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참 좋았다.
권고사직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
시간이 좀 지나고 차분히 생각해보니 권고사직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에게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의 변화에 따른 결정이니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감정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새로 바뀐 사람들과 환경이 남편의 성향과 잘 맞지 않아 남편이 지치고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변화를 꾀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권고사직 후, 남편에게 전한 마음
저의 인생 모토 중 하나는 '모든 변화는 결국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위기가 곧 기회다.'인데요. 살아오면서 직접 터득한 지혜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지금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도 뭔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를 하늘에서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에게도 이런 생각을 전하며 위로와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을 전했습니다.
남편이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거고 그럼 이대로 쭈욱 그냥 어떻게 보면 새로운 길에 대한 탐색 없이 갔을 텐데, 이렇게 멈춰가면서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이죠.
계속되는 저의 말에 풀 죽은 강아지처럼 추욱 처져있던 남편의 어깨가 다시 올라가면서 눈빛도 다시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을 울려버린 마지막 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날 남편만을 위한 작은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그동안 남편 회사 생활에서의 굵직한 이벤트 장면들을 사진을 출력해서 스케치북에 시간 흐름에 따라 붙였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덧붙여 직접 읽는 목소리를 녹음했어요.
오후 반차를 내서 남편과 같이 2시쯤 회사에서 나와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 남편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헤드폰을 씌워줬습니다.
제 목소리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한 장씩 넘겼어요. 처음에 놀란 표정이던 남편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같이 눈물이 차올랐어요.
팀원들의 배웅을 받고 나올 때 까지도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았는데 결국 제가 울려버렸지 뭐예요. 그 모습조차도 사랑스럽고 남기고 싶어서 얼른 휴대폰을 들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벤트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각인을 담은 펜 선물도 했어요.
그날 참 좋았다. 함께인 우리라서.
손을 잡고 근처 호수로 나와 벤치에 앉았습니다. 계절의 영왕이라는 5월. 그 이름값이라도 하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밝게 빛나고 있었고 호수는 벚꽃 구경을 하러 나온 웃음 가뜩 머금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5월의 풍경을 바라보며 남편과 말없이 마주 보고 미소를 나눴습니다. 그 순간이 참 행복하고 벅찼어요.
이 사람이 힘든 시간에 내가 곁에 있을 수 있어 감사했고 슬프고 지쳤던 남편의 얼굴을 내가 다시 웃게 해 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도 남편을 따스하게 안아줬어요. 저희 엄마는 우리 사위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따듯하게 안아주셨고, 시어머니께서도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고생 많았는데 쉬라고 따뜻한 눈빛을 건네셨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곁에 이렇게 남편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시동생은 형아 힘내라며 책도 선물해 줬어요.
여보, 힘내요. 조급해 마요.
여보 곁에는 항상 우리가 있어요.
(다음 에피소드 : 권고사직 후 인생의 항해사가 된 남편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