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가을에 읽고 쓰고 둔다

by NIL

죽을 때 슬프지 않을까.

『면도날』/ 서미싯 몸/ 안진환 옮김/ 민음사 / 2012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교보 문고를 지나는데 추천 도서 코너에 “면도날”이 보였다. 그 책을 읽던 중이라 반가웠다. ‘서미싯 몸’의 작품 중에서 “달과 6펜스”는 항상 청소년 추천 코너에 누워 있었는데, 세계 문학 섹션에 이 작품까지 놓이니 드물게 두 작품을 나란히 보게 되었다. 다른 작품 “인간의 굴레”까지 기억하면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있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의 재미있는 스토리와 적당한 교훈, 유럽 문화에 대한 대중적 서술로 얻는 공감 등이 편하게 읽히는 책이 된 이유일 게다. 나중에 알았다.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마구 오른 이유 중에는 독서가로 유명한 배우의 추천도 한몫했음을.


영국인, 미국인, 파리지앵

꽤 성공한 작가인 화자(서머싯 몸)는 미국 부자 출신의 ‘엘리엇’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조카 ‘이사벨’과 친구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첫사랑인 ‘래리’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사벨’이 부유한 집안의 매력 있는 아가씨로 다소 속물처럼 보이는 반면, 전쟁 중에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인간의 삶의 의미를 찾아 떠도는 ‘래리’는 다소 영적인 세계를 향한다. 파리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계속 이어지는 이들의 만남과 갈등, ‘이사벨’의 남편 ‘그레이’와 ‘래리’가 결혼하려 한 ‘소피’까지 얽히면서 진정 성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고민해 본다. 그리고 이 들 사이의 틈새를 메우고 있는 ‘수잔’이라는 특별한 여성의 삶까지 따라가다 보면 두툼한 분량의 책을 대부분 읽은 후이다. 총 7부로 나눠진 작품 구성중 5부까지는 전쟁과 파티, 대공황의 격변하는 시대와 얽힌 청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며 최종적으로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성공한 인생이 되기를 기원한다.


평생을 사교계에서의 지위와 평판에 집착했던 엘리엣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분기점이 되었다. 하나의 시대가 가고 다음 시대가 오듯 파리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각 자의 목적지를 찾아 떠났다. 유산을 물려받은 ‘엘리엇’과 ‘그레이’는 미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고, 구도의 길을 떠난 ‘래리’, 그리고 죽음으로서 모든 고통을 잊은 ‘소피’, 오랜 시련 끝에 경제적 안정을 찾은 ‘수잔’까지. 모두가 찾아 나섰던 목적지에 도달했으므로 이 책은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독자는 다르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누가 성공한 인생 인가.

한동안 소식이 없던 ‘래리’와 극장에서 마주친 작가는 그의 인도이야기와 미국에서의 생활 계획을 듣고 감동한다. 래리가 독일에서 출발하여 인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공부하고 체득한 교훈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철학과 종교이야기기 나오지만 독자가 알 필요는 없다. 동료의 죽음에 충격받은 래리의 공부는 인간의 생명과 악의 존재 이유, 죽음과 윤회 사상, 그런 것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최종적으로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모든 경제적 지원을 포기하고 미국에 돌아가 소박하게 살겠다는 그의 결심에 우려도 하고 격려도 하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 그동안 등장한 모든 삶의 유형 중에서 래리의 선택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이 책을 읽은 후의 독서 토론은 누가 더 성공한 인생인가 하는 토론이 많다. 경제적인 성공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지만 사교계의 입지에 조바심 내던 엘리엇을 성공한 인생으로 꼽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현재 독자의 세계관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작가이자 화자이며 관찰자인 ‘서머싯 몸“을 가장 성공한 모델로 뽑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의 성공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고 대중적인 셀럽으로 파티마다 귀빈 대접을 받고 부자들의 상담자 역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 7부의 후일담은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한 것으로 끝난다. 물론 ’ 소피‘의 경우 죽음이 진정 원하는 목적지였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가족을 모두 잃고 삶의 희망을 버린 체 폐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래리는 최선을 다한 것일까. 그녀를 질투한 이사벨은 이런 결말에 대해 만족할 수 있나.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성공인가? 목적지가 잘 못되거나 여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인생을 기록하는 일

엘리엇은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정리하고 자신이 입을 옷과 무덤까지도 준비했다. 많은 독자들이 엘리엇을 성공한 인생으로 꼽는 이유가 그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본 사람은 엘리엇의 마지막이 유쾌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반면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한 소피의 경우나. 죽음과 윤회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래리의 우중충함에는 거부감이 있다. 왜냐하면 독자들도 인생을 기록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목에 칼을 들이대고 면도를 한다. 대부분의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재수 없는 날에는 딴생각을 하다가 면도날의 각도가 빗나간다. 그리고 상처에 비해 훨씬 많은 피가 매우 빠른 시간에 차오른다. 그런 날들을 기억하며 인생을 기록한다. 내 마지막 날은 누구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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