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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28. 2024

군대 못 가는 몸

대신, 장애인 등록을 하다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징병검사, 만 19세가 된 나무에게도 그 시간이 왔다. 2015년 10월 30일, 의정부 병역판정검사장에 갔다. 전화번호부 4권 분량의 진료기록을 들고. 여기에는 그동안의 입퇴원 기록, 종합심리검사 결과지 등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2008년 2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조현병과 함께 한 역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나무와 나는 검사장 입구에서 헤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나무가 혼자 해야 한다. 나무는 신체검사를 하고, 인성검사와 군의관 면담까지 마치고 나왔다. 징병검사 결과는 면제. 예상한 결과였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군대에 갈 수 없는 몸을 가졌다고 국가가 확인해 주니 왠지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징병검사를 마친 기념으로 부대찌개를 먹기로 했다. 의정부 하면 부대찌개 아닌가. 한국전쟁의 씁쓸한 유산인 부대찌개. 우리는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고 오늘의 씁쓸함을 잊기로 했다. 

     

징병검사가 예상대로 진행된 후, 다음 순서로 장애인 등록을 하기로 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지원보다 낙인이 크다고 담당교수는 걱정했다. 별 혜택이 없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냐며. 하지만 우리는 하겠다고 했다. 계속 아플 거라면, 정신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면, 장애인 등록을 하고 나무가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서비스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우리 부부가 짊어진 돌봄을 국가와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주민센터에 갔다. 의사소견서와 진료기록을 첨부해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정도에 대한 심사를 거쳐 장애판정을 받았다. 정신장애 3급. 정신장애는 다른 장애와 달리 1급에서 3급까지 분류된다. 정신장애는 모두 중증장애다. 이로써 나무는 정신장애 3급,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이제 나무는 지하철과 기차 승차권을 할인받고, 영화관람이나 박물관 출입 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대학을 장애인 전형으로 간 것은 아니다. 정신장애 학생을 뽑는 대학은 없었다. 나무는 일반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다니면서도 장애인이라고 등록금 혜택을 받는 것도 없었다. 등록금 지원은 1~2급 장애학생만 해당되었다. 또한 대학 내에 있는 장애학생지원센터도 정신장애 학생은 대상이 아니었다. 신체장애 학생들만 부분적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학생상담센터는 심리상담이나 진로상담을 하는 곳이지 조현병 환자를 지원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등록을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장애인 등록을 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을 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할 수 있었고 사례관리를 받을 수 있었다. 사례관리사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나무가 카페에서 일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었고, 병원기반 동료활동가로 일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것은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병을 알리고 장애등록을 하고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우리의 요청에 응답했다. 장애인 등록은 나무가 덜 외롭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되었다. 


그렇게 나무는 자존하고 자립하기 위한 길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병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도 있고, 그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고통은 길지만, 그래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작은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고 말이다. 예를 들어 의정부에 가면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는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 25화로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내용이나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잘 담아서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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