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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Nov 01. 2020

여행을 영상과 글로 기억하는 일

지난 터키 여행에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한 식당에 남긴 기록 - My TW, HBD!
2020년 3월 13일

싱가포르에 온 지 9일이 되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당신과의 여행을 다시 되새기며, 영상을 만들고 글도 써보았다. 

그래서 나는 소중했던 날들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마치 내가 경험한 어떤 추억을 그때 그 시점으로 돌아가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당신과 함께 떠난 유럽여행과 아프리카 여행은 유독 더 그랬다. 유럽여행의 경우 잔뜩 순간을 기록해놓은 글을 보고 영상을 만들었고- 아프리카 여행은 영상을 먼저 만들고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은, 사실적인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에서 보여줄 수 없는 그날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고, 영상은, 글이 담아내지 못하는 사실적인 현상을 보여주어, 그제야 온전히 상호 보완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언제 어디서든 당신과의 여행을 떠올리며 그때 우리의 모습과 당시 나의 감정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당신에게 깜짝 선물이라며, 우리의 유럽 여정을 정리한 글을 보내주었고, 감사하게도 당신은 그 글을 참 좋아해 주었다.

   

우리는 참 많이 닮았다.

어제는 잠들기 전 당신과 한 시간 반 동안 영상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은 우리가 만남을 시작하고,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걱정이 조금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일정을 짜야 내가 좋아할까? 재밌어할까? 그런 숱한 고민들- 


겉으로 봤을 때, 나는 이미 또래에 비해 많은 곳을 다녀왔기도 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을 것 같고-

그래서 새로운 것, 재밌는 것,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했었다고-


그러나 그런 고민은 첫 번째 여행을 마치고 사라졌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며 다시 알게 된 나의 모습은, 화려한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보단,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항상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당신이 어떤 풍경을 보고 좋아하면, 그 옆에서 2배로 더 좋아해 주는 내가 있었고, 그가 즐겁다고 느낄 때면 2배로 더 즐거워해 주는 내가 손을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지난 유럽 여행 중 마주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이 생각난다고 했다.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던 길, 국경을 지나면서  보수석 쪽으로 아리아이해 연안이 쭉 펼쳐지는데 -

햇빛에 비춰 일렁이는 그 해변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게 바로 행복이라며 당신은 아직도 그 해변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저 내게 보여주면, 나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을 그때부터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당신이 파악한 나의 모습은 정확했다.

나는 입도 그리 고급진 편이 아니라,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잘 모르며, 파인 다이닝 보다는 소소하게 차려져 있더라도,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컬 레스토랑의 맛이 더 좋아한다. 여전히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이다.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하루 지나면 먹었던 술의 이름조차 까먹기 때문에 그저 술을 마시며 함께 즐기는 옆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만을 기억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5성급 호텔보다는 현지를 더 느낄 수 있는 에어비앤비나 호스텔을 선호하며, 화려한 도시보다는 나를 구성하는 자연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좋은 걸 가지거나 먹는 것보다는 아주 작은 경험이라도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당신도 그런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소박하게 소비하면서도 서로의 일과 우리의 행복에 있어서는 적당히 소비할 수 있는 사람! 얼굴뿐만 아니라 그런 소비 방식과 여행 방식, 취미 방식마저 닮은 당신이 나는 참 좋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면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음 캐나다 옐프가 아니면 남미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매일 3-4시간 동안 통화하면서도 뭐가 그리 할 말이 멈추지 않는지- 그 날밤도 그랬다 :) 다음 여행지를 상상하며 설레기 바쁜 밤이었다. 그리곤 여행 후보지를 몇 군데 종이 가득 적어보았다.


1. 남미 파타고니아 트래킹  

2. 캐나다 로키산맥과 밴프 (에메랄드 빛 호수는 덤) 

그렇게 같이 세계적인 드라이브 코스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다녀오기

3. 남극 포인트 : 아프리카 남단의 케이프타운 /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 남미 (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칠레 푼타아레나스)

4. 페루 3500m의 69 호수 (남미 3대 고난 코스)


소소하게는 동남아에서 카이트서핑 배우기와 몽골에서 은하수 보기가 나의 버킷리스트랄까?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곳을 함께 하게 될까? 당신과 함께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주 신이 난다. 내게 나타나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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