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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Jun 28. 2024

2교시, 시그마와 인테그랄

 새끼손가락이 아려왔다.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센 선생님이 회초리를 책상에 탁탁 치며 말했다. 분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펴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는 막대기로 나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유진 엄마, 학교 좀 가봐야겠어. 우리 애가 그러는데유진이가 학교에서 매일 혼난대.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나온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곧장 서점을 갔다. 책장에서 ‘기탄수학’이라 쓰인 보라색 책을 꺼냈다. 그날부터 ‘수’와 ‘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가 숫자를 정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도 매일 나머지 공부를 했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교실은 좋았다. 바람이 살짝 불어와 블라인드의 플라스틱이 창문에 부딪히며 내는 불규칙적인 음이 청량했다. 서서히 해가 져서 길게 늘어지며 변하는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도 즐거웠다. 책상에 엎드려 바라본 가라앉는 먼지들의 춤도 멋있었다. 수학 실력이 쌓여갔는지는 미지수이지만, 감수성의 키는 매일같이 자라고 있었다.  



- 언젠가 만날 줄 알았어.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면, 그냥 이과 가. 문과보다 취업 더 잘되잖아. 지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 책을 덮었다. 그의 체념한 표정이 기억난다.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았던 열일곱의 나는 그렇게 이과를 갔다. 그리고 일 년 뒤, 문과로 옮겼다. 수학선생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나를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자. 그렇게 수학으로부터 도망쳐 ‘숫자’라고는 책의 쪽수를 나타낼 때만 쓰는 국문과를 갔다.

 하지만 삶은 다시 돌고 돌았다. 가장 싫어하는 것을 피했더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학이 도망치도록 무한하게 사랑해 줄걸. 괜히 원수지간이 되어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게 뭐람!



-문과생과 미적분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 말에 어떤 이과생이 ‘속도에는 방향성도 있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문과생은 뭘 그렇게 정확성을 논하냐며 머리를 긁적였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다 지난 이야기다. 이제는 문과생도 미적분을 공부한다. 융합형 인재. 말 그대로 다 잘해야 하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 화려한 인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문과생에게도 수학은 필요하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 생활에 녹아있는 이 함수의 그래프들과 공식 그리고 정리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찡그린 당신의 얼굴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주는 마음, 그게 수학이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 선생님이 되자

 수학을 다시 한다고 시작하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캄캄했다. 일단은 중학교 도형부터 시작했다. 엇각, 동위각. 잊고 살았던 명칭들이었다. 할선 정리, 원과 접선. 오, 무엇인가가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어진 수학 상편과 하편, 수 1과 수 2 그리고 선택과목들. 공부시간의 70%를 수학에 할애해도 늘 부족했다. 요즘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선행해요. 현실적으로 어렵죠. 수학 성적과 나의 목표 대학을 들은 입시 상담가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여기서 수학을 또 피하면, 이 자식은 더 큰 돌덩이가 되어 나를 가로막고 서겠지. 사랑하기로 했다.

 수학을 공부하며 얻은 가장 큰 인생의 태도가 있다면, 그건 내가 나를 위한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과목일수록 선생님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그랬을까나. 하지만 고난으로 다가오면 깨져야 하고, 함정을 파면 거기에 빠져야 한다. 그래야 진짜 위기가 왔을 때 혼자서 풀어나갈 수 있는 도구를 비로소 갖게 된다. 아, 이건 2023학년도 수능 수학 14번 문제에서 ‘최대·최소 정리’를 스스로 깨치지 않았던 나를 반성하며 깨닫게 된 진리였다.






수학 오답노트에 끄적인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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