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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온 Oct 08. 2023

망상가들



회사에서 멍 때리는 것에 지치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에도 질릴 때쯤 나는 친구와 이런 저런 꿈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스스로를 망상가들이라 불렀다.



우리가 하는 몽상들은 자주 바뀌었지만, 나의 꿈은 주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에 있다. 유럽에 잠시 머물고 난 이후 서울로 돌아와서 나는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에 사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거대하고, 셀수없는 사람들로 꽉 찬 곳 말고. 매일 가는 편의점에 단골이 되어 머쓱한 삶 말고. 이동 수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활동 반경이 몹시 좁아지거나, 아니면 소위 핫플이라는 곳에 살며 다른 삶의 질을 포기해야하는 양자택일의 선택말고.


나는 어느 유럽의 도시를 상상한다. 예를 들면 니스 같은. 도서관도 박물관도 갤러리도 걸어갈 수 있는 곳. 내가 품과 시간을 들이면 내 두 다리로 살아갈 수 있는 곳. 일전에 니스에 여행 간 적이 있다. 동행들은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나는 미술관을 가기 위해 혼자 남았다. 국립 니스 미술관, 샤걀 미술관, 마티스 미술관- 하루종일 미술관들을 걸어다니다 피곤하면 잠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사먹고, 그러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하고.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엔 걸어서 미술관에 가고. 여름엔 내키면 바다로 수영하러 가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을 거기서 그렸다.  


그런 곳에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직업이 없다는 것이라 우리는 뭐 먹고 살지 고민을 끝없이 했다. 니스 같은 도시는 너무 작으니 한국 회사들이 법인을 세워 주재원을 보내지 않을거니까 일단 주재원은 제외, 현지에서 사무직을 구할 수 있을까? 프랑스어를 못하니까 그건 힘들거야. 내가 원어민인 언어는 한국어밖에 없는 걸. 그래도 카페나 바에서 일하는것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면 붕어빵을 팔아보는건 어때? - 나는 팥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쩐지 외국인들이 달콤한 팥 앙금이 가득찬 갓 구운 바삭바삭한 붕어빵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게 가능할까? 노점에 대한 법이 있을까? 가게를 빌려서 하는 것도 좋겠다. 외국인이 임대차 계약을 하기는 쉬울까? 질문과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PC카톡을 종료한다. 캘린더 알림에 따라 랩탑을 접고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어선다.




망상가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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