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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Mar 26. 2024

철의 시대

봄에서 여름으로

열다섯은 죽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철의 시대』 / J.M.쿳시 / 왕은철 옮김 /(주)문학동네 / 2019     

    

   책 표지에 나이든 여인의 얼굴이 있어 작가인 줄 알았다. J.M. 쿳시라는 작가 이름을 보면서도 계속 여성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쿳시라는 성이 생소했고, J.M.이라는 것에 무관심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는 이야기. J.M.이 존 맥스웰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어권의 가장 흔한 이름 존, 커피 이름으로 친숙한 맥스웰, 그리고 쿳시. 작가의 정체성이 이름으로부터 드러난다. 남아공 출신의 백인 작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현재는 호주 국적으로 사는 남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다양하게 묘사하여 노벨상을 받은 남자.그런데 그는 왜 나이든 여인을 화자로 선택하여 작품을 전개하고 있을까?     

   

    책을 펼쳐보며 이것이 딸에게 주는 편지의 형식으로 구성되었음을 알았다.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노부인이 암선고를 받고 이제는 딸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쓰고 있다. 그날, 이상한 노숙자 하나가 어슬렁거리며 집으 들어와 이 편지의 증인이지 전달자가 되었다. 어쨌든 커런 부인은 죽었고, 퍼케일은 자기 역할을 다했기에 이 편지가 공개된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며 계속 읽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었는지 빽빽한 편지는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남아공의 흑·백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단순한 인종차별이 아니었다. 흑인의 영혼을 말살하는 악랄한 통치였다. 

   커런 부인이 편지를 시작하기 시작한 시점은 흑인들의 저항이 대대적으로 나타나 거의 전쟁의 상태까지 이른 시점이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백인 우월주의와 차별정책을 고착시키고, 세뇌하는 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에 불을 지르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그만큼 많은 희생이 있었다. 작품 내에서 가정부의 아들 베키와 친구 존의 죽음은 백인 지도층과 그들에 부역하는 경찰의 무차별적 폭력 진압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누가 아이들을 죽였나?     

   

    누가 정의인가. 어떤 것이 선인가의 문제는 아니다. 열다섯은 죽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는 것이다.

   커런 부인은 백인이고, 대학교수 출신의 지식인이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불편함 없이 살았다. 흑인들의 삶에 관심도 없고, 흑인 가정부를 부리면서. 그런 나라가 싫어 떠나는 딸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선조들의 터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인문학자로서의 도덕과 소양으로 타인에 대한 동정의 마음은 있어 자기 집으로 들어온 노숙자를 내치치 못한다. 어리고 약한 소년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죽어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재하는 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수치심까지. 


   이 부인의 시선이 독자의 시선이고 책을 읽는 나의 시선이 된다. 당사자이며 관찰자의 시점이 겹치면서 복잡한 생각에 편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고, 독자가 책을 들고 있는 시간도 따라서 길어진다. 교양으로 알고 있는 그 나라의 역사에는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죽어간 소년들이 있다. 전쟁에는 희생이 따르고, 혁명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고 젊은이들을 자극하지만, 정말 그렇게 많이 죽고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는지. 그것이 인간의 역사인지. 전지구를 돌아가며 왜 반복하는지 묻는다.

   이 노부인은 죽음의 순간, 그런 시대를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사람은 손에 닿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 종교적이다. 


  베키가 앞에 나서려 할 때, 존이 망설이고 있을 때,

  앞에서 버텨주고, 뒤에서 지켜주는 어른들이 더 가까이 있어야 했다.

  소년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 투쟁을 위해 그들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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