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을 마감하며
바람을 느끼며 다정함을 나눠요. 그렇게 살아가요.
“글 잘 읽고 있어요.” 뜻밖의 인사였다. 아껴가며 읽는다는 독자, 매주 연재를 기다린다는 독자도 있다. 브런치북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주간지 <한겨레 21> 연재 제안이 들어왔고, 출판계약 제안도 들어왔다. 브런치북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를 계기로 나에게 글 쓰는 사람, ‘작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이번 주에는 글쓰기 강의도 하기로 했다. 강의 제목은 “글로 나를 돌봅니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돌보았다. 그리고 글을 통해 독자들과 서로를 돌보았다.
25주 전, 브런치북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와 우리에겐 치유의 시간이, 세상엔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옅어지는 계기가. 그리고, 무엇보다 조현병 환자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덜 외롭길 바라며 글을 시작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픈 것이 죄가 아니며,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일상에도 희로애락이 있다는, 고통도 삶의 일부라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가 지나는 오늘 이 순간, 지금이 기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시간들을 쌓고, 연결하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그리고 조현병 환자도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조현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당신에게 가서 닿기를 바랬다.
어제 저녁 6시, 나무 씨가 귀가했다. 불안한 눈빛이다. 에어컨 설치 기사가 활짝 열어둔 현관문을 지나온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에어컨 설치 장면을 지켜보다가 사람들이 가고 난 뒤에는 계속 거실을 왔다 갔다 한다. “아무 일 없죠?” "불안할 일 없죠?"를 백번, 이백번 물어본다. 저녁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오후 외출에서 스트레스받은 일이 있었나. 무슨 일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궁금하지만 나는 모른 척한다. 오늘 나무 씨는 저녁 식사를 못 할 것이다. 불안을 견디기에도 벅차다. 거실과 방을 왔다 갔다 하기를 무한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11시가 되었다. 나는 먼저 잠자리에 든다.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를 멀리멀리 보낸다. 홍제천으로, 북한산 자락길로. 그 소리를 껴안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오늘밤이 지나면 내일이 또 올 것이고. 밝아진 그의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불안의 시간도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다. 불안할 때도 있고, 불안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럴 수 있는 것이 삶이다.
나무 씨는 좋아지고 있다. 잘 살아가고 있다. 다음 달이면 동료활동가로 출근할 것이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증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렇게 불안이 들이닥치는 저녁이 있고, 그래서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는 날도, 외출을 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지난 겨울보다 좋아졌고, 작년 여름보다 좋아졌다. 또 불안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마음이 들다가도 돌이켜 보면 매일 1미리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걸로 되었다. 바람이 그 방향으로 불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또 살아갈 것이다. 나무 씨도, 나도. 그리고 당신도.
* 브런치북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 연재는 25화로 마감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 나머지 이야기와 정보들은 앞으로 계속될 <한겨레 21> 연재글과 출간될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출판 원고를 쓰면서 더위를 잊으려고요. 그동안 읽어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뿐인가요? 덕분에 든든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리, 살아요. 살아서 다정함을 나눕시다. 또 살아가기 위해 다정함을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