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다가 다시 찾게 되면
연말연시.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갔고 언제나처럼 새해의 목표와 다짐 등 어떤 계획이란 걸 세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비록 전형적 P인 사람으로서 그다지 J 같은 계획적인 목표를 세우진 않지만 그래도, 막연하게라도 올해는 무얼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나름 펜을 들어 끄적이곤 한다.
2024년도 그랬다. 매년 그렇듯 당차게 '다이어리랑 플래너 둘 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야무지게 그리고 알차게 적어볼 거야!'라는 외침에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가 만든 초록빛깔 다이어리와 플래너 세트를 비싼 값에 구매했다. 인플루언서가 알려준 방법대로 한다면, 습관화한다면 정말 계획형 인간으로 일상을 시작하고 끝맺음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겐 그 정도로 공들여야 하는 시간들이 크게 피부에 와닿지 않았고 필요성은 느꼈지만 지속할 수 있는 확실성은 없었다. 그래도 적을 수 있는 건 적어봐야지 해서 적었던 것이 Affirmation 다짐이었다. (역시나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2025년 새해에 오랜만에 펼쳤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가겠지)
2024 AFFIRMATION이라는 한쪽 페이지에 자리한 이곳에 첫 번째 문장으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체력을 회복하고 히말라야 트래킹을 한다.
이 문장은 잊혔다가 2024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일 년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다이어리를 들춰보다 발견했다. 다시 찾게 된 나의 다짐. 이 다짐이 2024 첫 해의 첫 번째 다짐이었다니. 이 문장을 적은 순간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 다짐을 위해 나는 준비했고 행동했다는 거, 그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반갑고 뿌듯했다. 난 2024년 러닝을 통해 기초 체력을 키웠다(스스로가 느낀 기준이지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히말라야 ABC 트래킹을 12월에 다녀왔다.
새해 다짐은 매년 새로운 거 같지만 공통점들이 항상 있다. 체력 증진과 다이어트가 대표적이다. 2024와 2025가 되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2024 공식적으로 독립을 하면서(비록 경제적 독립은 완전히 해내지 못했지만) 내 공간과 내 온전한 시간이 주어졌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고 강력한 에너지원이 된다는 걸 몸소 느꼈던 2024년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나의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우선 출퇴근 시간과 거리가 줄면서 이뤄낸 체력 관리와 그만큼을 러닝으로 혹은 수영 혹은 산책과 따릉이 타기 등으로 체력 증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또한, 내가 글을 쓴다는 것도 체력과 공간,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가만히 앉아서 내가 듣고 싶은 노래나 백색소음으로만 가득 찬 상황을 만들어 환경을 통제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글 쓰는 재미도 더 커졌다. 전보다 마음 편하게 솔직하게 글을 쓰고 다이어리에도 내 생각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쓰기가 편해졌다. 누군가 볼 거라는 생각이 없어서인지. 꿈 기록도 하게 됐다. 꿈은 사실도 아니지만 사실이 아니기에 무의식의 내가 상상하는 무언가, 어쩌면 부끄러우면서도 당당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잠깐이라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재밌다. 꿈을 자주 꾸니까 이 상상한 내용을 글로 적으면 꽤나 웃기겠다 싶었는데 그걸 좀 해볼 수 있다는 것도 반갑고 고맙다. 꿈 기록이 어떻게 나의 자원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글쓰기에도 여유가 생겼다.
새해 다짐, 그래서 올해 2025년에는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것을 세우게 되었다. 이것 또한 간간히 펼쳐보지 않는다면 잊힐 다짐일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머릿속에 담겨 있는 이 다짐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중간중간 확인한다면 난 올해도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기쁘게 또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음할 것이다. 그렇게 새해 다짐은 잊혔다가도 다시 찾게 되면 가슴속에서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차오르고 덕분에 힘이 난다.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힘.
그렇게 오늘도 새해 다짐 중 하나를 해내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