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은 걔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 걔가, 나에게 케이스 스터디를 하라는 거야. 그것도 본인팀의 주니어들과 같이.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 다른 팀의 업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나 어쨌다나.
본인도 말을 하며 겸연쩍었던지, 이것저것 핑계를 대더라고. 결국 회사를 좀 사랑하고 충성하라는 거였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상사와 싸운 이후 모든 것은 결국 그걸로 귀결됐거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대한 의문 혹은 다른 관점이 회사에 대한 항명 혹은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 열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여하간 뭐 어쩌겠어. 나는 조용하게 근로하는 사람이니까, 까라면 까줘야지. 그 일을 하는 내 기분이 어떤가 하는 건 나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으니까. 뭐 여튼 기분은 나빴어. 하지만 아예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지. 나로 말할거 같으면 짱 멋진 십년차 사무직이니까 말이야.
나는 케이스를 걔는 절대 알지 못할 큰 스케일로 그려줬어. 연간 계약의 체계부터 계약의 뒷 이야기, 고객사 특성, 원가 그런것들을 섞어서 말야. 그렇게 주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지식 전파로 만들었지. 그렇게 몇회차를 진행하고 나서 말했어. 이정도면 팀원들이 많이 배운거 같은데 어떻냐고. 걔가 나한테 역시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솔직히 조금은 뿌듯하기도 했어. 이 양분을 먹고 쑥쑥 자랄 주니어들이 보였거든.
나에게 없었던 건 이 회사를 그들처럼 사랑할 의지나 과도한 충성심이지 업무 능력이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거든. 그의 생각과는 달리 말야. 넌 정말 나를 몰라도 한참 몰라. 그렇게 쏘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어. 당신은 이미 나를 알기를 거부했잖아. 그럼 나도 나를 알려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