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 대한 마음
혼자 여행을 떠나면 늦은 밤 당신에게 전화한다.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으련만. 나는 무심하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당신의 안부를 묻고 입을 닫는다. 그럼 당신은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온 것처럼 그곳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내가 살던 곳, 지금은 내게서 멀리 있는 평범한 생활의 소식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면 끽끽 스프링 소리가 난다. 조금 전까지 내겐 당신이 건넨 말들이 있었는데. 싱글 침대가 초라하지는 않았는데. 견디다 못해 텔레비전을 켜면 좁은 방에 낯선 말들이 가득 찬다. 이곳의 일상들. 다른 생김과 다른 말을 쓰는 이곳의 사람들. 하지만 알 수 없는 말들. 그 비밀스런 소음들은 적막만도 못해서 기어이 텔레비전을 끄고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그럼 또 마음이 일렁여 다시 당신에게 전화할까 망설인다. ‘그냥 걸었다’ 말하고는 이내 침묵할 테지만, 그 침묵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믿으면 되니까. 그때서야 나는 우리가 이리도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가끔은 우리가 아니고 ‘나’라서 생겨나는‘당신’에 대한 마음이 있다. 멀쩡한 휴대폰조차 꺼져야, 비로소 켜지는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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