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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온 Oct 08. 2023

나의 퇴사송


회사는 일견 연애를 닮았다. 면접을 보는건 소개팅 첫만남을 닮았고, 입사 후 적응 기간은 연애의 첫 삼개월과 비슷하다. 그리고 원할 땐 언제든, 때가 되었다고 느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점까지. 하지만 미련 때문에,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 때문에 헤어지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까지.



나는 퇴사할 때가 되면 이별 노래를 듣는다. 이번 퇴사를 준비하는 노래는 사건의 지평선이다. 첫 회사는 안녕 나의 사랑을 들으며 헤어졌다.



- 안녕 나의 사랑

첫 회사는 관둔거 같지 않게 관두게 되었다. 바로 옆 건물의 계열사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동은 나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회사의 결정이었다. 시원섭섭 중에 섭섭함이 칠십, 나는 첫 회사를 좋아했다. 그 회사가 비록 여자는 과장 승진을 안 시켜줬지만. 대리도 달지 않은 나에게 과장은 먼 나라 일이기도 했다. 물론 과장을 안 시켜줄 게 뻔하다고 생각해 계열사로 이동하라고 했을 때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회사를 참 좋아했다. 나의 첫 사수와 첫 팀장은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보고서에 툭하면 오타를 내는 나에게 꾸짖을 지언정 화내지 않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술을 사주기도 했다. 감정적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지만, 내가 필요했을 때는 나의 철없는 감정까지 감싸주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여기다. ‘내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내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온 힘을 다해 나는 달려간다.’ 내 등뒤를 밀어주는 바람같은 사수였다.



- 바람이 불면

‘그때가 그리워, 꿈꾸듯 지나버린 너와의 추억만으로.’

이때 다니던 회사의 첫 면접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때 외국에 있어 우리는 스카이프를 통해 만났다. 나의 첫 화상 면접이었다. 그 회사가 정말로 가고 싶었다. 새벽 3시에 나는 시차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게 얘기했다. 내가 얼마나 이걸 좋아하는지, 관련된 경력이 없었던 나에게 어필할만한 것은 그 것 뿐이었다. 그후 꼭 한달을 애 태운 후 나는 그 회사의 입사 통보를 받았다. 그렇지만 입사하기 전엔 그 회사가 진짜 있는 회사인지, 이 회사가 정말 나를 뽑아주는게 믿기지가 않아 일부러 회사를 방문해 대표와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원해서 들어갔던 회사였다. 일년쯤 되었을 때는 환상이 모두 깨져 매일매일 야근을 하는 현실만 남았지만. 회사도 변했고, 나의 열정도 식었다. 우리의 달콤했던 허니문은 일년이나 갔지만, 일년 밖에 가지 않았다.  



-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을 하고도 한참 뒤에 들었다. 누가 이지혜님이 부른 버젼이 퇴사송 같다고 했다. 그렇게 이지혜님 버젼을 시작으로 원곡인 윤하, 권정열의 커버까지 두루두루 들었다.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도 마음에 쏙 들고,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라는 부분도 곱씹는다. 여기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때가 있다. 그건 회사를 다니면서 작아진 마음과 낮아진 자신감 때문일 때도 있고, 과거의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확실한 건 세상에 널린 것이 회사다. 세상의 절반이 남자듯. (물론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면 사랑 가망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직업이 내 인생의 파트너를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도 당연하고 시간을 쏟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이번 퇴사가 새로운 길 모퉁이라고 말해주는 노래를 들으며 내 앞의 새로운 시간들을 생각한다.  



-


연애의 헤어짐에 일방과실은 없듯, 나의 퇴사도 일방 과실은 아니다. 회사만 미친 것도 나만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냥 때가 맞지 않았거나, 방향이 맞지 않았거나, 입사할 때와 퇴사할 때의 상황이 달라졌거나 뭐 그랬을 뿐이다.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애초에 시작이 잘 못 된 일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때, 그게 나한테 최선이었던 걸 알아서 탓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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