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가을에 읽고 쓰고 둔다

by NIL

글로 그림을 그리고 소리까지 보여준다

『달에 울다』 / 마루야마 겐지/ 한 성례 옮김/ 더이룸 출판사 /2016


뒷산에서 또 사슴이 울기 시작한다.

몹시 춥다. 서리 내리는 밤의 추위다. 내일은 하루 종일 떨어진 사과를 주워 모아야 하지만

출하할 만한 물건은 못 된다. 그렇다고 잼 공장에 싸게 팔아치우지는 않겠다.

사과주를 밀조하리라.

봄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고, 마시면서 취한 채로 지낸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

잠들기 위해 마시고, 마시기 위해 잠드는 것이다.


주인공 ‘나’의 의식을 따라가며 꾸역꾸역 읽어가다가 쿵 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여인 야에코를 기차역에 데려다주고 빗길에 돌아온 밤. 사슴이 어떻게 우는지 들어본 적 없지만 그 처량함이 보였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버티기 위해 술을 마셔야만 하는 심정. 내일은 돌아오리라 기대하며 억지로 잠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마음을 사슴과 사과로 표현한다. 줄곧 시를 쓰듯 이어지던 이 작품에서 이 부분이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고 묘사가 가장 뛰어나지도 않지만 마음에 쿵 떨어졌다.


가을이 지나는 밤에 혹독한 겨울을 예감하게 했다.

다시 10년이 흐른 겨울, 엄청나게 내린 눈을 뚫고 돌아온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서 죽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생선 껍질 옷을 입고 조용히 누워 있다. 그렇게 10년의 기다림은 끝났다.


“아아. 좋은 꿈을 꾸었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법사는 다시 주름투성이 눈꺼풀을 감고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백구나 야에코처럼 조용하게 숨을 거두었다.

손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 한 알이 꼭 쥐어져 있다.


법사의 방랑도 함께 끝났다.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난 적 없이 백구와 함께하며 야에코를 기다리고 사과나무를 키우다 병풍 앞에서 잠들던 ‘나’를 대변했던 법사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하다. 달이 있고 호수가 있고 거지 법사가 있는 병풍 그림은 봄의 흔들리는 갈대 소리에서 시작하여 겨울에 들리는 얼음의 비명으로 끝난다. 여름에는 격렬하게 술대를 치며 은은한 목소리로 노래하던 법사가 가을이 되자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맨다. 강풍이 쏟아내는 대지의 비통한 절규. 그래서 가을이 그렇게 서러웠나 보다.


일본 문단의 이단아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 『달에 울다』 는 평생 사과 농사를 지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남자의 숙명이었던 여자 ‘야에코’를 기록한다. 그녀가 마을을 떠나 있는 시간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것뿐. 그래서 술을 마신다. 그가 매일 잠드는 배경이 되는 병풍 속에는 달이 있고, 호수에 비치고, 거지 법사가 비파를 타며 노래한다. 글이 그림을 그리고 그 노랫소리를 보여준다.


이야기도 재미없고, 전후 일본 시골의 정서도 맘에 안 들고, 주인공 캐릭터도 형편없지만 이 작품을 기억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글을 읽으면 그림이 보이고, 심지어 소리까지도 그렸다. 사슴이 울고 대지가 울고, 마지막 한숨에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까지. 소리를 보게 한다.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꼬리가 말린다.


빠져나오려 할 때마다 그 소리가 이명처럼 계속 울린다. 사과주든 포도주든 술이나 마십시다.

keyword
이전 08화면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