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버티는 자

포기하고 싶은 순간

by moonrightsea


저녁 7시.

퇴근길에 모처럼 미리 주문해 둔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와 맛있게 연수와 먹었다.

기분이 좋아진 연수는 흐뭇하게 우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 말을 듣다가,


" 그래서 밤에 우석 씨를 보자고? 내가 어찌 될지 알고?"

" 음 그러니까. 밤에는 안 되는 거고. 밤 근무 끝나고 비번 일 때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


그러자 연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 흠. 그것도 곤란한데?"


그러며 난색을 표했다.

" 왜? 우석이 하도 졸라서... 이제는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

" 우석이는 말이 너무 너~~~ 너무 많아. 위험해."

" 그렇기는 한데. 사실 우석이 그런 면도 있지만 의외로 진중한 면도 있어. "


" 음. 그래도 안돼. 불안해. "


" 음... 그럼 내가 네가 원하는 것 들어줄게. "

" 뭐 생각 좀 해보고.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야. "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벌떡 일어나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당황한 나는

" 아니 이 밤에 어딜 가?"


"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갑자기 스트레스받았더니 단 게 당겨서."

" 어? 스... 스트레스? 너 스트레스도 받아?"


" 그렇네? 천하의 내가?"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이내 윙크를 하며 계단을 후다닥 달려 내려갔고 나는 얼른 외투를 챙겨 따라나섰다. 이 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




편의점에서 쵸코가 잔뜩 붙은 아이스크림을 꺼내든 그녀는 매우 흡족한 얼굴로 내게 내밀었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그녀는 냉큼 내게서 아이스크림을 뺏어서는 한입 베어 물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편의점을 나섰다. 나는 후다닥 그녀 뒤를 따라 팔을 당겨 내 호주머니에 그녀 손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연신 핥으며

" 어?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내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려 들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깍지 끼며


" 어 이런다고 사라질 문제도 아니거든?"

이렇게 말하는데...


그 순간 그녀가 또 흔들린다. 깜박이며.


" 하아~ 또 시작인 건가..."


싶은 순간.




" 맛있겠네. 그거 나줘."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 컴컴한 골방 안.


문풍지를 잔뜩 발라둔 샷시 사이로 휘잉 거리며 겨울 한기가 들어온다.

내 손에 있던 아이스크림은 온대 간데없는데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아이스크림이 온전히 남아 있었고 여느 때와 달리 그녀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천천히 당황한 기색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녀를 바라보며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데 어느새 바닥에 이불을 몇 겹을 깔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두툼히 깔아 둔 그 위에 누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 아이스크림을 달라던 노파가 시선을 돌려 나를 먼저 바라봤다. 그리고는


" 저건 언제 데려온 거야?"


" 저건 내 거야. 저건 탐내지 마. 할멍"


나는 어리둥절해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뭐지? 저 천연덕스러움은?


" 그럼 그거 나주라. 아이스깨끼"


그러며 다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며


" 안돼. 내 건. 그리고 할멍.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제발 그만 좀 불러. 나 바쁜 몸이야. "


" 흐음. 그럼 내 소원 들어주던가."


" 그것도 안돼. 할멍이 미련을 놓던가."





" 그건 안돼. 난 살아야 하거든."


" 그럼 제발 부르지 말 거든가."


그러자 노파가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야 이년아. 내가 안 부른다고 네가 안 오냐? 지가 맨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는... 해달라는 건 안 해주고 말이야. 그렇게 잔소리할 거면 썩 꺼져. "


" 휴우~. 할멍 난리 치는 거 보니 들어갈 때가 되었구나? 어서 들어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노파의 몸 위로 튀어나오는 영혼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누워 있던 노파의 귀에 대고


" 그리 보고 싶으면 그냥 직접 가면 되지. 왜 자꾸 나를 찼누. "


그러자 노파가 어느새 눈물을 주룩 흘리며,

" 이 몸뚱이가... 몸뚱이가 말을 들어야지. 어딘 줄 알고 가. 거기를..."


" 그럼 미련을 버리던가. 할멍. 할 만큼 했잖아.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노파는 그러자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 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 안돼. 암. 난 이대로는 못 간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야. 때 되면 밥 먹었는지 손주 같은 애기들이 와서 물어봐 주지. 이쁜 애기들이 반찬도 가끔 챙겨다 줘. 이대로는 못 가. "


그러다 스스륵 벽으로 기대며 쓰러지듯 자리에 털썩 누우며,

" 이리 버티다 보면 오겠지. 그래도 얼굴은 보는 날이 안 오겠냐. 살아가다 보면 지 어미라고 눈에라도 밟히는 날이 올 텐데. 암. 내 그때까지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버텨야지... 암."



" 지친다. 하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 말 없이 거실 간이침대에 그렇게 쓰러지듯 누었다.


산 자와 죽은 자 경계의 시간.

연수는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의 부름을 받고 향했고 그곳에서 그들의 희망과 절망의 선택에 따라 그녀의 기운은 힘을 보태 그 생명에 온기를 불어넣어 그들에게 행운을 선사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기회를.


그런 그녀를 따라다니며 느낀 것은 그들이 미쳐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절망의 시간 앞에 오로지 하늘에 기댈 때 하늘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안타깝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선택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었다는 사실.


그 하늘의 선택마저 뛰어넘어 경계의 문턱을 넘는 자의 선택은 뭘까.


" 그 할머니 말이야. 아흔은 넘어 보이시던데 어떻게 아직도 요양원에 안 가고 계시지?"

" 흠..."

내가 연수에게 물었을 때 연수는 고개를 들어 안타까운 듯 창밖을 바라봤다.


" 아마도 몸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 정정하셔서? 흔히 인간이 말하는 골골 100세라고 말하는 거? 하지만 알고 보면 이미 쓸 대로 써서 돌아간 뼈마디며 굽을 대로 굽어버린 허리며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데 말이야. 그 온전한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버텨내는 거지. 아주 간절히 오늘은 아니라고 말하며 말이야. "


" 아... 그냥. 난 어르신들 보며 정정하시구나.라고 생각했지. 어떤 건지 몰랐어. 미쳐."


" 가끔은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복지사나 그런 사람들이 오면 신기하게 정신이 말똥 해져서는 아주 멀쩡한 사람처럼 행동해.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욕구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시는 거지. 그런 분들을 보면 난 쉽게 포기가 안돼. 가끔은 이제 그만 그 힘듦을 아니까.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은데... 근데 또 그게 싫으신 걸 아니까. 그렇게 할 수도 없어. "




나는 간이침대에 다시 걸터앉아 얼굴을 언신 쓸어내리다

"음. 그 아들에게라도 가볼까?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


" 안돼. 가봐야 소용도 없고. 이미 내가 가 보기도 했고. "

" 가.. 봤다고? 그 아들은 어디 사는데? 잘 지내고 있는데도 그분을 그렇게 둔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없이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 가끔은 말이야. 내가 못 가는 결계들이 있어. 아주 강력해서 근처만 가도 내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지고 온몸을 바늘로 후벼 파는 고통이 느껴지는 곳. "


그녀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지 손으로 어깨부터 팔을 쓸어내렸다.

" 자신을 지키고자 때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고자 강력한 바람을 가지고 그렇게 욕심으로 탐욕으로 똘똘 뭉쳐서 쳐놓은 것들.

검은 기운을 내뿜는 그 결계 안에 있는 것들은 눈동자부터가 달라. 광기 어린 그 눈동자에는 살기가 가득하거든. 그런 곳에는 내가 못 가. 그런 그들이 저렇게 선한 이들의 마음을 좀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지 그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있거든. 그래서 안타까운데... 그래도 그 선한 마음으로 그들 또한 버티는 거니 내가 그 결계를 넘을 필요까지는 없지. "


그러며 그녀는 내 곁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 내가 그런 그들의 희망을 꺾으면서 까지 그 선한 사람이 지키고자 하는 그 악한 기운을 지킬 필요는 없으니까. 그 악한 것들은 그들대로 하늘이 알아서 처리를 하니까."


나는 더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잃기도 싫었고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 결계가 어디든 어떻든 그저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그저 말없이 그녀를 더 포근히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연수와 함께 한 지도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훌쩍 내게 찾아들었던 그녀는 어느새 익숙하게 내 집에 원래 있었던 사람처럼 머물며 지냈고 계절은 겨울에서 어느새 봄이 되어 간다.


밤이면 수시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게 딸려 그녀의 세계로 가거나 가끔은 현장에 출동해서 그렇게 그녀를 만나기도 하며 이제 더는 불안에 떨지 않았다. 그녀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그녀 또한 어떤 힘듦을 겪은 지 알기에 그녀를 보면 나는 말없이 안아주고 함께 하기에 그녀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내게는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가며 어느새 그녀도 밤에 사라지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그만큼 내게도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우석이 우리 집으로 초대되어 오는 날이다.

아침 근무를 마치고 원래라면 잠이 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만큼은 잠들지 않고 깨어서는 퇴근하자마자 마트에서 삼겹살에 소주와 맥주를 샀다. 그리고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 우와. 우리 집 맞아?"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연수가 사다 놓은 화분과 하얀 커튼으로 어느새 집안 분위기가 바뀌어 있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저런 것으로도 이렇게 집 분위기가 달라지다니.


" 놀랐지? 내가 어제 좀 바빴어. 휴우. 뭐. 이틀 꼬박 열심히 집 좀 꾸몄는데 표는 나는 가봐? 어때? 신혼집 같아?"

나는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고는 다시 집을 한번 둘러봤다.


식탁 위 화병에 노란 프리지어가 꼽혀 있었고 그 아래는 연한 연두색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베란다 창가는 손바닥 크기 화분에 꽃들이 심겨 옹기종기 모여 놓여 있고 그 위로 하얀 커튼이 봄바람에 살랑 거렸다.


산이 바라보이던 안방 창문에는 어느새 체크로 된 파스텔 톤 핑크 커튼이 걸려 있었고 침낭을 치우고 침대를 두었던 방에는 너저분하게 널려 있던 이불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 저 옷방은 절대 못 열어보게 해야 해. 저 방은 정리 못했어. "

" 알았어. 그렇게 할게."

" 내가 사 오라고 한 건 다 사 왔어?"




" 응. 근데 김치는 이거면 충분해?"

" 뭐. 오늘만 먹으면 되니까. 모자라면 우석 씨한테 가져오라고 해. 어차피 우석 씨가 먹을 거니까. "

" 훗. 모자라면 더 사 올게."


한 번도 집에 누군가를 들여 본 적도 없던 내가 연수를 집에 들이고 두 번째로 집에 초대하는 녀석.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 녀석을 업고 부축해서 그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든 터라 부모님도 얼굴도 다 아는 터라 한 번은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오후 2시.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여니 화장지를 든 우석.

" 안녕하십니까? 귀하신 연수 씨 보러 왔습니다. 드디어 얼굴을 보네요. 하하하하하"

"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

연수는 걱정과 달리 반갑게 우석을 맞이했다.


" 어디 보자. 오. 그래도 집구석이 어둡지는 않네? 역시 연수 씨가 있으니 다르네. 확실히."


그렇게 말하고 우석은 냅다 신발을 벗고는 집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고 커튼이며 화분이며 붙잡고 하나하나 잔소리를 하며 인사를 하며 난리도 아니다. 그러다 옷방 문고리를 잡자 말자 내가 막아 섰다.


" 아 여기는 절대 안 돼~!"

" 어. 뭐야. 그러니 더 궁금하잖아. 뭔데? 뭔데? "


보다 못한 연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 그 방은 옷방이에요. 짐방. 정리 안돼서 그러니 절대 출입 금지. "


" 뭐. 우리 사이에 그런 걸 다. "

방 문고리를 잡고 선 나를 기어이 때내고 문을 연 우석은 바로 문을 닫았다.

" 안 본 걸로 할게. 암. 뭐 하나쯤 집이 하자도 있는 법이니까. "




그러며 슬그머니 연수 얼굴을 바라봤고 연수는 이내 분노에 어린 눈빛으로 우석을 째려보다 눈을 지그시 내려 깔고는 주방으로 향해

" 고기나 드시죠. "

" 예. 제수씨. 하하하하하."


맛있게 고기를 먹던 우석은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지

" 근데 왜 제수씨 오늘은 출근을 안 했어요? 설마 저 온다고? 아하하하. 아님 조퇴하신 건가? 으흐흐흐"

" 아 저 농땡이 부려서 잘렸어요. 백수예요. "


" 예? 아... "

우석은 민망한지 술을 한잔 들이켰다. 그러더니 미안해하며 연수에게 한잔 건넸고 내가 냉큼 술잔을 뺏자,

" 야. 너는 술 안 먹어도 연수 씨는 드시겠지. 안 그래요? 재수 씨?"


그러며 연수에게 재차 술을 권했다. 그러자 연수가

" 흠. "


그러더니 술잔을 받아서 한잔 들이켜 마시더니 갑자기 바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 아... 미안. 못 드시는 줄 몰랐어. 에이. "


그러더니 우석은 연신 술을 들이켰다. 놀란 건 나였다.


' 연수는 술을 잘 먹는데 왜 화장실로 달려갔지?'


꽤나 우석의 술잔을 채워주고야 연수가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 미안해요. 속이 안 좋아서... 술이 안 맞나 보네요. "




" 뭐. 제가 죄송하죠.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에이 술잔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뭐. 저라도 먹죠. 하하하. "

그러며 혼자 또 술잔을 채워 먹었다.

그러더니 연거푸 먹은 술이 한 번에 오르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서는


" 아 근데 이 자식이 말을 안 해서... 제가 몇 번을 말했거든요. 연수 씨한테 말해서 여자 친구 좀 소개해 달라하라고. 근데 이 자식이 연수 씨 말만 해도 난리를 쳐서... 에이. 연수 씨 그만둔 줄 알았으면 아니지 진작에 그만두기 전에 더 졸라서 소개팅이라도 해달라고 할 걸. 그래도 혹시 같이 일하신 분 중에 저 좀 소개해 줄 사람 없어요? 저 알고 보면 꽤나 준비된 신랑감인데!"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운지 또 술잔을 들이켰다. 그런 우석을 보며 연수가

" 후훗. 찬찬히 찾아볼게요. 어울리는 사람 있는지"


내가 놀라서 연수를 바라보자 연수가 내게 윙크를 했다. 나는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느새 사다 놨던 술이 떨어지자 우석은 2차를 가려고 했고 나는 그런 우석을 태우고 우석의 집에 내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 마치 큰 숙제를 한 기분. 그래도 나름은 뿌듯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집에 들어서자 연수는 정리를 거의 끝내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내가 뒤에 가서 살며시 허리를 감싸자


" 설거지는 마저 할 거지?"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로 가서 새로 산 소파에 늘어지게 누어서는 핸드폰을 봤다. 그런 연수를 한번 바라보고 나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연수의 곁에 가서 파고들었다.

" 오늘 고마워. "


" 그럼 소원 들어줘야지?"


나는 연수의 볼에 입을 맞추며

" 말해봐. 무슨 소원 들어줄까?"




" 조금 더 따뜻해지면 하루 날 잡아서 통영 한번 가자. "

" 음. 그래. 그거라면 얼마든지. 날 좋아지면 가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TV라도 살까?"


" 필요 없어. 그딴 거. 안 그래도 속 시끄러운데."

세상 일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 집에 오면 거의 책을 보거나 잠들기 바쁘고 어지간한 일들은 거의 핸드폰으로 처리해 온 상황이라 TV라고는 생각도 안 해왔지만 막상 집에 하루종일 머무는 연수를 생각하니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그래도 혼자 지내려면 TV라도 보고 하면 시간도 잘 가고 좋은...."

" 쉿. 조용히."


" 왜?"

" 빨리 119. 맞은편 아파트"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는 놀라서

" 저 00동 00 아파트 103 동요. 급해요. 빨리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들고 미친 듯 달려 나갔다.

전화기 너머로


" 저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

" 저 부부싸움 소리 듣고 지금 가고 있는데 비명소리 들어서요. 잠시만 헉헉헉헉... 저 헉헉... 센터 오늘 비번인데 지금 헉헉 헉헉 현정우입니다. 잠시만요. 헉헉헉헉"


미친 듯 달려 나가 앞 동 출입구로 갔을 때 소란스럽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사람들 시선이 닿은 곳에 보자 연수가 쓰러져 있고 그 위에 어린아이가 안겨 울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베란다를 보자 3층에 위태롭게 여자가 매달려 있었다.

" 급해요. 어서 출동해 주세요. "




나는 서둘러 연수에게 다가갔고 어린아이의 의식을 확인하자 아이는 다행히 울며 다친 곳 없이 멀쩡했지만 연수는 의식을 잃었었다.

'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당황한 사이 누군가.

" 어머 피~ 어떻게!"


곧이어 119가 도착하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3층으로 이동한 사이 연수를 흔들며 깨우자 그녀가 흐미하게 신음을 하며

" 하.... 아.. 배가... 아파....."

그녀의 말을 듣고 내가 놀라 그녀의 배를 보자 그녀의 다리 사이에 피가 보였다.


연수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연수가.

어떻게 피를 흘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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