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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Mar 26. 2024

이토록 평범한 미래

봄에서 여름으로


이야기하는 여자기록하는 남자기록된 시간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 2022 


미래를 이야기하다

  모든 프로젝트 플랜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예측이 맞았던 적도 별로 없고, 회사의 역량과 구성원의 의지를 모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소비자를 풍요롭게 하고, 회사가 돈을 벌고, 구성원들이 푸짐한 성과급을 받는 미래, 이것이 성공이다.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한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의 관행, 비관적 예측, 소극적 행동을 파괴하고 모험과 혁신의 정신으로 내일을 만들자고, 희망을 품고 오늘을 열심히 살자고, 그렇게 선동하며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매년 반복 선동하는 조직체와 달리 김연수 작가가 여덟 편의 작품에 펼쳐 놓는 사람들의 미래 이야기, 연결된 개인의 기록은 단순하지 않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발표되었지만 마치 하나의 장편처럼 연결된 구조를 가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기억, 과거의 기억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지나간 사람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8개의 작품에서 인물과 시간은 서로 교차하며 질문하고 대답한다. 거기에는 과거와 미래, 시간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것이 얽혀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작가가 쓸데없이 다양한 지식을 자랑하며 때론 지겹게 반복하여 이야기하지만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목표가 분명한 ‘비즈니스의 세계’도 아니고, 행복을 정의하려는 ‘철학 수업’도 아닌, 살아있는 시간을 기록한 ‘문학 작품’ 이기에 독자가 느끼는 것이 결론이다. 「진주의 결말」 초반에 등장하는 시간 여행자의 이야기처럼     

시간 여행자는 어떤 사건을 지켜보고 어떤 사건을 외면할지 결정할 수 있다

시간 여행자는 관찰할 사건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수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기억이 수정되면 우주의 운행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결과가 바뀌지 않았는데, 단순히 기억을 바꾼다고 미래가 바뀌게 된다. 행복한 상상으로 미래를 기억하면 현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작가는 억지를 부리며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야기하는 여자

    8개의 작품 각 편에는 이야기하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작가, 아버지를 잃은 여자, 아이를 잃은 엄마, 엄마 없이 자란 대학생, 신념에 따라 죽어간 3명의 바르바라까지 그녀들은 상실의 고통 속에 있다. 그리고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죽은 아내(정미)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미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여자였다.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이십 대 초반이 될 때까지 그 존재조차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도 사랑하게 될 줄 알지 못하다가 십 년쯤 뒤에 다시 만나 사랑을 하고, 또 그렇게 몇십 년을 함께 살다가 헤어진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에 대해 눈 깜박할 사이에 마치 폭풍처럼 지나간 인생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아직도 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작품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사랑의 단상 2014」에서 어떤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국의 사고 소식에 상심한 가운데서 들은 이야기, 10년 전 일본 여행 중 남겨둔 메모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은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연히 발견한 캡슐커피에서 떠나간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녀의 동작 하나, 모든 말 한마디 마디를 간직하고 있음에 그 사랑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것을 느끼는 남자. 그리고 못다 한 한 마디 “사랑해” 를 말하는 순간을 찾아 만난 수많은 사랑의 기억들, “잊지 않겠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우리의 삶이 된다.

  그리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했던 또 한 여성의 이야기 “난주의 바다 앞에서” 미래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바꾼다는 것이 억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제가 죽어야 제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 에서 제가 살아야 제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          

  정난주의 마지막 기도가 바뀌는 순간, 그녀의 미래도 바뀌었고, 그 기억은 200년 후의 손유미의 인생까지 바꿀 수 있었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그런 순간은 온다. 버틸 때까지 버티는 이유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기억하고 그들 또한 나와 함께 하는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기록하는 남자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1999년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한다.”     

   2019년 현재의 시점에서 1999년을 회고하며 시작하는 이야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남자가 한 일은 사랑하는 여자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외삼촌을 만나게 한 그것밖에 없다. 그녀 어머니의 사연과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부터 그녀를 구한 것은 외삼촌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에야 문제의 책 “재와 먼지”를 구해왔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미래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시점을 잡아 미래라고 정한다면 그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결국, 과거도 미래도 없다. 항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현명하게 평범한 미래를 기억했기에 1999년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청춘의 한 단면들이 여러 작품에서 드러난다. 펜데믹으로 고립된 작가의 시간은 그 이전의 추억을 기억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불우했고 불안했던 과거의 어느 날을 메일 한 통으로 복원하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녀들의 현재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기억을 오버랩하고 그때 생각했던 미래에 대해 고백한다. 현재의 삶과 기억들이 오버랩되지만 거기서 끝일 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내를 잃고, 사랑을 잃은 상실의 기록만 충실하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에 이르면 할아버지의 기록은 더 깊은 과거와 넓은 미래로 확장된다. 과거로 80년 미래로 80년 연결되어 240년까지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울림을 준다. 종교적 신념에 충실했던 3명의 바르바라 이야기나 그 세례명을 가졌던 어린 여동생을 잃어야 했던 할아버지의 애통함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게 기록된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삽화처럼 펼쳐진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안타깝다. 기차안에서 원수를 만나는 장면마져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분명 다가오긴 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냥 모든 이야기 속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진주의 결말」에서 진주가 질문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기록하는 사람은 이야기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기록을 읽는 독자는 더욱 힘들다. 그래도 열심히 기록하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섬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바라보며      

자연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 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 온 일이었다      

  라고 정의한다. 우리 내부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면, 그것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을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반복적으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록된 시간

   2014년 4월의 어느 수요일, 사무실 TV가 틀어져 있었다. 아침에 TV 광고 시안을 보고 끄지 않은 상태에서 속보가 뜨고 있었다. 그 뉴스가 우리 국민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온종일 방송되는 뉴스 화면을 보고 속보를 들으면서 업무를 진행했다. 여름 광고 시안에 들어간 쿠르즈와 물놀이 장면을 제거했다.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방법에 대해 협의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 아픔이 다가왔다. 그것은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개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후로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 사이 우리는 더 많은 일을 겪었다. 코로나19와 펜데믹이 만든 고립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것이 만들어 놓은 미래의 모습이 우리 기억에는 선명하지 않다.

   김연수 작가의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는 세월호 사고와 펜데믹의 시대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살았던 시대를 동시대의 작가가 우리 말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현재의 기록뿐 아니라 200년 전의 과거부터 다가올 미래까지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래의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다시 질문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의 대답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기억하는 미래, 진정한 희망은 무엇일까? 


    진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어요이해만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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