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태어난 지 36개월이 안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1. 횡단보도를 건넌다 2. 마트에 간다 3. 사람을 알아본다 4. 알아본 사람에게 말을 건다
정답은 ‘모두 다’이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 할 수밖에 없다. 이건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1986년쯤의 서울의 한 주공아파트에 살던 나는 만 3세(생후 꽉 채운 36개월)도 아니고 한국 나이로 3세(태어난 햇수로 3세)의 나이에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야생의 80년대라 하더라도 만 3세도 아닌 그냥 3세가 돌아다니긴 그렇게 녹록한 시기는 아니었으나 그 사실을 알리 없었던 나는 일단 길을 나섰다. 그리고 엄마와 건넜던 것처럼 손도 야무지게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 집 건너 대형마트로 향했다. 그 발걸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기억은 난다. 그냥 앞을 향해 전진 전진. 같은 시각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엄마는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동네방네 방송을 하고, 경찰서 신고에 맨발로 뛰어다니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동네가 떠나가라 난리가 났는데 갑자기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마트 앞 공중전화로 데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한다.
그때의 나의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그저 익숙한 듯 길을 건넜고 마트 안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마트 바깥을 슬슬 구경하다 한 공중전화박스가 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간 것뿐이다. 그곳에는 딱 내 눈높이에 들어오는 옥스퍼드 장난감 선물 상자가 있었기 때문에. 상자를 보고 넋이 나간 듯 그 자리에 앉아 그저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을 뿐이었는데 때마침 그곳에서 전화를 하던 분이 엄마와 나를 모두 아는 동네 사람이었다. 운 좋게 우리 집 전화번호도 알고 계셨고 그렇기에 직접 전화까지 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곧장 나를 데리러 왔다. 이 세상 풍파 어떤 것에도 초연한 엄마였지만 그날만큼은 너무 놀라 심장이 덜컹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집 밖을 나갔어도 한두 시간이면 금방 들어올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밖을 혼자 나갈 수 있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자란 시기는 야만의 80년대. 그 시절 아이들은 해 뜨면 나가고 해지면 들어오는 그런 시기였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 적어도 윗집 아랫집 정도는 네 집 내 집할 것 없이 드나들던 시기여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위아랫집에 또래의 아이도 없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방문하고 먹을 것도 얻어먹고 다니던 그런 루틴을 가진 그 시대의 전형적인 80년대 꼬마, 아기였기 때문이다. 그날도 엄마는 그렇게 이웃집에 갔으려니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동네 아이를 모른척하지 않고 직접 전화까지 해서 찾아준 덕분에 나는 '엄마의 딸'로 계속 살 수 있었다.
다섯 살 딸의 엄마가 된 나는 가끔 놀이터나 길에서 엄마를 찾는 듯 좌우를 살피는 아이가 보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의 사건은 흔하진 않지만 있을 수 있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때 그대로 길을 잃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의 세 살의 경험과 우리 아이의 세 살의 현재는 확연히 다르다. 아이 혼자 길을 다녀도 관심을 가져줄 충분한 어른이 많지 않고 세상 말로 ‘세상이 너무 험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2020년대는 그 숫자의 차이만큼이나 무엇 하나 같은 것을 찾기 어렵다.
어찌됐든 이 시대를 딸과 나는 살고 있기 때문에 나름 준비를 해야 됐는데, 아이가 글을 알고 자신의 주소를 알고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주변에 돌봐줄 어른들이 충분치 않다면 이미 있는 제도라도 충분히 활용해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두 돌이 지났을 무렵 나와 함께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지문 등록을 하고 상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일정 주기마다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좋은 세상이라면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자랄 때만큼 아이들을 따뜻하게 봐주는 어른이 적다는 것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누군가의 아이가 길을 잃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길. 그것이 어렵다면 가까운 편의점에라도 데려다주길(*전국 CU 편의점은 ‘아이 CU캠페인’을 펼치는데 이는, 길 잃은 아이나 어르신들을 보호해 주며, 경찰에 인계까지 도와줘 미아 및 실종을 방지하는 프로그램이다)
다행히도 그때 엄마를 만나 엄마의 슴슴한 떡볶이를 먹으며 자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