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위한 해결책이 보인다
금요일 오전, 바쁘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G가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오늘 아침에 네 담당자와 통화를 했어.
잡센터 측에서 예산을 더 책정해서 2,070유로 정도를 주기로 했어.
다음 주 내로 돈이 입금될 거야.
그리고 중고매장 사장님과도 이야기를 했어.
예산인 2,070유로 안에서 주방과 바닥, 그리고 가전 일체를 구입하도록 최대한 맞춰주겠다고.
그리고 토끼 아줌마와도 이야기를 마쳤어.
2,070유로가 넘어가는 돈은 바이써링에서 부담하기로.
그리고 주방은 당연히 다음 주까지 완성이 안 될 거야.
그 말은, 너와 아기가 아직 새집으로 옮길 수 없다는 뜻이고.
주방이 완성될 때까지 얼마가 걸리든 보호소에서 지낼 수 있으니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오.. 맙소사...
그동안 끝이 안 보였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잡센터 측과, 바이써링, 중고매장 사장님, 그리고 보호소 측의 의견까지 모두 통합해 해결책이 나온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게 여기저기 책임이 분산되어 있다 보니 중간에서 그걸 하나로 이어 교통정리해 줄 매개체가 아주 중요했다.
나의 짧은 독일어로 어느 정도까지는 진행을 할 수 있지만 그것까지는 무리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G가 며칠 사이 완벽히 교통정리를 해줬다.
그리고 잡센터에서 돈이 빨리 입금된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번 일로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독일에서도 우는 아이에게 먼저 젖을 준다는 사실을.
상황이 급하고 어려우면 어디든 알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일처리가 느린 정부기관이라 하더라도 내가 채근하는 만큼 빨리 일이 진행이 된다.
"급하면 최대한 귀찮게 굴어라."
그게 토끼 아줌마와 중고매장 사장님이 나에게 신신당부한 독일 생활의 팁이었다.
암트 일이라고 쫄지 말자.
최대한 자주 전화해서 채근하고 독촉하자.
다들 참고하시길.
나는 금요일에서야 드디어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주말에 사장님이랑 가구를 보러 가면 된다 이제!
정말 감격적인 일요일이다!
조금 전 11시에 사장님을 만났는데, 내가 구입하는 모든 가구를 다 옮겨준단다.
오, 맙소사~!!!!!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이 들어와도 옮기는 문제 때문에 가구를 들일 수 없었던 나인데 가구를 옮겨준다니.
사장님은 오전 11시에 우리가 주말을 보내는 친구 집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우리를 싣고 먼저 이사 갈 집으로 가서 주방 사이즈를 직접 재고, 바닥을 깔아야 할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미 깔려있는 다른 방들의 바닥재를 살펴보았다. 아주 좋은 집이라며 우리더러 운이 좋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간단하게 방들을 둘러보고, 가구들을 대충 이렇게 이렇게 배치하면 되겠다고 대략 감을 잡았다.
나는 몰랐는데 티브이는 놓을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벽에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소파 위치도 정해졌다.
내가 지난번에는 이해를 잘 못했나 보다.
나는 가만히 있고, 2,000유로 안에서 울리가 모든 것을 해주는 게 아니라 가구, 가전은 물론 주방까지도 내가 직접 고르고 사야 했다.
사장님이 나 없이 혼자서 할 일은 바닥재를 골라 까는 작업이었다.
바닥재 선택마저도 아마 나에게 허락을 받고 구입을 할 거 같다.
그리고, 모든 물건은 내가 사용할 사람이기 때문에 내 취향에 맞게 내가 고르는 거고, 이베이가 됐든 오프라인 중고매장이 됐든 친구네 집이 됐든 내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어느 하루 날짜를 정해서 다 실어다 주겠다고 했다.
특히, 주방 같은 경우에는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시로 이베이 중고 주방을 살펴봐야 하고, 만약 마음에 드는 게 나타났다면 하루, 이틀 안에 약속을 잡고 함께 주방을 보러 가자고 했다.
저렴하게 나오는 주방들은 금방 팔리는 데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 안에 끝내려면 서두르자며.
아, 마음에 든다.
독일어권 나라에서 3년 살면서 "빨리빨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좀 신기한 것이, 내가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내 마음에 정말 드는지를 물어본다.
집을 구할 때도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아니면 굳이 고를 필요 없다고 했고, 친구들이 나에게 공짜 가구를 줄 때에도 정말 내 마음에 드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고, 지금 사장님도 그렇게 말한다.
주방을 고르더라도 네가 원하는 색깔, 디자인인지 중요하다고.
바닥재 역시도 나는 카펫 바닥이던, 플라스틱이던, 진짜 나무던 해주는 대로 받을 생각이라 제일 저렴한 카펫 바닥으로 해야겠다 싶었는데, 친구가 아기 데리고 카펫 바닥은 청소가 불편하니 라미나트로 알아보라고 했다.
말은 해보겠지만 나는 내 처지에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히 제일 저렴한 걸로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사장님은 한 술 더 떠서 다른 방들과 같은 바닥재를 찾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못 찾으면 색깔이라도 어울리게 어두운 갈색으로 최대한 비슷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당연히 감사하다.
부동산 사이트를 엄청나게 뒤지다 보니 pvc랑 라미나트, 파켓 이 세 가지가 바닥재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 같았다.
정확한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파켓은 진짜 나무 바닥이고 제일 좋은 것이다.
라미나트는 나무 바닥을 모방한 질이 좋은 플라스틱 바닥이고, pvc는 라미나트보다 질이 낮은 바닥재 같다.
사장님 말로는 라미나트가 pvc보다 비싸고, 설치할 때도 일일이 한쪽씩 손으로 깔아야 한다고 했다.
pvc는 라미나트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설치도 기계로 다다닥 하면 되는 거라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 다른 방들 바닥은 이미 라미나트이기 때문에 저렴한 라미나트로 찾아보자고 했다.
독일 집 바닥재에 대한 것도 이렇게 몸소 배우게 된다 내가 요즘.
나와 같이 보호소에 사는 여자들을 많이 도와주냐고 했더니 항상 돕는다며 이 일을 한 지 6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사장님도 역시 내 주변 친구들과 같은 말을 했다.
보호소에서 온 여자들 중에 나처럼 정신이 멀쩡히 박힌 여자는 아주 드물다고.
Krank im Kopf라는 표현을 한다.
머리에 병이 있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보호소 여자들을 비하한다거나 모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남을 돕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돕는다.
그냥 팩트다.
실제로 그렇게 문제가 심각한 여자들이 오는 곳이니까, 보호소는.
그가 지난번에 이사를 도와준 여자는 암트에서 가구사라고 준 돈을 노는데 다 써버리고 돈이 없다고 배 째라고 했단다.
어떤 여자들은 도움받아 얻은 가구들을 되팔아 돈으로 받아 쓰고 다시 암트로 가서 돈을 달라고 한단다.
음...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여자는 참 드물다고.
참, 내가 세간을 장만하기 위해 신청한 Erstausstattung은 한 사람당 5년에 1번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그걸 여러 번 신청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짭짤한 돈맛에 2,3년에 한 번씩 암트에 찾아가 그렇게 또 돈을 달라고 한다고 했다.
어쩐지... 암트직원이 나와 정말 집에 세간이 하나도 없는지 둘러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러는가 보다.
독일 땅에서 독일어가 가능하고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왜 일을 안 하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이 받아야 할 도움을 가로채려고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복지가 좋은 나라의 일면에는 이런 폐단도 있다.
차를 타고 가며, 그는 나에게 집을 구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봤다.
나는 정확하게는 한 달 정도 만에 구한 집이라고 했다.
나더러 정말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자기가 도와주는 여자들을 보면 보통 아무리 빨라도 반년은 걸린다고 했다.
BGW(베게베)며 Freie Scholle(프라이에 숄레)며 회사마다 나처럼 집을 기다리는 사람들 대기 명단이 이만큼씩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저 정도 좋은 집을 구하는 건 정말 행운이 따르지 않고는 힘든 일이라고 했다.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빨리 집을 고른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가 아팠고, 비가 쏟아지는 날씨 속에 일주일을 집을 보러 다니며, 노망난 노인네의 치근덕거림도 받고, 원하는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그래서 그런 악재 속에 너무나 좌절스러워 사무실에서 울었던 날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직원 아줌마가 나에게 원래는 계획에 없던 그 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집을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기회비용".
그 집을 지금 얻지 않으면 다시 이 집보다 더 나을지 더 못 할지도 모를 다른 집을, 언제가 될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한다는 그 기회비용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알았다.
인생사 왜 새옹지마라고 했는지 정말 알 것 같다.
지난 두 달간 내 삶이 그랬다.
영원한 행운도, 영원한 불운도 없다.
때로는 불운이 행운이 되기도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 아이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더라면, 열이 올라 아픈 아이를 안고 서럽게 울다가 집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이렇게 보금자리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