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하고 나면 왜 서로 간에 대화가 거의 없다고 했을까?
돌이켜 보면 재우는 샤워를 하고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거나 바로 잠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바로 일어나 서둘러 나갔다.
연우는 음....
'바로 코를 골며 자는군. '
마치 온몸의 진이 빠져나가 녹초가 된 거 같은 하지만 얼굴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얼굴.
' 저 만족한 얼굴.'
하지만 나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 연우가 코를 골며 잠이 들기 시작하자 스스륵 일어나 가운을 걸친 채 창가를 바라보고 섰다. 창밖 바라보이는 서울시 야경. 예상했던 서울시의 화려한 조명과 달리 여기는 그나마 궁궐이 보이는 나지막한 산세가 뒤로 이어진 멋진 배경.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와인 잔을 들고 문득 창에 비친 나와 창밖의 풍경은 너무 대조적인 느낌이 든다. 음 뭐랄까. 괴리감? 그 뒤 멀리 보이는 연우의 자는 모습은 음.. 배경?
흔히 남녀 관계에서 여자들에게 남자는 어쩌면 든든한 울타리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함께하며 위험에 처했을 때 때로는 강하게 나를 이끌고 때로는 부드럽게 감싸며 때로는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나를 든든히 지켜줄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같이 지키고 싶고 부서지면 고쳐주고 싶은 모성애가 드러나는 존재. 남자란 존재. 아니 어쩌면 배우자이거나 연인일지도 모른다. 서로 사랑하는 존재라면 서로에게 누구나 그런 존재여야 하니까.
애초에 성별을 따지지 않고 서로의 흔히 말하는 배경, 학벌, 재산 등등... 그 모든 게 서로의 관계를 뛰어넘어 눈이 뒤집히는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 때 저 울타리가 되어주는 게 아닐까. 아니면 울타리가 되어 저 모든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연우가 친구를 본다고 한걸 본 적이 있던가? 그는 항상 직장 나, 아니면 음. 그러고 보니 그에 대해 난 정말 아는 게 없구나. '
아 갑자기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그의 취미가 나였구나. '
그리고 그가 말한 매 순간 마치 우연처럼 너무나 말도 안 되게 자연스러웠던 이상한 순간들. 드레스코드, 경윤, 20살 때... 그때 산책길....
'아 아마도 시작은 거기였겠네. 그때 그의 호기심을 내가 자극했구나. 그리고 변수. 그에게 변수는 나였나? 아니면 나로 인한 일들이 변수였나? '
음. 이건 물어봐야겠다. 이건 알려주겠지? 다시 시선은 창밖으로 향하며 나를 바라봤다.
저 풍경 너머 어디에도 발 디딜 곳 없이 내 방하나 없이 있는데 이 넓은 서울 땅하늘 아래. 나란 존재는 울타리인가. 아니면 그 울타리의 보호를 받는 나약한 외톨이 부랑자인가. 잠든 연우를 보자 갑자기 확인하고 싶은 승부욕이 확 돋는다.
잠이 든 연우에게 다가가 시끄럽게 코를 고는 그의 얼굴을 슬며시 옆으로 돌리자 호흡이 안정되나 싶더니 그는 으음 소리를 내며 이내 나를 끌어당겨 뽀뽀를 하고는
" 자장자장"
" 흐흣"
나도 모르게 웃음을... 그는 눈을 스스륵 떴다. 그러더니 씩 웃더니
" 잠이 안 와? 너무 설레어서?"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불 안으로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내 몸을 칭칭 감는다. 그러다 문득 두 팔을 딛고는 내 위에서 나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순간.
" 오빠"
" 응?"
" 혹시 여기 좀 전에 코 골며 누어 자던 우리 연우 못 봤어요?"
" 크하하하. "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이글거리면서도 그윽한 그 눈빛. 그 눈빛으로 다시 내려다보며,
"봤어. 내가 보내버렸어. 지금 이 상황에 잠이 오냐고 엉덩이를 뻥 차버렸지. "
이렇게 말하며 스스륵 내 샤워 가운을 풀어헤친다. 그리고 천천히 키스를 해왔다. 내가 파르르 떨리면 떨리는 대로 거친 숨을 참았다가 때로는 내뱉었다가 완급을 조정하면서...
" 신기해. "
" 스읍. 흐음. 뭐가?"
" 지금처럼 그렇게 막 흥분할 때면 오빠는 숨을 들이마셔서 천천히 코로 뱉으면서 호흡의 완급을 조정하거든요. 그래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그의 얼굴이 어느새 붉어지는 게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통해 은은히 번지며 얼굴로 올라오는 그 색의 느낌이 보인다. 풉.
" 너도 신기해. 난 나름 태연하려 애를 쓰거든? 그러다 보면 습관처럼 그렇게 호흡을 조절하는데 넌 그런 내 호흡을 깨트려. 지금처럼 말이야."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다리를 들어 그의 다리를 타고 슬슬 문지르며 그의 발목에서 내 발목을 맞추고 다시 내 발목을 들어 종아리와 그의 다리를 맞추고 슬슬 문지르며 허벅지를 타고 오르자 그는 순간 탁, 내 발목을 잡았다.
" 너 너무 위험한 여자야. 아주 아주 알수록 더 신비롭고 위험해."
그러며 이번에는 거칠게 키스를 하며 그 큰손으로 내 목을 끌어당기는가 싶더니 이내 손으로 내 목을 타고 내려와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풀었다 그러다 내 허리로 손이 내려왔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나는 다시 그를 바닥에 눕히고 그의 위로 올라가 그의 얼굴 가까이 마주한 채 그의 머리카락을 스르륵 쓸어내리고는 얼굴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각진 이마, 코, 볼 그 볼에 얼굴을 비비고는 그를 내려다보며 쓱 웃었다. 그리고 잡았던 그의 두 손을 두고 그의 가슴에 양손을 올려둔 채 그렇게 앉아 마치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그에게 두 손으로 목을 타고 올라가 다시 그의 머리를 쓱 쓸고 그의 어깨를 타고 내려와 눈을 마주치며
" 내가? 위험한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아직 모르는구나? 얼마나 도발적인지. 현혹될지도 몰라요. 아마 밤새 시달릴지도 몰라. 꿈에도 나올지 모르고 일이 손에 안 잡힐 만큼 수시로.... 감당할 자신 있어요? 바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호기롭고 그의 가슴을 타고 손을 아래로 가져가 잔뜩 흥분한 그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가
" 크하... 아.."
그렇게 큰 들숨으로 들어마셔 참았던 숨을 단 숨에 내뱉고는 내게 격렬하게 다가왔다.
뜨거웠던 우리의 밤은 그렇게 저물고 아침이 밝아오며 나는 그의 품에서 눈을 떴다.
" 오빠 일어나요. 서둘러야 해. 쪽."
" 아 일어나기 진짜 싫다. 이리 와봐. 우리 5분만 더 있자. 아니 1분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를 더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먼저 일어나며
" 씻으러 가요. 어서."
그렇게 그와 샤워를 마치고 웃으며 처음 마주한 남자와 여자의 나체에 대해 또 한참을 서로 이야기하며 그렇게 웃으며 나왔다. 그와의 샤워로 이제 조금 남자가 어떻게 더 여자보다 빠르게 자극을 받는지 알 것도 같고 또 어쩌면 어떻게 하면 그가 더 자극적일지도 연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바쁘게 움직여 나를 데려다주는 연우에게
" 몇 시 마쳐요?"
" 오늘은 마치고 공부하려고."
" 오늘도 고생해요. 쪽."
그의 볼에 투명한 내 예쁜 입술자국을 남긴 채 나는 종종걸음으로 직장로 향했다.
으흐흐. 그는 나의 작전을 모른다. 흠. 알면 좀 재미없겠지?
일이 끝나고 바쁘게 오른 지하철에서 내려 나는 모자와 마스크, 흰 티, 청바지를 사서는 갈아입고 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환자인척 들어서다 마치 보호자인척 따라갔다 왔다 갔다 오가면서 태연하게 병원에서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연신 연우를 찾았다.
그가 근무하는 외과 병동은 수시로 사람들이 바쁘게 뛰거나 빠르게 걷거나 오가며 분주히 바빠 보이다 어느 순간 한적해졌다 다시 반복되며 그렇게 바쁜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지내는구나.'
' 쓱.'
누군가 내 마스크를 벗기더니 내 귀에 대고 말했다.
' 환자분 정신병동은 저쪽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연우였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를 보자
" 너 여기서 뭐 하냐. 아까부터?"
" 그게 오빠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혹시 내가 방해한 거예요?"
" 방해? 그렇지. 온통 머릿속에...."
갑자기 그가 내 귀에 대고 소곤댔다.
' 네가 어제 내 위에서 한 말이 맴돌았거든. 위험한 여자. 으흐흐. '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에 뒷짐을 쥐고 위를 보며
"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미치겠어. 막 따라다녀. 스토커야. 아주. "
" 어머 정선생님. 스토커가 또 왔어요?"
연우의 말에 누군가 대답을 하며 다가왔고 바라보니 나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이 계란형에 이목구비가 매우 선명한 예쁜 간호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 아. 아뇨. 명간호사님."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연우는 자리를 떴다.
나만 휑하니 그 자리 남겨둔 채. 나는 쭈볏쭈볏 거리다 하늘을 병동을 한번 바라보다 슬금슬금 벽을 잡고 돌아서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향했고 서둘러 급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명간호사가 따라 들어왔다. 그러자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인 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따라 엘리베이터에 급히 올랐다.
"정샘. 또 왔나 봐. 스토커. "
" 아무튼 인기는..."
" 그게 인기야? 본인은 얼마나 괴롭겠어. 그리 쫓아다니는데..."
' 아 난 왜 몰랐지?'
그가 바빠서 연락이 안 되고 자취방에도 진짜 잠시 들러 잠만 자고 가는 것도 주말에도 거의 병원에서 대체 근무를 서며 살다시피 해서 나는 그런 줄만 알았지 그가 왜 멀쩡한 자취방을 아예 안 가고 그렇게 지내는지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바빠서겠거니 공부한다고 또 숙소에서 자는 가보다 생각만 해왔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자취방에 드나드니 더 그는 조심했겠구나. 그런데 희한하게도 연우는 내게 그런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색조차.
1층 로비로 가자 어디선가 연우가 달려와 내게 차키를 주며
" 차에 있어.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건 뭐 키를 받기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