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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Nov 08. 2023

팀도 새롭다.

하늘 정원


 "오늘 날짜가, 몇 일이지?"

 정상무가 물었다. 조직 개편 이틀 만에 모든 직원이 출근했다. 딱 한 사람. 성원의 새로운 팀. 영업총괄팀의 팀장만 안왔다. 부산점에 주요행사가 있어 합류를 늦춘다는 통보였다. 팀장 회의에 대리로 참석했다.


  "9월 18일입니다." 

  "좋아 4주후면 몇 일인가?"

  "10월 16일, 수요일입니다."

  "그날이 D데이다 그날 회장님 모시고 드림 백화점 간판 단다. 모든 팀장들은 그 날짜부터 역산하여 거,뭐지.

    일정표 만들어. 간트 차트. 권차장이 크게 만들어서 저기 벽면에 붙이라고"

  "예"

    권차장에게 지시가 내려간 순간 성원이 해결할 일이라는 생각했다. 벽면에 붙이는 일정표라니 저 아저씨는 20세기에 살고 있는게 분명해.

  "영업팀은 그 일주일 전까지 매장공사 다하고 일주일 동안 청소한다."

  "계획을 마무리하는게 아니라 공사를 끝내라는 겁니까?"

  "1주일 협상하고 2주일 공사하면 되지 뭐. 거 대단한 브랜드 입점시키는 것도 아니고 저조한 애들 몇 개만

    골라내라는 건데..."

    회의는 끝났다.어깨를 쭉 펴며 돌아선 권차장이 말했다.

   "어때, 이것이 드림 백화점의 일하는 방식이야"

   "예. 참 드림 드림합니다. 저는 직원들이 다 도망간 고객상담실 밥 교대하러 가겠습니다."

    "빨리 와서 일정표 그려야 한다."

   

   같이 일한 지 삼일째인데 권차장이 성원을 대하는 태도는 3년은 같이 일한 사람처럼 편안했다.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는데 반말은 기본이고 맥없는 농담에 지자랑까지 안 하는 게 없다. 묘하게도 그런 태도가 성원의 마음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스타트업 시절 열정적으로 일하던 기분으로 돌려놓은 듯했다. 정상무의 무한 요구에 권차장은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권차장은 웹툰에 등장하는 수재 스타일의 남자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절대 일인자가 되지는 않는 사람. 성장기에 얽힌 뭔가 비밀을 가진 남자. 농담도 잘 하고 여유있어 보이지만 금테 안경 뒤에 야심을 숨긴 자. 다만 그 안경 뒤로 광채를 뿜어내며 하는 이야기가 너무 일 생각뿐이라는게 문제. 본인이 관심 가는 화제가 나오면 멈추질 못했다. 지난밤에도 전산실에서 영업 코드 매칭 작업을 하다가  AI에 의한 백화점 서비스 혁신으로 화제가 이어지자 매장 안내부터 식당가 메뉴판 개편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반대로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단답형이었다. 

정상무가 골프나 맛집 이야기를 꺼내도 무표정했다. 아무리 무리한 지시를 해도 다 해낼 것처럼 정상무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권 차장이 사적인 대화에서는 들은 척도 않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김세안 부사장이 떠올랐다. 성원도 그 사람에게 권차장 같은 참모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 부사장은 성원이 보고하는 내용을 항상 듣기만 했다. 토를 달거나 추가적인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사장님의 정책 결정을 전달하며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고해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이 있어 그런 결정을 하셨겠지요 그의 대답의 전부였다. 다시 만나 따지고 싶었다. 당신의 그런 태도가 우리 직원들을 이 꼴로 만들었다고. 조직은 작아지고, 떠난 자리는 충원 되지 않고, 업무는 두배로 늘었다. 새로 온 점장은 서두르기만 하고 남은 우리는 식민지 노예의 삶이 되었다고.


    다시 정상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자 10월부터 12월까지 4분기 예산을 보자. 기존 예산이 전년 대비 10% 성장. 거 뭐냐. 이제 드림 백화점이

    되었으니 40%는 더 해야지"

  "점장님, 10%도 의지를 반영한 목표고 3분기까지 목표 달성도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너희 회사가 망한 거지. 거 참. 목표의식도 없고 도전 정신도 없으니까.'

   정상무의 조롱이 시작되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직원들이라고 다 비리비리해서 눈치나 보고. 사내 새끼들은 일도 안 하고 여직원한테 미루기나 하고.

   그 놈들 군대는 갔다 왔나, 내가 알기로 김사장은 방위 출신이고,거 그 아들은 그 부사장인가 하던 애?"

   "그분은 육군 병장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여직원이 혹시 저 말씀하신 겁니까?"

   "그래 자료 찾을 때마다 니기 담당이라며. 이 회사에서 너만 일했지. 드림백화점 본사에 가면 계약직도

     너만큼은 일하지. 거. 참. 내가 심했다. 그러니까 좀 제대로 일하라고.. 우리 드림 백화점 스타일로."


     성원의 눈이 커지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려는 순간. 정상무가 꼬리를 말았다. 정상무는 예산안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보고해 달라며 퇴근했다. 꼼짝없는 야근이다. 패턴이었다. 아침에 보고 들어가면 검토한다고 두고 가라한다. 하루종일 매장 돌고 손님 만나고 저녁에야 불러서 수정 사항 지시하고  저는 퇴근하면 내일 아침에 보자. 그러면 또 야근이다. 예산안 수정해서 정리하고 전산실 가서 코드 매칭 작업 확인하다 보면 새벽. 다시 청소 요원을 만난다. 청소하시는 동안 집에 좀 다녀올게요.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이번 달도 언니 월급이 팀장보다 많다면서요. 야근 휴근 수당이 풀이라고 소문이 자자"

   "이 백화점에서 월급 제일 많은 직원은 라면이나 먹으려  가련다."

   정상무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사무실을 나서는 한비서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백화점 옆 시장의 라면집으로 간다. 송안시 중심에는 송안 시장이 있다. 골드백화점 창업자 김창섭 회장은 시장안 슈퍼마켓 사장이었다. 상인회를 조직하고 주변 점포를 사들이면서 세력을 키웠다. 재래시장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시청의 예산 지원을 획득하여 시장 근대화 작업에 착수했다. 아들인 김기도 사장이 건설회사를 만들어 백화점을 짓고 백화점 사장이 되었다. 상인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백화점에 입점시키고, 지역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기부도 했다. 그렇게 30년 동안 향토 기업의 이미지를 쌓았다.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옥외 주차장 증설과 식품관 리뉴얼 투자로 자금 사정이 안 좋아졌다지만 진짜 문제는 김기도 사장의 노화와 중역들의 줄세우기와 비리였다. 입점업체나 협력사들로부터 그들의 갑질에 대한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기존 창업자와 같이 했던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장통의 라면집 "리플리"는 백화점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했다. 그 집 사장은 송안 시장에서 잔뼈 굵은 사람 중에 리플리 해물라면 안 먹은 사람 없고 송안시의 모든 유지들을 다 자신이 키워냈다는 여사님이었다.

성원이 주문을 하는 동안 맞은 편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한비서가 턱짓으로 성원에게 돌아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돌아보는 성원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라면을 먹고 있는 남자의 삼선 슬리퍼였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따라 올라가 시선을 멈추게 한 사람. 푸른색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라면을 먹고 있는 젊은이는 김 세안 부사장이었다.

 

"부사장님 여기서 모 하세요?"

"사흘 동안 쉬었더니, 몸이 근질 거러서 라면 먹고, 게임이나 하려고..."

한비서의 질문에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다시 라면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먹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성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대리, 여기 너네 팀장 데려가라"

   불쑥 문이 열리며 정상무가 머리만 내밀고 말했다. 예산안 보고를 위해 비서실에 대기 중이던 성원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점장실에서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얀 아저씨가 나왔다. 새로 오는 영업총괄 팀장.김승호 부장. 정상무와는 입사 동기라서 격의 없이 지낸다 했다. 팀장을 모시고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침 준비 중이던 예산안에 대해 보고했다.


"아니 이  송안점이 부산점보다 매출이 많다고.. 이거 그냥 정상무가 지 꼴리는 데로 책정한 거 아냐?"

"아닙니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하고 시물레이션 해 본 숫자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다 해도 자신이 내미는 숫자에 대해 의심할 땐 화가 났다. 숫자로 밥 먹고 사는 성원이 씩씩거리며 얼굴을 들자 김 부장은 더 이상 토 달지 않았다. 숫자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점장은 매장 순시 중이라는 한비서의 전갈에 따라 예산안 보고를 뒤로 미루고 권차장과 함께 매장 공사 일정표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김 부장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이거 종이가  너무 큰 거 아냐. 한 달도 안 되는 일정 가지고..."

 "벽면이 넓어서 좀 크게 만들었습니다.'

권차장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김 부장이 다시 호기롭게 말했다.

 "요즘 누가 촌스럽게 벽면에 일정표 붙여놓고 일하냐. 그리고 무슨 매장 개편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해. 

  매출 목표도 얼마 안 되던데 드림 백화점으로 바뀌었다 하면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드는 것 아니겠어.

  송안 사람들 수준에 맞게 한정 판매나 원프러스원, 그런 프로모션 많이 준비하면 되지. 매장은 청소나

  잘하고 간판만 바꾸면 되지, 뭘 한 달이나 준비해."

 "이따 상무님께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팀장님은 이미 3일 까먹으셨습니다.  오픈

  세리모니 때 회장님 오시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권차장이 가볍게 한마디 던지자 김 부장은 어깨를 으쓱하곤 물러섰다. 권차장과 성원은 일정표 만드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깁부장은 직원들을 모아 오픈 세리모니 계획을 챙기기 시작했다. 참석이 예상되는 정관계 인사들  VIP 명단과 의전, 식전 후에 펼쳐질 공연, 테이프 커팅을 위한 도열 순서까지. 수많은 점포를 오픈한 드림 백화점의 노하우 그대로 매뉴얼에 담고 있었다. 김부장도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옛 골드백화점 오너들을 초대할지는 사장님께 한번 여쭤봐야겠다. 내일 본사 출근할 테니 사장님 컨펌

    받을 것들 리스트 업 해 놓도록. 권차장이 한번 크로스 체크해 줘"

   누구에게 지시하는지 몰랐는데 슬그머니 권차장에게 최종 체크를 미룬다.

    "예. 근데 내일 본사는 혼자 가실 거죠. 저는 같이 못 갑니다."

   권차장은 당연히 자기가 챙길 일이라는 듯 업무를 이어가고 성원은 잠깐의 휴식을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것인가. 말은 거칠고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른 점장, 눈빛은 종이를 뚫을 듯한데 말은 이쁘게 하는 권 차장, 그리고 처음 봤지만 그냥 시장통 삼촌 같은 김부장. 그들과 함께 하는 앞으로 한달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된,  아니  규모 있는 조직에서 일해 본 적이 없었다. 창업 동아리 시절부터 이어 온 아이들과 어울려 창업을 한다고 돌아다녔고, 골드백화점에서도 중소기업 특유의 온정적인 분위기에서 일했다. 친구들이 말하는 대기업의 조직 문화, 승진과 연봉에 대한 고민.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기업 만화에 나오는 사내 정치와 암투. 이런 것도 신경 써야 하는 건가. 엉뚱한 상상까지 이어지면서 원래의 주제. 계속 백화점을 다닐지 말지는 미뤄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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