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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n 11. 2024

기적은 있다

처음, 혼자 떠나는 자전거 여행

“손가락이 퉁퉁 부었네.”   


나무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나는 혼잣말을 한다. 원룸 이사쯤이야 싶지만 웬걸 원룸이사야말로 포장이사도 어렵고 직접 정리해야 하는 이사라 더 힘들다. 나무의 도쿄 어학교 시절부터 대학 다니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7번째 원룸이사다. 언제쯤 이 노동을 그만하려나.    

 

나무는 자취생활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3~4일은 집에서 자는 데다가 아직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은 나무의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가 혼자 지내는 것을 외로워했고, 나무의 컨디션을 매일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라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나무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팔 것은 팔고, 집으로 가져올 것은 싼다. 1.5톤 트럭을 불러 기사님과 함께 이사를 한다. 그나마 수월하다. 5월 안에 이사를 하기고 했으니 이삿날은 5월 31일로 정했다. 이사 며칠 전부터 나무집을 오가며 하루는 주방, 하루는 옷장, 하루는 욕실, 이렇게 구역을 나눠서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전에는 나무 짐이 들어올 수 있게 우리 집을 정리했다.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묵은 이불을 버리고, 헌 옷을 정리하고, 책도 팔 것과 소장할 것으로 구분하고, 주방 싱크대 안을 정리했다. 두 집 살림을 합치니 일이 많다. 이러니 손가락 관절이 아플 수밖에.  


 “자전거 여행 다녀올게요.”

   

이사 후, 며칠 동안 중고 거래할 것은 하고, 남은 짐을 정리했다. 거실 가득이던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이 6월 5일. 나무는 교육이 없는 금요일을 포함해 나흘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 중이었다.

   

자전거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양평으로 해서 여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올 때는 시외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돌아올 계획이란다. 그래. 잘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혼자 자전거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다. 아빠와 함께 갔었는데 혼자 도전해 보겠다니 당연히 응원해야지. 나무는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이 묵는다는 숙소를 예약하고, 자전거 코스를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일기예보도 확인하고. 갈아입을 옷과 먹을 약을 챙겨 가방도 미리 싸둔다.      


다음날 오전, 나무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여행을 떠났다. 혼자 자전거 여행이라니. 지난해 유월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나무가 아프고 나서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기적은 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양평에 도착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다른 여행자와 동행했단다. 밥도 같이 먹었다고. 약 먹고 일찍 자야겠단다.     

 

지난 1년 동안의 자취생활은 빨래, 청소, 설거지 등 생활기술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가 의젓해지고 씩씩해졌다. 혼자 자전거 여행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2박 3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도 어쩌면 지난 1년의 자립 연습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발 한발 또 나아간다.


기적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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