를 통해

교만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고

수용과 용서와 사랑을 배웠어요.


이젠 그래요.

제 안의 어린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믿지는 않고 그저 받아들여요.


그런 생각하면 못쓴다.

그런 생각은 나쁜 거다.

판단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받아줘요.


바다가 파도의 모양을 가리지 않듯

다시 바다로 흡수되어

고요해질 때까지_


태어난 것은 축복이에요.

고통도 축복이에요.

사랑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게 나의 참된 본성임을 깨달을 기회를

삶을 통해 얻었으니까요.

자기 사랑이란 말만큼

뻔해 보이는 말이 없었다.

나를 믿으란 말만큼

뜬구름 같은 소리가 없었다.


그때는 '사랑'같은 단어는

촌스러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좇아

다짐하고 채찍질하고

실망하고 다시 또 결심했다.


'남들에겐 당연한 게

나는 왜 이리 쉽지 않지?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걸까?

무슨 의미가 이렇게 많고

뭐가 이리 심각한 걸까?'


빛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암흑의 골짜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이후

진정한 나다움을 만났고,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되는

독창성을 드러내는 일은

숨김없이 과감해질 용기와

본래적 순수함이 필요하단 걸 알았다.


한참 후에 알았다.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필요한 시기에 가장 적절하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나타나는

완벽한 현실.


삶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본래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


본래의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였다.

두려움도 아픔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었다.


미워하고, 갈망하고,

괴로워하는 이유는

어둠을 통해 빛을 알듯

두려움을 통해 사랑을 알게 하려고


그러니 삶은,

멀리서 보면 늘 좋아지고 있는 중.


균형이 필요했다. 


훌륭해야 하고, 특별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저편에 반대의 생각을 앉혔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비효율적이어도 괜찮아.

의미가 없어도 괜찮아. 도움이 못되어도 괜찮아.


인정하기 싫었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안간힘을 썼다.


한쪽으로 치우쳐 멈춰 있던 시소는

균형을 찾으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착과 저항 없는 평온한 움직임이었다.


...

자초해서 걸은 좁은 길이

쉽진 않지만 재미있었다.


가끔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롭기도 했지만

할만한 고통이었다.


그때의 내가 그랬듯

아직 사랑을 믿지 못할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너도 사랑해.

질투, 혐오 무엇이든 감싸 안을 수 있어.

고통, 두려움 무엇이든 껴안을 수 있어.


네가 곧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다 녹이기 때문에.





삶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잘 먹고 잘 사는 거?

성공하면 좋겠죠.

돈 많이 벌어서 구속 없이 자유롭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거?


저는요.

자신의 실상을 구현하는 일 같아요.

본래로 자기로 돌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참 자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거요.


어렵긴 어렵네요.

하지만 분명한 건

자유로워지고 있으며

가벼워지고 있다는 것


그게 나다움이라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되고 있다는 것!


그건 정말로 행복한 경험이에요.

 

<평온한 움직임> 연재를 마칩니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 계속해서 배우고 덧붙이고 수정하며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가려 합니다. 그동안 사건도 배경도 없는 소설을 너그러운 눈으로 봐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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