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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Mar 26. 2024

눈먼 자들의 도시

봄에서 여름으로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신을 내버려 두지 마시오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 정영목 옮김 / ㈜해냄출판사 / 2014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1922~ 2010)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소설 『죄악의 땅』을 발표하며 창작을 시작했다. 이후 19년간 작품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내며 무단의 주목을 받는다.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다. 1991년 출판한 『예수 복음』이 포르투갈의 보수집단과 가톨릭교회의 압력으로 '아리오스토 상(유럽연합 문학 경쟁 부문)' 후보에서 제외된다. 이에 분노하여 스페인으로 망명한다. 1995년 『눈먼 자들의 도시』를 발표하고, 그 외 주요작품으로 『동굴』, 『도플갱어』, 『눈뜬 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1998년 포르투갈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10년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타계했다.          


공포의 시작

  교차로의 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호가 푸른색으로 바뀌고 뒤의 차들이 출발을 독촉하는 빵빵거림 속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도 차 안에는 들어 줄 사람이 없다. 바닷속에 들어온 것 같고, 우유 속을 헤엄치는 듯한 백색의 물결 속에 발버둥 친다. 뭔가 이상을 감지한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싸늘하게 몰아치는 공포 외에는 어떤 느낌도 없다. 그렇게 도시를 휩쓰는 공포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전염병으로 정의되는 시점, 공포도 전염된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그것에 대해 두려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분명 처음 겪어보는 상황임에도 움직임은 과거의 방식과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통제와 격리를 선택할 뿐 적극적인 대책은 없다. 아내는 남편을 보낸다. 그렇게 눈먼 자들을 수용소로 모은다. 그런데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하나 있다. 실명한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구급차에 함께 탄 아내. 혼자만 눈이 보이는 그녀의 시선에서 기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수용소의 불꽃

  수용소의 사람들에겐 이름이 없다. 그저 눈먼 사람일 뿐. 이름이 없기에 특징이 더 드러난다. 첫 번째 눈먼 남자, 그의 아내, 그의 차를 훔친 도둑, 선글라스를 낀 여자, 그들을 진료한 안과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노인과 사팔뜨기 소년까지. 궁금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고 거기에 모이게 된 사연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이름도 없이 함께하게 된 이들은 서로를 판단할 수 없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추한 자와 귀한 자를 구분할 수 없다. 실명의 공포와 생존을 위한 본능만 있을 뿐이다.     

  그들 사이에 혼자 보이는 그녀는 두렵다. 어느 순간 자신도 눈이 멀까 두렵고, 다른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렵고,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책임지는 것도 두렵다. 남편의 부정을 보는 것도 역겹고 수용소의 황폐한 환경에 구역질 난다. 그래도 그들을 돕기 위해 계속 움직이며 조금 더 나은 생활이 되도록 하고 싶다.     

   그놈들이 나타났다. 무책임한 당국에 의해 환경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예민해졌지만, 인간성은 남아 버티고 있었는데 권총을 든 악당과 그 무리가 나타났다. 식량을 독점하고 폭력과 약탈, 심지어 성 상납까지 요구하며 수용소의 왕으로 군림한다. 가장 힘든 순간, 용기 있는 자는 존재한다. 눈이 보이는 여자가 악당을 죽이고, 다른 여자가 수용소에 불을 지른다.

  약한 자들의 연대와 항거가 시작되었지만,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미 수용소를 지키는 군인들도 철수했고 밖의 세상은 더욱 큰 아수라였다.황폐한 도시는 배설물로 오염되고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과 썩어가는 시체뿐이다. 눈이 보이는 여자는 이제 눈먼 자들을 돕는 조력자에서 그들을 이끄는 선도자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돌아온 자리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오      

  수용소를 나온 일행들은 각자가 살던 곳을 방문한다. 맨 처음 눈먼 남자와 아내가 살던 아파트를 점유하고 있던 남자를 만난다. 실명했지만 손으로 더듬어가며 계속 글을 쓰고 있던 사람은 ‘주제 사라마구’ 본인일 수 있다. 언론인과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그가 노년에 접어들며 발표한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한 문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용소에 있었던 260명 이상의 수용자 중에 얼마나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지도 못하고, 총을 쏠 군인이 없다는 것도 모르는 대부분 수용자는 어떤 선택도 못 하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들은 시력을 잃었고, 낙담했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먹을 것에 굴복했고, 그래서 회복에 대한 희망을 없앴고, 자기 자신을 잃었다.     

    반면 의사 아내는 소중한 것을 기억했고, 다른 여성들을 위해 놈을 죽였고, 그에 호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는 중에도 복원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고, 자기가 돌아갈 자리를 미리 계획한다. 비록 눈이 멀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지만 자기 살던 집에 가보고, 가족들을 기다리며,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하며 삶을 준비한다. 의사의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기로 한 일행들은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고 샴페인 한잔을 나누며 희망을 공유한다. 세 여인은 베란다에서 모든 더러움과 쓰린 기억들을 씻어내며 부활의 의식을 한다. 그리고 그 날이 왔을 때, 각자가 기약했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눈이 보이는 한 사람을 통해 얻는 희망이 그들을 버티게 했다.     


진정 눈먼 자들은 누구인가?

    실명 전염병의 원인도 복원의 과정도 설명하지 않는다. 오로지 도시 안에서 벌어진 일을 기술한다.

    더럽고 야비한 풍경과 인간성 상실의 순간들까지,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집단 폭행,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에 가득 찬 시체, 오물로 덮인 도시와 인육을 먹는 들개떼, 이런 것들을 직접 보고 상상하기보다는 눈먼 상태로 보살핌 받으며 살고 싶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외면하려 한다. 기아와 난민, 전쟁의 폭력과 범죄, 지금 지구 어딘가에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무책임한 권력에 의해 유기되고, 생존 경쟁에 윤리가 파괴되는 모습에 대해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경종을 울린다. 눈을 뜨고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한다.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것을 생각하고 바꿀 수 있다.     

    의사의 아내가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고려했거나, 자신은 끝내 눈이 멀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구급차에 오르는 남편과 함께하고 싶었고, 수용소에서 남편을 보호하고 싶었고, 어려움에 부닥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었고, 그렇게 결정의 순간마다 자신의 양심과 주어진 책임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복원의 날

   맨 처음 눈먼 남자를 시작으로 한 사람씩 시력을 찾았다. 그들의 아침 식탁은 보잘것없지만 행복으로 가득 찼다. 각자 준비한 생활을 찾아 거리로 나갔다. 도시는 시력을 되찾은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으로 가득 찼지만, 의사의 아내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나간 시련의 시간이 순간으로 기억되고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눈을 감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심판을 내려야 한다. 모두 눈멀었던 그 시간에 나쁜 짓을 한 놈들과 좋은 일을 한 사람을 골라 나쁜 놈들의 시력은 돌려주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인간들은 신의 시력마저 파괴해 버렸다. 복원된 세상에서, 도시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나쁜 놈들은 다시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단 한 명, 눈뜬 사람의 희생으로, 약한 사람들의 연대로 다시 찾은 도시는 그렇게 다시 눈먼 자들의 차지할것이다. 이제 의사의 아내는 눈을 질끈 감고 살아야 할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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