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면 얻는 것
한 달이 되어간다.
시간은 너무나 쏜살같이 그렇게 흘러가고 일상은 너무나 정신없이 지나간다.
연수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서 누워 지낸 지 벌써 한 달.
그동안 나는 경찰서에 동사무소에 병원에 그렇게 드나들었다.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왔을 때 그녀의 주민번호도 몰랐고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정연수 이름 석자, 입원수속을 밟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임신을 한 그녀에게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하고 난리를 쳐서 겨우 입원은 했지만 각종 검사를 하려니 임신이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그나마 그것조차 보호자 동의도 받아야 해서 경찰서에 가서 신원조회를 하고 경찰에서 연락을 받고 가서 한때는 뒤죽박죽인 출생신고에 실종에 한때는 모 대학 졸업장에서 겨우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가 근무했던 유치원에도 찾아가 사정해도 개인정보라 신상도 알 수 없어서 그래서 경찰서를 동사무소를 들락거리며 겨우 찾아 모은 그녀의 정보들. 가족도 지인도 찾을 수 없고 그 흔한 사진도 없는 그녀.
그런 그녀를 입원 수속을 밟고 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개인정보가 없는 그녀를 대한민국에서 받아줄 리 만무했다.
그 좋은 의료시스템도 경찰을 통해 보호받는 그 많은 정보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당연한 듯 여겨져 왔던 사회시스템들은 어디까지나 신분이 증명되고 존재가 증명되어야 가능한 일들이기에 그만큼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며 그녀를 동사무소에서 주소지 불명을 우리 집에 동거인으로 올리고 그것조차 내 신분이 공무원이라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또 다른 사회시스템이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적어도 살아가려면 대한민국에서 내가 알고 있는 병원, 약국, 뭐 이런 것들을 이용하려면 당연한 것들이 알고 보면 나를 지키고 내가 누리는 혜택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 깊이 와닿았다.
이런 것조차 이용할 수 없는 외국인이었다면 노숙자였다면 뭐 연수도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회에서 바라보면 연수는 실종자에 주소지 불명에 신분도 제대로 확인조차 힘든 희한한 사람이었으니 그나마 경찰에 오가며 친분이 생긴 형사가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찾으려 애를 쓴 덕에 알 수 있었지만 그 관심조차 그녀와의 만남에 대해 말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나는 꽤나 애를 먹었다.
그녀의 나이에 대해 알지도 못했기에 그저 사고로 알게 된 사이정도로 말한 상황에서 되려 형사는 나를 매우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 정우 씨 알고 보니 참 사람이 속이 깊은 사람이었네. 이리 내색 않고 힘든 이웃을 도울 줄이야. 뭐 사연이야 있겠지만... 어쨌든 둘이 같이 산다니 더는 뭐 안 알아봐도 어떻게 되겠지. "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나는 그 몇 시간 못 자는 순간에도 그녀의 곁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저 이상한 여자로 보는 그녀가.
그런 그들에게 설명조차 못하는 그녀가 그녀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지 미쳐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내게 삶이고 존재이유였고 지금은 우리의 생명을 품은 존재이니까.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한 달 넘게 오가며 알게 된 사실.
그녀는 o형에 신체 나이 29세, 그리고 이제는 주소지는 우리 집. 이제 임신 8주 차.
병원에서 그녀가 의식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실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병실 베드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 일어났어? 깨어난 거야? 괜찮은 거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곁에 앉아 천천히 그녀를 어루만졌고 그러자 그녀가 스르르 내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 할 멍이 갔어. 선물을 준다더니. 말이야."
아 그때 그 노파말인가 보다. 나는 몰랐지만 그녀가 낮에 혼자 있을 때 그녀는 그 노파에게 가서 가끔 시간을 보내온 모양이었다.
" 나 쓰러진 날. 할 멍이 나한테 왔더라고. 휴우."
연수가 천천히 그날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게 말했다. 그녀가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안으려 들었을 때 노파가 홀연 나타나서는 그녀에게
" 니 거나 챙겨. 이년아. 내가 대신 갈 테니. 이건 선물이다."
그러며 그녀의 배를 부여잡고 노파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녀가 안았던 아이는 다행히 멀쩡하게 구했는데 그녀는 그 아이를 노파가 구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영혼이 노파에게 갔을 때 노파가
" 이제 너도 네 삶을 살 때가 된 거야. "
" 삼신 할 멍 이제 이승에서 미련은 접어둔 거야?"
" 애초에 미련일랑은 없는지 오래되었지. 니 년이 이리저리 난리 쳐서 나도 덕분에 잘 쉬었다. 이제 나도 내 일하러 가야지. 너도 이제 숙제를 해야 하지 않겠니? 아가?"
그렇게 하늘에서 내린 과업. 몇 천년 반복되어 온 업을 뒤로 인연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하늘의 숙제를 노파의 선물을 받아 들고 다시 내 곁으로 온 그녀.
그녀는 정말 사람으로 다시 삶이 시작된 것인가. 이제 그녀는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며 우리의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문득 혼란스러운 생각도 잠시 뒤로 하고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눈을 뜨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라도 의식이 돌아오고 이렇게 말을 하고 내게 뚜렷이 나를 기억하는 그녀를 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
" 아이는 무사해. 우리 아기도. 잘 자라고 있대."
" 그래야지. 보통 아이가 아닌데. "
그녀는 배를 한번 쓱 문지르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다시 침대로 파고들었다.
" 피곤하다. "
그녀의 말에 이제야 조금 나도 기운이 나기도 또 긴장이 풀리기도 하였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바닥에 간이침대를 빼서는 곁에 누어 그녀의 손을 잡고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 보호자분. 보호자분. 일어나 보세요. 혹시 환자분 못 보셨어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놀라 눈을 떴고 침대에는 연수가 사라지고 없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병원 복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당황한 것도 잠시, 어느새 그녀는 창가를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 아 놀랬잖아. 어디 갔었어?"
" 아 잠시 1층에. 바깥공기가 마시고 싶어서. 퇴원은 언제 가능해?"
" 아 잠시만 내가 알아보고 올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알았지? 아직 돌아다니면 안 돼. 위험해."
의사와 상담을 받고 1주일 정도 더 입원을 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연수는 고집을 부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연수를 데리고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또 고집을 부리다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러고도 남을 뭐... 인간은... 아니 연수니까.
집에 들어서며 연수를 침대에 다시 눕히고 따스한 보리차를 가져와 그녀에게 주며
" 몸이 조금 괜찮아지면 우리 아기 줄 선물 좀 보러 가자."
" 선물?"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가 의식을 찾고 입원해 있는 동안 근무시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도 임신기간 동안 산모가 준비해야 할 것부터 주의할 점. 음식. 준비할 출산용품등 혼자서 꽤나 많은 것을 알아봤다. 곁에서 우석이.
" 와. 너는 무슨 홍두깨비도 아니고 갑자기 어디서 여자가 뚝 떨어지더니 이제는 아이가 뚝 떨어지고 진짜 뭐냐? 내가 살다 살다 뭐 이런 경우를 나참. 필요한 거 뭐냐? 내가 제일 비싼 걸로 사줄게. 우리 제수씨 뭐가 제일 필요해?"
그러며 우석도 곁에서 관심 없는 척하더니 어느새 같이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고 제법 우석도 뛰어난 친화력과 인맥으로 주변의 여직원과 소통하며 많은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다.
소방서에서 다들 쉬쉬했지만 나와 연수의 관계도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 이 좁은 동네에 알려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연수를 만나기 전에 존재감도 없던 나는 어느새 착한 예비아빠가 되어 있었고 어느 날부터는 문득문득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 애기는 괜찮아요?"
" 초기는 조심해야 해요. 집안일도 시키지 말아요. "
" 오호호 호호. 한참 입덧할 시긴가. 아 난 그때는 입덧 엄청 심했는데 뭐 먹고 싶은 거 물어보고 사다 줘요. 평생 원망 들어."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는 내게 답도 채 못하는 내게 손사래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부터 말없이 측은한 눈빛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는 직장상사까지. 갑자기 받는 관심이 부담스럽고 또 이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 삶 속에 또 다른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어 가고 있었다.
" 가야 한다니까."
" 아니 집을 놔두고 거길 왜 가냐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
한참 아이가 태동을 시작하고 벌써 부쩍 자라서 6월 중순. 여느 산모와 달리 연수는 배도 표가 많이 났다.
연수는 더 더워지기 전에 지리산에 가겠다고 난리를 부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옮기거나 때려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산모를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는 곳으로 혼자 보내자니 보통 난감한 게 아닌 데다 나는 절대 연수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퇴근하면 유일한 낙이 연수와 연수 뱃속에서 자라는 우리 아들을 보는 게 낙인데 그런 낙도 없이 어떻게 지내란 말인가.
" 안돼. 이번에는 절대 양보 못해.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못 가. "
" 여기는 위험해. 지리산에 산파가 있어. 그리 가야 돼. 우리 별이 기운이 거기 가야 받을 수 있어. 당신이 고집을 부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야."
적어도 저렇게 말해 버리면 나는 뭐라 더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내가 모르는 그녀의 영역 안에 있는 존재들을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을까.
" 그럼 주말에 내가 휴가를 쓸 테니 같이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 그것도 안돼. 당신의 기운을 그곳에 가져가면 안 돼. 당신의 흔적도 가져가서는 안돼. "
" 왜! 왜 나는 가면 안 되는 거야?"
" 그게 룰이니까."
그녀의 세계에... 존재하는 룰....
하아. 나란 인간의 존재감은 왜 이럴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나 보다.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이 왜 이리도 비참하게만 보일까. 어느새 연수가 다가와 나를 감싸 안았다.
" 너무 걱정하지 마. 겨울이 되면 아기와 다시 돌아올게. "
" 난 아기도 아기지만 당신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 거야.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제발. "
그녀가 없는 그 몇 달을 나는 어떻게 지내야만 하지?
" 오지 마. 오지 마.. 감히... 네가 여길 어떻게..."
겹겹이 보안이 둘러 쌓인 담벼락을 지나 방탄유리를 넘어 인공호흡기를 단 그에게 다가서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내 저었다.
" 이제 그만 내려놔야지."
" 아니야. 아니라고. 아직 안되었다고. 난 더 여기 버틸 거야. 다가오지 말라고!"
" 이미 네 명은 네 어미에게 받았어. 그러니 내가 거둬가야 해. "
손을 천천히 들자 어느새 내 손은 피가 낭자하다.
이 결계를 뚫느라 이미 몸은 만신창이. 하지만 저 부질없는 목숨을 거두려면 이런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가 거둬들인 수 없는 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탐욕과 부귀는 어느새 그를 요새에 끝도 없이 쌓인 재물과 수많은 땅으로 그의 이름을 올려뒀지만 그도 한 낯 목숨이 다해가는 인간임을.
" 네 목숨을 내놔야 한다고 네 무녀가 그러지 않던? 그년이 헛짓거리 하며 그리도 네게 재물을 뜯어 가놓고 기껏 내가 온다고 알려주지는 못했는가 보구나. "
내가 손을 들자 내 손끝을 타고 흐르던 피가 그의 살에 떨어지며 검은 반점을 만들고 얼굴에 검은 버섯이 피기 시작하면서 그는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지 이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의 비명에 놀란 식솔들은 달려와 그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 아버지. 아버지. 여기 여기 싸인이 필요해요. 이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
" 저 새끼는 또 저 지랄이야. 갈려면 한 번에 가지. 어찌 저리 명이 길어서는."
" 엄마. 좀 제발. 나가 있어!"
달려온 것들의 얼굴에도 피어난 그 검은 버섯들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보다.
피부 깊숙이 그의 피로 얼룩져 어느새 살갗을 파고들어 독처럼 번져 있는 것들. 그 탐욕이 피를 타고 심장을 돌아 온몸으로 번지는데 몇 년이 걸릴지 장담은 못하지만 그가 내 손에 숨을 넘기고 나면 연에 그들도 이 집안에 명이 다 할터.
남의 운을 탐하여 가로채고 그 운을 천운이라 말하며 탐욕으로 채워 어느새 자신들의 성으로 곳간을 가득 채운 그들의 눈에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로지 저자의 눈에만 서슬 퍼런 눈빛으로 푸른 불빛을 내뿜는 내 몸뚱이와 검붉은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그의 몸을 태우고 있는 내 손끝만 보일 뿐.
내 손끝이 그의 심장에 닿았을 때 나는 태동을 느꼈다. 내 손끝을 타고 흐르는 그의 피. 썩을 대로 썩은 그 피를 양분으로 빨아들이는 내 아이. 그가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아이의 심장은 더 요동치며 강하게 뛰었고 그렇게 그의 명을 거두고 그가 포기 못하고 질질 끌어 가던 명운을 다 했을 때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어느새 그 집을 둘러쌓던 결계는 허물어지며 주변에 검은 그림자들이 득실대기 시작했다.
" 이제는 니들 차례다. 가거라. "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 잘도 내 기운을 가져가 숨어 지냈구나."
내가 태어나자 마자 내 아비를 꼬여 나를 물에 내 던지고 내 기운을 가져간 그녀. 그리고 내 기운으로 이제껏 젊음을 유지한 채. 숱한 가정을 파탄내며 남자를 꼬여 그렇게 재산을 탕진하게 만든 뒤 종적을 감추고 다시 다른 남자에게 빌 붙어 똑같은 짓을 반복하며 점점 악귀로 변해 버린 그녀.
나를 보자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오줌을 지렸다. 그러더니 이내 곁에 누었던 남자를 깨운다.
" 일어나. 자기. 자기... 엉엉... 엉엉엉엉엉. 자기야. 좀 일어나 보래도....."
" 깨워봐야 소용없다. 그놈은 어차피 너를 버릴 테니까. 이미 버렸기도 했고."
" 야. 니.... 니년이 뭔데...! 뭔데... 엉엉.... 다... 다가오지 마..... 악!!!!!!!!!!!!"
그녀는 몸서리치며 벌떡 일어나 침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의 곁에 누었던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몸부림에도 아랑곳 않고 코까지 골아가며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타 그녀의 턱을 부여잡자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쭉 펴고는 넋이 나간 채 나를 바라봤다.
" 네 이년! 네 년이 어디 감히 신을 흉내 낸단 말이냐. 네 년이 그러고도 제 명에 살기를 바라는 게야?"
그러자 그녀는 손이 발이 되게 바들바들 떨어가며 빌기 시작했다.
" 자... 잘 못.. 했어요. 제가... 제가 미쳤나 봐요... 제가 진짜..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사 사살려 주세요. "
나는 천천히 내려와 손에서 흐르던 피를 한번 입으로 스읍 훔치고 내 곁에 있던 여자에게 고개를 까딱 하며 신호를 보냈다.
" 말해라. 이제 네 억울한 마음을. 이번 한 번으로 네 년도 마음에 담아 둔 건 끝을 내야 해. 알겠느냐?"
"네. 마마. "
그러고는 여자는 매섭게 넋이 나간 그녀를 노려 보며 말했다.
" 네가 내 남편을 꼬여 저리 만들어 놓고 내 아이는 죽이고 그러고도 무사히 잘 살기를 기대했어? 행복하길 바랐던 거야? 내 남편이 네 옆에 누워있다고 네 것인 줄 알았지? 후훗. 그래. 어디 잘 살아보거라. 얼마나 잘 사는지 내가 매일 네 꿈에 이 모습 이대로 나타나 줄 테니. 잘 기억해 두거라. "
" 그만. 이건 약속과 다르다. 너는 이제 떠나야 할 몸. 저년의 명은 이걸로 끝인 게야. 저 년의 몸에 든 악귀는 내 손으로 거둬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거라. "
" 네 마마. 그... 그럼. 그냥. 너는 평생 그 몸에서 떠나지도 못하고 살거라.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듯 그렇게 살거라. "
내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자 내 손을 타고 그녀의 머리 위로 검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그 피로 눈앞이 가리자 드디어 악귀도 모습을 드러내려 꿈틀거렸다. 일 순간 그녀의 눈이 뒤집어지며 내 손의 핏속으로 악귀는 빨려 들어 내 몸 안의 피로 다시 내 배속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또다시 꿈틀 대는 태동.
" 네 년은 도대체 몇 명을 저런 식으로 해쳐 먹은 거야. 셀 수 없이 많은 집안을 풍비박산을 만들었구나. 고얀 것."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며 나는 말했다.
" 이제 그만 너도 가보거라. 저기 누운 저자 따위는 잊어버리고. 가서 먼저 간 네 아이들과 새로운 생을 맞이하렴. 좋은 곳으로 가서 다시 태어날 테니. 너무 염려 말거라. "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이런 일 따위는 애당초 원하지 않지만 이 또한 나의 업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치워야 지리산 결계를 깰 수 있다는 말인가.
" 오랜만이구나. "
내가 놈의 목을 한손으로 들어올리자 눈깔이 뒤집힌 그 새끼는 미친 듯 칼부림을 치며 요동을 쳤다. 옆에는 이미 피가 낭자하게 살해 당한 여인이 누워 있고 그 옆에 남편과 아이도 이미 살해 당한 뒤. 일이 이지경이 되어야지 실체를 드러내는 이 새끼를 잡으려면 결국에는 내가 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 이 잡귀 새끼. 내가 그때 너를 태워 죽였는데 어떻게 다시 이곳에 온게야? 응?"
" 이히히히히히. 놔. 이거 놓으라고. "
독하디 독한 이새끼는 지 얼굴이 타들어가는데도 내 피를 연신 핧트면서도 미친 듯 발광을 한다. 오래된 악귀는 고통을 더 즐기는 법.
" 그래. 좋아 죽겠지? 이번에는 너를 아주 가루로 만들어주마. "
" 그거 좋지. 이번에는 어디에 뿌려 줄거야? 지난번에는 바다에 뿌리더니 이번에는 어디로 데려가는거야?"
그러면서 연신 반이나 타버린 지 어깨에 떨어진 내 피를 핧는다.
" 미친 새끼. "
내가 분노로 화르르 불이 붙자 악귀는 고통에 몸부림 치기 시작했고 악귀가 붙었던 사내는 맥없이 바닥에 주저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 야이 개새끼야. 니가 불렀어? 이 악귀를? 왜 부른 거야? 응?"
" 배... 배가 너무 고파서... 미친 듯 배가 고팠어. "
" 허. 미치겠네. 저 안에 또 들었네. 머 저런 머저리 같은게 다 있지?"
오 백년 전에 바다에 뿌렸던 악귀를 그렇게 태워서 재로 만든 뒤 바닥에 주저 앉은 자식의 목을 조르자 다시 목구멍으로 툭 튀어 오른다. 그 검은 연기를 손바닥으로 낚아 채자 내 손의 검붉은 피가 팍 튀었다.
" 넌 뭐지? 하다 하다 이제는 사람의 영혼도 아니구나. 악귀도 아니고. "
닥치는대로 살생을 저지른 자의 몸에 붙은 온 갖 구역질 나는 것들은 악귀에 온갖 생명의 영혼이 엉겨붙어 내 피조차도 튕겨 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검은 연기를 둘둘 말아 입안에 넣고 질겅 질겅 씹어서 넘겨 버렸다. 목을 타고 흐르는 타는 듯한 고통. 연이어 이어지는 구역질. 그리고 입가로 흐르는 검붉은 피.
구역질을 하며 피를 토하고 그렇게 미친 듯 피를 흘리며 다다른 지리산 가마터.
" 아직 덜 먹었잖아. 여길 벌써 오면 어떻게. 다 먹어치우고 와야지. 달이 덜 찼는데."
" 붉은 달이 떴잖아. 안돼. 난 더는 못하겠어. "
긴 수염을 허리까지 늘어 뜨린 노인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지만 나는 그 앞에 축 늘어진 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직 두 달은 더 있어야 하지만 더는 이 짓은 못하겠다.
" 저 아이를 씻기기에는 피가 모자른데. "
" 이만큼 나쁜 기운을 정화했으면 이제는 저 아이에게 좋은 기운을 채워줘야지. 뭘 얼마나 더 나쁜 기운을 거둬 들이라는 거야. 난 못하겠어. 구역질 나. 우엑. 우엑."
가마터 곁에 쓰러지듯 기어가서 백자 항아리에 구역질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내 치마아래로 손을 쑥 집어 넣더니 이내 아이를 받아냈다.
" 어찌하겠누. 남은 운은 이 아이의 몫이니. 이제는 이 아이가 가져가야지. "
" 그건 안돼. 내 업은 내 때에서 끝내기로 했잖아. 저 아이까지 이 업을 받게 할 수는 없어!"
"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다 하늘이 주는 것을. 어디 감히!"
" 우엑. 우엑!"
나는 연신 속의 나쁜 기운을 토해냈고 노인은 내가 뱉어 놓은 선홍색 피로 아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내가 뱉었던 선홍색 피는 어느새 아이의 몸에 닿자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곧 울음을 터트렸다.
" 으으응애~응애~"
내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보자 하늘 위 붉은 달은 휘엉청 드 높이 떠 올라 있다.
" 달이 차기 오르긴 했구나. 나올 때가 되긴 했었군.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