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단길 이야기-33
#112 승수 형과 메흐메드
며칠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났던 승수 형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약 6개월 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마지막 목적지가 터키의 이스탄불이 될 거 같다는 것. 나도 동선이 비슷할 것 같다며 이스탄불에서 기다리겠다고 답장을 보내두었다.
반가운 연락은 한꺼번에 올 때가 많다. 비슈케크에서 학교를 다니는 메흐메드도 학기 시작 전에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스탄불에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약속 날자가 겹쳐 둘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이 탁심에서 만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이스탄불에는 때아닌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현진아, 비도 많이 오는데 그냥 친구 데리고 바로 내 숙소로 와. 에어비앤비라서 소파 같은 데서 자면 될 거야."
형의 메시지를 받고 지하철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메흐메드와 함께 승수 형의 아파트로 향했다. 형이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헤어지고 세 달 만이다.
"어, 나 너 알아. 알마티에서 봤잖아?"
형과 인사를 하고 있는데 내 옆에 서있던 메흐메드가 뜬금없이 그를 알아봤다. 둘은 이내 서로를 알아보고 눈이 커지며 포옹을 나눴다.
"아니 두 사람 어떻게 아는 거야?"
"이거 진짜 신기해, 들어봐."
두 사람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4달 전 메흐메드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호스텔에서 만났다. 2주 뒤, 내가 알마티를 떠나고 얼마 뒤 승수 형이 같은 호스텔에 묵었고, 메흐메드는 내게 또 다른 한국인이 왔다며 문자를 보내줬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내가 한 달 뒤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만난 것. 순서로 따지면 나와 메흐메드, 메흐메드와 승수 형, 나와 승수 형이 차례차례 길 위에서 만난 셈이다. 세상이 너무 좁아서 소름이 돋았다.
"야 오늘은 다 같이 모였으니까 한 잔 하자. 내가 미리 보드카를 한 병 사놨거든. 이스탄불 보드카라고 리큐어 샵 아저씨가 그렇게 자랑을 하더라."
그는 주섬주섬 보드카를 꺼내왔다. 1리터 들이의 거대한 보드카. 저걸 어떻게 다 먹나, 싶었지만 주당인 승수 형의 지도 아래 우리는 결국 병을 다 비우고 사이좋게 소파 위로 쓰러졌다.
#113 이스탄불 완전정복
"해장국 한 그릇만 먹으면 딱 좋겠는데..."
승수 형의 풀어헤친 긴 머리는 아침부터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나도 해장국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근처에는 한식당도 없다. 우리는 아파트를 비틀비틀 걸어 나와 구시가지인 술탄아흐멧 지구로 향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유명 관광지로 형을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를 했다. 커다란 모스크들과 광장, 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카페들을 둘러보고 무할레비와 로쿰 같은 주전부리를 소개했다. 메흐메드도 옆에서 따라다니며 나를 잘 도와줬다.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덧 가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미 날짜는 9월 중순을 넘겼다. 나도 곧 터키를 떠나 유럽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다. 두 달 반 동안 지내던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내가 오히려 아쉬워 형을 가이드한다는 핑계로 '마지막으로 터키에서 먹고 갈 것' 목록을 채우는 기분이었다. 터키쉬 커피와 잘 어울리는 달콤한 쌀 푸딩은 언제 어디서라도 그리울 것만 같다.
내일 키르기스스탄으로 다시 떠난다는 메흐메드와 작별하고 우리는 오르타쿄이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역시 마지막 쿰피르를 나도 먹어두고 싶었기 때문에. 커다란 감자를 하나씩 들고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에게 쿰피르의 토핑은 살라미, 올리브, 피클, 할라피뇨, 옥수수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토핑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올리면 먹기도 힘들고, 맛도 뒤죽박죽 다 섞인 느낌이다.
"안녕, 미안한데 내 사진 좀 찍어줄래?"
오르타쿄이 야경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크림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너희 혹시 여기 여행 중이야?"
"응, 그런데 왜?"
그는 이제 사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 말을 걸었다.
"나도 스페인에서 여행 왔어. 마드리드 알지? 거기서 왔는데, 혼자 다니려니까 심심하네. 너네만 괜찮으면 뭐 근처에서 맥주나 한 잔 할래?"
이런 종류의 사기는 이스탄불에 널리 퍼진 흔한 수법이다. 실제로 나도 몇 번 이런 경우를 맞닥뜨리긴 했지만 보통 관광객들이 몰리는 구시가지에서였고, 이곳에까지 이런 사기꾼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웃긴 건 저 사람들 레퍼토리가 다 똑같다. 스페인 혹은 두바이에서 왔다며, 슬쩍 돈 자랑까지 끼워가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주절주절 떠들어댄다. 마지막엔 항상 자기가 한 잔 살 테니 술이나 마시러 가자며 제안한다. 만약 그대로 이들을 따라갔다가는 사기꾼과 합을 맞춘 가게에서 술값을 덤터기 쓰게 된다.
"아니, 괜찮아. 우리는 조금 바빠서 말이야."
아직은 긴가민가 싶던 나는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보통의 여행자라면 '그래, 좋은 시간 보내'라며 돌아설 것이다. 하지만 사기꾼이라면 한번 더 물고 늘어진다. 그 역시 근처에 이쁜 여자 바텐더가 있는 곳을 안다며 한번 더 늘어진다. 사기꾼이라는 확신이 생긴 나는 그에게 강하게 말했다.
"우린 안 가. 좋은 시간 보내."
#114 글루미 선데이
바다를 끼고 있는 이스탄불에는 해산물을 파는 식당이 많다. 특히 베식타쉬나 카드쿄이에 몰려있는데, 다들 가격대가 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곳은 갈라타 다리를 사이에 두고 에미노뉴와 마주 보고 있는 카라쿄이. 이곳에는 여기서는 보기 드문 수산시장이 있다. 물론 자갈치 시장이나 노량진과 같은 곳과 비교하면 한 토막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줄지어 있는 점포에서는 호객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먼저 생선이나 해산물을 고르고, 요리법을 주문하면 앉은자리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우리는 오징어링과 생선구이, 감바스를 시켰다. 나는 입대 전 부대 앞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생선구이 정식이라 나쁜 기억이 남아있다. 그 뒤로 내 돈으로 생선구이를 먹은 적이 없는데, 오늘 시킨 생선은 맛있었다. 회도 뜰 줄 안다는 형이 가시를 다 발라줬다.
"내가 횟집에서 활어를 사서 직접 회 뜨는 연습까지 다 해봤어. 그래야 제일 신선하게 먹는 거거든."
회 뜨는 법까진 괜찮지만, 생선 가시를 잘 바르는 법은 나도 배우고 싶다. 특히 횟집에서 밑반찬으로 주는 꽁치구이는 깔끔하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현진, 뭐해? 너 곧 떠난다면서, 나 지금 베식타쉬에서 알리랑 외즈게랑 맥주 한 잔 하고 있거든. 너는 어디야? 가까우면 여기로 넘어와서 같이 놀자!"
저녁을 다 먹어갈 때쯤 누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터키를 뜨기 전에 보고 싶던 친구들이었는데, 승수 형을 데리고 베식타쉬의 캥거루 펍으로 향했다. 펍의 옥상 테라스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한여름에 만났는데 벌써 가을이 다됐다. 오늘은 블랙 앤 화이츠(베식타쉬의 애칭)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라 길거리가 열정적인 응원가로 가득 메워졌다.
"지금 가면 언제 다시 올 거야?"
친구들의 질문에는 확답을 할 수 없었다. 날짜를 미루고 미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 사실 마음 한 편으로는 떠나기가 싫었다. 이곳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서 더욱 그랬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좋아하고, 정을 붙이면 떼기를 힘들어하는 나는 어쩌면 여행에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순간순간이 너무 힘들다. 특히 우리가 다시 만날 약속을 할 수 없거나, 최소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라는 사실에 슬퍼졌다. 밤 비행기를 탄다는 승수형을 보내고 혼자 방에 남아 잘 준비를 했다. 나도 며칠 뒤면 유럽으로, 루마니아로 떠난다. 텅 빈 방에 혼자 누워 있으니 눈물이 났다. 매번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던질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115 보따리장수들과의 동행
거대한 규모의 도메스틱 터미널인 에센레르와 달리 이스탄불의 국제 버스터미널은 찾기가 조금 힘들다. 구시가지 한 편의 악사라이 역 근처에 있는데, 이쪽은 동네 분위기가 어둡다.
"거기는 아랍인 구역이기도 하고, 유명한 암시장이 있어서 터키 사람들도 밤에는 잘 안 다녀. 그런데 버스 터미널이 있었어? 나도 몰랐는데, 어쨌든 조심해."
에멜의 충고를 듣고 잔뜩 긴장한 채로 국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는 많은 버스 회사들의 사무실이 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아제르바이잔, 러시아까지 노선은 다양한 듯했다. 어젯밤 구글에서 찾은 대로 마리나(Marina) 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매일 오후 5시에 출발한다는 부쿠레슈티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최대한 아침을 늦게, 많이 먹었는데도 점심때가 되니 배가 고팠다. 밥을 사 먹기에는 돈이 모자라 동전을 털어 빵과 크래커, 초코바를 샀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배낭을 깔고 앉아 퍽퍽한 빵을 물에 적셔먹었다. 크래커와 초코바는 저녁으로 아껴뒀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커다란 보따리를 버스에다 싣기 시작했다. 이 구간은 주로 보따리 상인, 혹은 밀수꾼들이 이용하는 노선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버스 짐칸을 가득 채운 보따리들은 터질 듯 버스 맨 뒷좌석에 꾸역꾸역 쟁여졌다.
앞다퉈 짐을 싣는 사람들 뒤로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미 짐을 실을 자리가 없었다. 기사 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며 짐을 가지고 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하지만 버스 내부도 짐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짐칸으로도 모자라 보따리를 의자에 앉히고 통로에 서있기도 했다. 다들 뭐를 그렇게 사가는 걸까? 짐과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가 굴러갈까 걱정이 됐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큰 백팩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작은 백팩은 안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몇 시간 뒤부터 다리가 저렸다. 옆 사람도 같은 자세였는데, 서로의 짐 때문에 우리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껏 여행하며 탄 버스 중 가장 힘들었다. 최대한 다리의 감각을 느끼지 않으려 아이팟에서 나오는 노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버스는 불가리아를 통과해 루마니아로 향한다.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버스에서 내려 여권 체크와 짐 검사를 받을 때마다 행복했다. 다리를 뻗고 산다는 건 큰 기쁨이구나. 누가 봐도 여행객인 내게는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불가리아의 세관원들은 칼을 들고 다니며 버스에 실린 보따리들을 죽죽 그어 쏟아지는 내용물을 검사했다. 어떤 걸 밀수하길래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는지 궁금했다.
버스는 새벽 5시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부쿠레슈티의 버스 터미널 근처는 집시가 많아서 주의하라는 글을 얼핏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새벽이라 다들 자는지 터미널은 조용했다. 단지 해가 뜨기 직전의 공기는 차갑고 어두울 뿐이었다. 몸은 부서지도록 피곤했지만 낯선 분위기에 긴장이 되어 정신은 또렷하게 깨어있다. 터미널 바닥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려 검은 공기가 푸른빛 어스름으로 바뀌어 갈 때쯤 나는 터미널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찾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