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여름에 읽고 쓰고 둔다

by NIL

생각과 부담

『벌집』 / 카밀로 호세 셀라/ 남 진희 옮김/ 민음사 /2018


써야 하는 말.

봄맞이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다. 한 달 전에 써야 했던 것을 쓰지 못했다. 책을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난만큼 기억도 멀어져 갔다. 이 작품을 읽으며 알아가던 새로운 정보, 스페인 내전이나 프랑코 총통의 독재, 작가인 카밀로 호세 셀라의 생애와 노벨상 수상의 의미. 그런 것들은 가물가물하다. 그냥 무지하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평범한 도시 서민들이고, 복잡하고 긴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기억하기 어려운 만큼 각자의 삶의 형태도 다양했다.


역사적 배경을 앞세우며 작가의 사상과 엮어 본다면 독재와 전쟁이라는 상황에 무겁게 짓눌린 삶의 비극성을 논하고 시대를 비판할 수 있겠지만, 배경 지식을 걷어 내고 도시를 살아가는 일상을 따라간다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욕망과 다툼의 시간을 꾸역꾸역 보게된다. 마을 사람 전체가 차례로 등장하며 나이 든 사람들의 알량한 욕망을 보여주고,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좌절해 있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마치 우리가 드라마 '서울의 달'아나 '유나의 거리'에서 본 것과 같은 풍경이다.


자주 쓰는 말.

감상을 써 놓고 보면 항상 같은 방식이다. 매주 읽는 책이 다른데 결론은 비슷하다. 주인공 또는 특정한 등장인물을 따라가며 이야기 얼개를 풀어가지만, 결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쓴웃음 짓고 반성하며 끝난다. 이번에도 그렇게 사람과 사건을 따라간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 어느 정도 재력을 가진 중년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고 있거나 하고 싶어 한다. 돈 많은 친척이나 정부의 유산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들, 반면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고 현재는 맘 놓고 사랑도 못 하는 청춘들의 불안을 다독이는 방법은 없다. 나이 든 여자들은 수다를 떨고 지식인들은 특별한 직업 없이 떠돌고 젊은 여자들은 돈 버는 방법을 알고 있다.

도시를 가득 채운 그 불순한 공기가 끝없이 순환하는 가운데 갈증을 느낀 독자가 지칠 때쯤, 한 명의 젊은이가 각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지만, 얼마 가지 못할 그것이라는 불길함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다 읽었으니 이제 써야 하는데 단어와 문장에 한계가 있다. 요즘 생각이 그렇다. 읽는 글의 문제가 아니라 쓰는 글의 한계가 계속 드러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만 그걸 읽는 사람도 재미없을 텐데.


시대가 변해도 보편적,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가치에 대한 소중함과 실현 가능성을 항상 놓치고 있기에 고전을 통해 반복하고 추억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그것에 대한 변명으로 인간은 항상 그래왔다고 말하며 경고하려 하는걸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위험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마무리를 하면서 생각을 닫고 다른 사람의 눈길을 피하려는 게으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고 쓴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담만 몰려온다. 오늘은 도나 로샤의 카페에 모인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고 다음 날은 마르팀 마르코와 친구들의 생활을 걱정한다. 마드리드 외곽 지역 공동체의 평범한 일상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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