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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Nov 01. 2023

점령군이 왔다.

하늘 정원

  웬지 더 쌀쌀한 가을 아침.

  성원은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바라봤다. 직원 출입구를 통과하며 보안 직원들과 활기찬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매장으로 이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매일 2천 명 정도가 이 건물로 출근하는데 대부분이 여성이다. 백화점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웃는 법만 배운 그들은 백화점의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는 듯 오늘도 웃으며 출근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주차장 안으로 차를 모는데 총무팀 김대리가 앞을 막았다. 

 "앞으로 직원들은 평일에도 주차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

 "새로 오신 점장님의 지침입니다. 드림백화점은 모든 점포가 다 그렇데요."

 "벌써, 새로 온 점장?, 지금 아침 9시에."

 "오늘 아침 7시에 새 점장님이 출근했대요. 야간 경비 근무자에게 전달받았어요"

 "쓸데없이 부지런한 인간인 모양이네. 오늘만 댈게요. 낼부턴 차 안 가지고 올게요."


   김대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눈치 보며 지하5층까지 내려가 일반 고객은 주차가 어려운 구석의 사각지대에 차를 숨기고 사무실로 올라오자 한비서의 메모가 있었다.

  '출근 즉시 실적 보고해 주세요. 점장'
  '이런 미친, 실적이 어디 도망가냐. 모가 이리 급해. 어쨌든 궁금하다니 얼굴이나 보자고'

 실적 자료를 정리해 어제까지는 부사장실이었던 점장실로 들어갔다.


   "난 드림백화점 정규식 상무요. 거 뭐냐, 어쨌든 내가 임시로 점장을 할 거고. 자네가 매출 담당인가?"  

   "경영기획팀 민성원 대리입니다. 추석 행사와 월간, 연간 실적 자료입니다."

   "음. 이거 왜 이리 글자가 작아. 다음부터는 폰트 10으로 잡아."

   "폰트 10입니다."

   "그럼 축소 인쇄 했군. 절대 축소 인쇄 하지 마. 그리고 이 여백은 이렇게 들쭉날쭉이야. 한 장 넘길때마다

    센터가 달라지네. 이 쓸데없는 그래프는 뭐야. 거 참, 자료 만드는 실력이 영. 이거 자네가 만든 건가.

    자네 대학은 나왔어. 드림 백화점 본사의 서무 직원들도 이것 보단 잘하겠다."

     "......"

    " 왜 대답을 안 해, 어느 대학 나왔어? 송안에 대학도 있나?"

  

    숫자는 안 보고 트집만 잡는 인간의 얼굴을 쳐다봤다. 딴딴한 얼굴이다. 키는 170cm 남짓이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듯 근육이 제법 균형 잡힌 것이. 흔히 말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안경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은 연약한 대리 정도는 잡아먹을 기세였다. 절대 기싸움에 밀리지 않으리라.성원은 오늘은 스니커즈를 신었지만 내일부터 힐을 신고 와서 이 인간을 내려다보리라 다짐했다.

  

   "자네, 경영기획팀이라고 했나. 일단 조직도부터 새로 그리지. 경영기획팀 이런 건 이제 필요 없어. 조직도

    그리는 것 누가 담당인가. 불러와. 내가 기본 그림을 그려줄 테니."

   "제가 담당합니다"

   "자넨 매출 담당 이라며."

   "그것도 합니다."

   "그래, 그러면 일단 본점에 연락해서 점포 조직도 하나 받아 가지고 참고해서 송안점 조직도 그려봐. 
    이제 여긴 골드백화점이 아니고 드림백화점 송안점이야. 그것에 맞게 조직도 인원도 줄여 오라고.

    너희 골드 백화점 팀장 이상 애들, 모두 사표 내고 나간 것 알지. 그러니까 팀장 자리는 다 빈칸으로 하고, 

    다음 주 중으로 다 새로 올 테니 그때 채우고, 그리고 이 회사 자산 현황 가져오라 그래"

   "그것도 제가 담당합니다. 팀장이 관리하긴 했지만 그 분이 그만 두셨다니 제가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뭐야. 이 회사는 자네밖에 없나? 다른 사람들은 뭐 하는 거야"

   "팀장 이상 다 사표 냈다고 하셔서."

    "빨리 가져와, 실적자료 만드는 꼴보니 얼마나 엉망이겠냐. 결국 이 건물하나 달랑 팔아먹고 도망간 것들."


    어떤 리액션도 못한 체 서둘러 점장실을 빠져나왔다. 실적 보고를 하러 가서, 실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내용은 안보고 모양만 트집잡는 것에 앞 날이 불안했다. 100% 고용승계 한다고 했는데 간부 사원들은 다 시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화점 안에 성원이 기대고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사 동기도 없고, 믿고 따를 선배도 없고 이 큰 건물에 혼자 남은 느낌이었다. 


   "물론 우린 모두 승계하겠다고 했지. 그런데 너희 김사장이 어디 꿀단지를 묻어놨는지. 팀장들은 아주 당당하게 사표를 던졌지. 거기다가 경리하고 무슨 총무에 자재까지 하여간 돈 만지던 아이들은 다 나간데.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아참 예산도 다시 잡아야 하니 담당자 오라 그래."

자산 현황을 들여다보며 점장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예산도 제가 담당합니다."

  "그렇겠지. 이젠 놀랍지도 않다. 너는 예체능계 전공 이냐. 기획서는 추상이고 그림만 그렸던데."

  "저 경영학과 출신입니다. 특히 숫자 관리 잘합니다."

   처음으로 대답했다. 내일부터는 꼭 힐을 신고 와서 이 자를 내려다보아야지 다짐했다. 

  "어 그려셔. 어느 학교 나왔는데, 경영학과 출신이 이렇게 밖에 못 하나. 삐뚤삐뚤 들쑥날쑥."


 성원이 다시 대답할 말을 찾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리고 낯선 직원이 하나 들어왔다.

 "그래 권 차장, 영업 시스템은 확인해봤나?"

 "예. 상품 관리 체계가 너무 올드해서 우리 시스템과 통합하기는 힘들겠습니다. 일단 야매로 매칭시키고 통합

  작업은 내년에 투자 예산 잡아서 제대로 해야겠습니다."

 "일단 사장님 모니터에 속보뜨게 하는데 얼마나 걸려? 어떻게 할 건데."

 "전산실 직원들 얘기가 민성원 대리라고 영업 관리에 빠꼼이가 있다는데, 불러러 우리 시스템과 연결할 매칭

  로직을 만들도록 하죠. 한 일주일 수작업하면 우리 시스템에 속보 띄울 수 있을 겁니다."

 "얘가 걔야. 예체능계 출신이라 만능 선수인 모양이야. 이 놈의 골드백화점"  


   점장은 턱으로 성원을 가리켰다. 성원이 더 놀랐다. 이 인간이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쓸데없이 기억력 좋은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랐다. 딴딴한 몸에 샤프한 척하는 머리까지. 저런 사람은 절대 조심해야 한다. 언제 배후를 찌를지 모르니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그럼 내가 하는 이야기 다 들었을테니 사무실에 가서 시작하자고"

 "제가 할 일이 좀 많은데 순서를 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권 차장이라 불린 직원에게 대답하는 순간 점장이 다시 껴들었다. 정말 급한 사람이었다.

"이 회사에서 다른 놈들은 하는 일이 뭐야. 일단 조직도부터 그리고, 권차장은 그거 받아서 본사에 사람 보내달라고 해, 내일 명령내고 목요일까지 다 오라고 해. 지방에 있는 놈들도. 금요일부터 매장 개편 들어간다. 뭐 하나 제대로 된 매장이 없어"


   점장의 끝나지 않는 지시에 지친 성원은 꾸벅 절하고 나왔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지가 아쉬우면 다시 찾겠지. 급한 것은 저 사람이고, 어차피 오늘 끝낼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순서대로 해보는 수밖에. 옥상으로 향하는 기미를 보이자 한비서가 잽싸게 따라붙었다.


"노인네들은 짐 다 뺐어?"

"아니요.아직. 부사장님만 어제 방 정리하고 나가셨죠."

"그분은 짐이랄 게 없을 텐데?"

"어제 선글라스 들고 나가시면서 방에 있는 서류들 다 없애라고 하셔서. 제가 찢어버리다가 지쳐서 여기 올라와서 태웠어요. 서류 보면서 언니 생각났어요.  들고 들어간 문서를 두고 나온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으니까."

"그랬나.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결재 들어가서 사인만 받고 다시 들고 나왔어요"


  성원은 김 세안 부사장이 좋은 경영자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한 기획서의 경우에는 원본에 결재받고 사본을 두고 나왔다. 팀장 시절부터 서류를 읽기도 전에 사인부터 하는 그의 스타일을 알기에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라고 두고 나왔다. 사본을 두고 나와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자료들을 한비서가 처리해 버렸다니.지난 시간의 기대가 불쌍했다. 

  

   김 부사장은 정말 미련 없이 이 회사를 떠났다. 3년 전,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며 선글라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들어왔던 그 모습 그대로 선글라스 하나 들고 나간 사람. 그때 여름 정장을 입었는데 정말 안 어울린다 생각했다. 오렌지 카운티의 쇼핑몰 돌아다니는 서퍼의 모습이었다. 그을린 피부며 염색한 머리칼까지.

   두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농부의 딸은 대리이고 사장의 아들은 이사급 팀장이라니.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는 빨간 대가리를 보며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두려움 없고 구김살 없이 싱그럽기까지 한 그 미소와 호기심으로 둘러보는 표정까지도 짜증의  대상이었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예의 그 싱그러운 미소만을 남기고 도망치듯 사라지곤 했다. 오히려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성원과 마주칠 일이 많아졌다. 그가 출근하는 날이면 일부러라도 실적 보고를 했다. 정기 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 그에게 영업실적뿐 아니라 회사 내 주요 동향과 정책 결정사항도 같이 보고했다. 그가 잘 적응하고 좋은 경영자가 되어야 성원도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최선을 다해 그를 돕고자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떡 벌어진 어깨에 가려 보이지 않는 창밖의 광장을 내려다보던 그의 자리가 딴딴한 아저씨의 끝없는 지시로 들끓었다.

  

"정규식 상무. 못돼보여도 배울 건 많은 사람이야. 자 이제 조직도 그려 볼까?. 내가 본점 조직도를 가져왔지"

성원과 마주 않은 권차장은 부드러운 말과 함께 가방에서 자료를 꺼냈다.

"대학 졸업한 이후에 저한테 대학 나왔냐고 물어본 사람 처음입니다."

"담에 또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어보면 같은 학교라고 꼭 대답해. 다신 안 물어볼 거야"

"차장님은 제가 어느 학교 나왔는지 아시나요?"

"이미 전 직원 인사 카드 다 훌텄지. 조직도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조직도 문제지만 인사와 급여에 대해서도 기준을 만들어야 해. 민대리는 특별한 경력도 없는데 대리로 특채되었더군"

"저 경력 충분합니다. 석사 출신에 스타트업에 일한 것까지"

"그건 댁의 생각이고. 드림 그룹 공채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러니까 골드 출신들의 직급 및 호봉 조정해야지. 그냥 두면 연봉 엄청 올라간다니까. 공채 출신들이 불만없도록"


   권차장의 표정 없는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에 잊고 있었다. 성원은 점령당한 국가의 신하였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리 없고, 어떻게든 사라져 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드림 백화점의 인사 정체와 승진 누락에 신음하던 직원들에게 새로운 사업소는 약탈의 대상이다. 팀장이 될 수 있는 기회. 자신의 역량을 보일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다. 그런데 검증안된 직원들이 버티고 앉아 자기들과 같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공채로 그룹에 입사했다. 지역 유지의 자녀라는 연줄로 입사한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원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드림 백화점은 송안점을 얻은 것만큼 민성원이라는 사람을 얻은 것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지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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