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6 09화

6-9. 울타리2

by moonrightsea

'도대체 몇 층에 어디에 주차된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음 우선 흰색인 거 그리고 차 모양은 아니까. 찾아보면 되겠지?'


호기롭게 내려간 주차장은 돌아도 돌아도 차가 너무 많아. 도대체 몇 층에 세워 둔 거야. 그렇게 주차장을 돌고 기웃거리고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와 주차장을 돌고 기웃거리고 키를 눌러보고 비슷한 차가 있는지 열심히 뒤지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톡톡 드린다. 내 등을.


고개를 돌려보니 TV에나 나올법하게 잘 생긴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그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는

" 여기 주차하신 건 맞으시죠?"


아 정신 차려야지.

" 네. 아 아니 대신 주차해 줬다고 해서 찾는데 어디 있는지를 못 들어서요."


" 아네. 혹시 차번호 아시면 찾으시는 거 도와드리겠습니다. "

'갑자기? 나 번호 모르는데? 맨날 오빠가 그 앞에 가리고 서 있거나 밤에만 봤으니 관심도 안 가져왔는데... 아씨. 외워둘걸 그랬나?'


" 아 번호가 왜 갑자기 기억이... 음 그게 그러니까 서울 000 20...."

" 아 그럼 보시면 아시겠네요. 잠깐 따라오시겠어요? 이쪽으로?"


" 네... 네? 시... 시른데요?"

그렇게 말하며 그를 다시 보자 병원 관계자옷을 입고 있었다.


'아차. 내가 행동이 많이 이상했구나. 에이. 어떻게 하지?'

난처해하며 서 있는 나를 두고 그는 어디론가 무전을 하고 웃으며,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무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대로 또 파출소로 가야 하나. 아니면 저 사람 말대로 흔히 말하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곳으로 끌려가 추궁을 당해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 미소야. "

와 영우오빠다.


" 아 정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시는 분이세요?"

" 네. 아 제가 차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서...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


" 네. 뭐 별말씀을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수고하세요. "


그렇게 그들이 인사를 나누고 나는 고개를 숙여 정중히 그것도 모자까지 벗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는 연우를 졸졸 따라 가 차에 얼른 올랐다. 휴우.


" 넌 무슨 가슴이 새가슴이야? 맨날 한숨을 그리 시도 때도 없이 쉬어?"

" 뭐.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오빠가 내 가슴이라도 갈라서 열어보기라도 했나?"


" 후훗. 갈라서 열어보지는 않았는데 열어는 봤지. 그랬더니 제법.. "




" 아 뭐래요. 칫. 아까 그러니까 아까 그 보안요원이 너무 잘.. 그니까 연예인 뺨치게 잘 생겨서 너무 놀라 그런 거거든요?"


" 응? 아. 그분? 하하하핫. 여자들이 보기에 그런 사람이 잘생긴 거구나. 으음."


부웅. 연우는 차에 시동을 켰다. 그 순간. 나는 잽싸게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 야. 뭐 해?"

" 잠시만요. 2024, 2024, 2024... "


그렇게 숫자를 외우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 너 지금 차번호 외우는 거야? 관심도 없더니 물어보면 되지. 그걸 왜 내려서 봐?"

" 조용히 해요. 머릿속에 지금 스캔 뜨는 중이니까. 2024.2024..."


" 훗. 뭘 그렇게 힘들게 외우냐? 말했잖아. 그냥 물어보지. 우리가 만난 해, 만난 일자인데."

" 응? "


나는 물끄러미 연우를 바라봤다. 그러자 연우가 연신 웃으며,

" 쉽잖아. 안 그래? 외울 때는 뭐든 의미를 부여해서 외워야지. 무작정 외운다고 그게 바로 외워져?"


" 헐 그럼 오빠는 저번호를 저렇게 주세요 한 거예요? 신기하다. "

"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몇 개 고르는 것 중에 의미를 부여해서 고른 거지."


" 칫. 그러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차번호판까지 바꾸겠다."

" 뭐 그때는 그때 되어봐야 아는 거고. 안 그래?"


" 흥."




" 어디로 모실까요? 아니지. 밥 먹으러 가야지? 어디로 갈까? 뭐 좋아하는데? 뭐가 드시고 싶으시죠? "

" 음. 레스토랑? 어제 갔던 곳으로 가주세요. 기사님"


" 어? 어제 갔던 곳? 괜찮겠어?"

" 뭐 어제 누구 때문에 그렇게 비싼 음식 맛도 모르고 제대로 못 먹고 그대로 나왔는데 오빠가 맛있는 거 다시 사줘야죠."


" 내가 왜? 돈은 네가 내야지. 비싸고 바쁜 이 몸을 이렇게 부려먹으면서?"

그러자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내 손 위에 그의 손을 올리곤 운전을 했다. 나는 그런 그의 손을 탁 뒤집으며


" 자 여기 돈. 밥값."

" 뭐야. 돈으로 줘야지. "


" 뭐 오빠가 밥사면 내가 뭘 줄지 알고. 흥."

순간 연우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 크핫"

순간 그는 운전대를 잡고는 웃었고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 방금 야한 생각한 거 맞죠?"

" 아닌데?"


" 맞잖아요. 동시에 야한 생각이랑 다른 생각은 잘 집중 못하잖아. 반사적으로 응? 봐. 손도 바로 운전대로 가 있으면서."




그러자 연우는 되려 화를 낸다.

" 아니 넌 무슨 여자애가 응? 남자가 밥 사준다고 덥석 응? 손을 잡고 응? 뭘 준다고 그러고."


" 뭐 어때 이제 오빠는 내 거고 나는 내 건데. 내 맘대로 할 건데?"


그러며 그의 손을 운전대에서 내려서는 다시 손깍지를 꼈다. 그러면서 환하게 웃으며 운전에 통 집중을 못하고는 힐긋 나를 보는 연우를 보며,


" 이러다 사고 치겠어요. 히히."


레스토랑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바로 가서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자 그가 씩 웃더니 팔짱을 내민다. 나는 그의 팔짱을 끼고 걸으며 나름 사뿐사뿐 걷기 시작했다.


" 오 이제 보니 옷에 따라 발걸음도 달라지는구나."

" 몰랐어요? 얼마나 민감한데요. 여자들이. 이런데 올 때는 적어도 드레스코드도 같이 맞춰줘야 그래야 맞죠."


" 오. 난 그런 의미까지 부여한 건 아닌데 가성비는 잘 맞았네. "

" 응? 그럼 오빠는 이 옷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거였어요?"


" 음. 보통 내가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내지 않나? 단어선정 어쩌고..."

" 아뇨. 중요한 건 의미죠. 그게 중요한 거니까. "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연신 웃고만 있는 연우에게 자꾸 졸랐다. 그는 묵묵히 웃으며

" 자 아가씨. 음식이 나왔으니 일단은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ok?"


" 네. 물주님."

" 크핫."


그렇게 웃으며 식사를 한참 하다 이내 못 참고 나는

" 의미... 무슨 의미일까?"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툭 하고 내뱉어버렸다. 그러자,


" 하앗. 크큭. 좀 민망한데? 내 머릿속에 있던 변수의 답하나를 꺼내줘야 하는 거야?"

" 아 변수! 답을 찾았으니 말해줘야죠."


" 음. 적어도 그 옷을 사줬을 때는 네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좀 치유도 받고 새로운 시작이 될 때 그때 네 옆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시작이 되었으면 했어. 그래서 그런 날 네가 내 곁으로 올 때 그 옷을 입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


" 와. 그런 의미였어요?"

" 후훗. 근데 본의 아니게 다 맞아떨어졌네. 몇 가지 변수만 제외하고 말이야."


" 응? 변수? "

" 뭐 그런 것까지는 다 말하고 싶지 않아. 난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


" 뭘 시작해요? "

" 음.. 공부."


" 왜 전문의 시험 떨어졌어요?"




" 크핫. 어서 먹어."

" 으음. 오빠 로맨티시스트였구나. 멋지다. "


" 이제 알았어?"

나는 스테이크 마지막 조각을 입에 물며 말했다.


" 그러게요.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나 더 얻어먹었을 텐데."


" 뭐 그동안은 서로가 다 바빴지. 넌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하느라 난 일하느라 너 따라 뒤치다꺼리하느라."

" 뭐가요. 제가 오빠 뒤치다꺼리 했지. 맨날 술도 거의 안 먹고 대리기사로 결국 돈도 다 받아가 놓고."


" 말은 바로 하지? 나 대리비는 줬거든? 1만 원씩 꼬박꼬박."

" 칫. 그거야. 응? 대리비로 주는 거 치고는 너무 적은 거고 집 앞에서 맨날 힘들게 아르바이트하고 오면 불러내서 잔소리하고 그래놓고. "


" 그건 걱정되니 그런 거고.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되니까. 너 또 사라지고 그럼 진짜. 지구 끝까지 쫓아갈 거야."

" 아유. 연우님 무서워서 어딜 가겠어요?"

" 풋. "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득 생각이 났다.

" 아까 병원에서 오빠 따라다니는 사람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 아... 들었어? 신경 안 써도 돼."


" 흠.. 난 그런 줄도 몰랐네. 오빠 집에서 잘 안 자는 것도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요?"

" 음. 내가 집이 없는 줄 알걸? 맨날 숙소에 사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사람인지라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 음. 그래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 뭐. 타일러도 보고 경찰에 신고도 해봤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안보이기는 해."


" 아는 사람이었어요?"

" 아 내방환자였어. "


" 음.. 그럼 응급 있을 때? "

" 별게 다 궁금하네.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내리시죠. 손님"


나는 그의 목을 팔로 휘감았다. 그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진하게 키스를 해왔다. 그리고 숨이 거칠어질 때쯤.

" 내려. 안 되겠다."




그러며 나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 왜에. "

" 오늘까지 이틀이나 외박은 안돼. 아직은. 아니야."


" 힝 "

" 오 두 사람 분위기 뭐지...? 그 손은 뭐고?"


희경이었다. 희경은 마치 무엇인가 알고 있듯이 우리 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오갔다.

" 헤헤. "

내가 희경을 보며 웃자, 희경이 냉큼 달려와


" 그냥은 못 데려가는 거 아시죠? 아직 소유권은 저한테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


희경에게 질질 끌려 들어가며 돌아보자, 그는 연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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