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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pr 03. 2020

저건 분명 신포도일 거야_피렌체, 이탈리아

나의 비단길 이야기-41

#144 할머니를 위한 촛불


 다니엘로의 차를 얻어 타고 페루자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레디치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페루자의 근교에는 아시시(Assisi)라는 작지만 유서 깊은 도시가 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 그곳을 잠깐 들르기로 했다. 기차표를 끊고 플랫폼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기차를 기다렸다. 이탈리아 고등학생들도 수학여행을 가는지 단체로 기차에서 내려 우리 앞을 지나쳤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들이 고등학생이라는 말이 안 믿겼지만 프란체스카가 중학생이라는 그녀의 사촌 동생 사진을 보여주자 수긍이 됐다.  



  아시시는 가톨릭 교회에서 꽤 중요한 성지인 것 같았다.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뒤엉켜 역사는 혼잡했다. 수도원까지 가려면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내리는 정류장에서 우리도 그들을 따라 내렸다. 다시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본부가 있는 곳이라며 프란체스카가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나는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한 귀로 흘려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의 본부답게 언덕 위에 선 새하얀 건물은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성화 앞에서 돌아가신 프란체스카의 할머니를 위해 초를 밝혔다. 만지면 복이 온다는 액자, 기둥 등을 찾아다니며 수도원을 샅샅이 훑었다. 이 정도 만졌으면 남은 여행 동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다. 나는 가톨릭이든, 정교회든 성당 특유의, 촛불이 은은하게 밝혀진 엄숙한 분위기가 좋다. 물론 그림이 멋있는 쪽은 정교회지만. 창을 들고 용을 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는 가톨릭보다는 정교회 쪽에서 유독 많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절에 가면 꼭 탱화들을 찾아서 찬찬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수도원을 나와 살짝 빛이 바랜 듯한 아시시의 골목길을 걸으며 우리는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흘간 친구들과 정신없이 지냈다. 여행지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항상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역에서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헤어질 때마다 지구가 너무 넓게 느껴진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만난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나머지 절반을 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6달 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지켰으니, 우리는 어쨌든 또다시 만나겠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친구들에게 손을 마주 흔들었다.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급하게 숙소를 검색했다. 10월 말이라 관광객이 빠져나갔을 한산한 도시를 예상했지만 피렌체의 모든 호스텔은 풀 부킹. 이탈리아는 1년 내내 성수기라는 어디선가 읽었던 말이 섬뜩하게 지나갔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도 모두 내 예산 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피렌체를 그냥 지나갈까, 아니면 역에서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찰나 한인민박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한인민박은 네이버 카페 혹은 자체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다. 정식 숙박 업소로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 네이버에 '피렌체 한인민박' 검색어를 입력하고 몇 군데를 훑었다. 물론 가격은 일반 호스텔보다 비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유일한 옵션은 이것뿐이다. 그중 한 곳에 연락을 넣어 도미트리 객실에 자리가 남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피렌체 역에 내려 민박집을 찾았다. 평소 한인민박은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숙박비를 지불할 때 손이 떨리기는 했지만 또 숙소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한식으로 조식이 제공된다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고 오랜만에 꼭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6인실 내 방으로 들어서며 막연히 혼자, 혹은 둘이서 여행하는 또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여기 저 혼자예요?"

 "네. 오늘은 다들 일행이 있는 분들이라 2~4인실에 계신 것 같네요."

 내 실망한 표정을 읽었는지 스태프는 계면쩍게 웃었다. 도미트리 방을 혼자 쓰다니, 행운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불행 쪽에 가까웠다.      



#145 이탈리아 경찰차 타보기


 여행이 길어지며 아침을 거르는 날이 많아졌지만, 오늘은 맞춰둔 알람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 시간인 8시에 딱 맞춰 자리에 앉은 나는 1등으로 밥을 풀 수 있었다. 내 접시 위에는 제육볶음과 오이 무침, 콩나물 무침, 멸치볶음 같은 반찬들이 얹혔다. 곧 아침을 먹으러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밥을 먹었다.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리니 어색하다. 일행으로 다닐 만한 또래 친구를 찾았지만 다들 가족끼리 온 모양새다.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온 부부가 보이자 나는 잽싸게 남은 반찬을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아침을 챙겨 먹은 덕에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늦가을을 향해 가는 아침 공기는 조금 차가워졌다. 청명한 공기와는 달리 시내는 번잡했다. 어젯밤 피렌체 시내의 호스텔을 전부 만실로 채운 관광객들은 아침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들어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종교 시설에 입장료를 받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이곳은 비싸기까지 하다. 내 하루 예산의 절반에 맞먹는 돈. 이미 한인민박에서 투숙하며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에는 별 것 없을 것이라는, 신포도의 논리를 내세우며 티켓 오피스 앞에서 돌아섰다. 


 

 대신 성당 앞에 놓인 돌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정각인지 성당에서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종탑이 여러 개인지 종소리가 길거리에 가득 찰 만큼 풍부하게 울렸다. 건물 사이로 메아리치며 부서지는 종소리를 들으니 와락 내가 또 다른 세계에 왔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하지만 시선을 종탑에서 거두면 다시 관광지의 한 복판으로 돌아온다. 내가 앉은 벤치 주변은 길바닥에 조잡한 그림을 지익 그리는 잡상인들과 카메라를 바쁘게 찰칵거리는 관광객들로 빽빽하게 붐볐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골목에서 중국 식당을 발견했다. '한국 라면 7유로' 노란색 종이에 써붙인 문구를 보고 라면이 먹고 싶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건네받은 메뉴판에는 내가 보고 들어온 라면보다 싼 값의 다른 국수들이 있었다. 비록 얼큰한 라면 국물이 먹고 싶었지만, 가장 저렴한 메뉴인 야채 볶음면을 시키면 4유로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라면이든 볶음면이든 어차피 십여분 간의 젓가락질이 끝난 뒤 배가 차면 똑같은 것을.    

     


 당면 같은 면발을 후루룩 삼켰다. 밥을 먹으며 혼자 휴대폰을 봤다. 페루자에서 하룻밤 재워줬던 리카르도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챠오, 오늘 바빠? 저녁에 피렌체에서 잠깐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쪽에 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심심했던 나는 그의 연락이 반가웠다. 약속 시간을 정하고 저녁이 되어 광장에서 리카르도를 만났다. 

 "챠오, 리카르도!"

 "응, 왔어?"

 난처한 표정의 리카르도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이 친구는 내 플랫 메이트 마르코야. 고향에 갔다가 어젯밤 돌아왔거든, 니가 그저께 자고 갔던 방 주인이 이 친구야. 그런데 말이야 마르코가 너한테 물어볼 게 있대서 같이 왔어. 괜찮지?"

 리카르도의 소개로 마르코와 인사를 나눴다. 그는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어젯밤 고향에서 돌아오고 나서 리카르도에게서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자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어. 니가 내 방에서 잤다는 것도. 그런데 너희가 가고 나서 내 방에서 100유로가 사라졌어. 프란체스카나 시모나라는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는데 걔네들은 모른다더라.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왔어. 너 그 돈을 본 적 있어? 혹시 만에 하나 니가 가져갔다면, 지금 돌려줬으면 좋겠어. 나한테 중요한 돈이야."

 

 나는 찬찬히 마르코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거기서 사건이 일단락되고 저녁이나 먹으러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마르코는 이미 내가 돈에 손을 댔다고 단정 지었는지 나를 더 몰아세웠다. 이미 내가 돈을 훔치고 오리발을 내민다는 식의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물론 그의 입장도 이해는 했다. 모르는 외국인이 자기가 없는 방에 들락거리고 돈이 없어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 낯선 사람이 찾아와 도둑으로 모는 셈이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경찰을 부르겠어. 그냥 그전에 우리끼리 끝내자.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지금 그냥 돌려줘."

 "난 진짜 안 가져갔어. 니가 경찰을 부르고 싶으면 불러. 난 상관 안 할 테니까."

 어쨌든 돈은 없어졌고, 내가 가져갔다는 증거도, 그렇다고 안 가져갔다는 증거도 없으니 우리의 대화는 빙빙 맴돌기만 했다. 결국 마르코는 경찰을 불렀다.


 곧 경찰이 왔고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류를 꾸미러 경찰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국에서도 못 타본 경찰차 뒷자리를 이탈리아에서 타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국제 범죄에 연루된 듯한 심각한 기분을 느껴보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유쾌한 경찰관 아저씨들은 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이탈리아 여행은 어떠냐, 한국도 갈 만한 데가 있느냐는 식의 잡담을 하며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사이 긴장됐던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제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 여권을 보며 서류를 작성하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노 프라블럼."
 그는 서류 작성을 마치고 씩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잘 가요." 

 너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탓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어쨌든 마르코라는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냥 그렇게 끝났다. 리카르도와 프란체스카에게서 난처했다면 미안하다며 연락이 왔다. 물론 그 친구들은 나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내가 안 가져갔다는 증거를 친구들에게 속 시원하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나도 답답했다. 마르코는 평생 내가 그 돈을 슬쩍했다고 생각할까? 그가 집에 돌아가 서랍 속이나 침대 밑에서 돈을 찾기를 간절히 빌었다. 



#146 피렌체에서 하고 싶은 일


 한인민박에서 지내면서도 꾸준히 호스텔에 빈자리가 없나 검색을 했다. 오늘 한 곳에 자리가 비어서 그곳으로 숙소를 옮겼다. 같은 6인실인데 10유로나 차이가 난다. 호스텔을 옮기고 한 끼 식사와 카페에 갈 돈까지 번 셈.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부터 확 비싸진 물가가 체감이 됐다. 터키나 발칸 반도에서는 술만 안 마시면 하루 예산이 넉넉하게 남았는데, 이곳은 하루 예산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빠듯하다. 

     

 

 어제와 같이 시내를 통과했다. 시뇨리아 광장의 우피치 미술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피렌체를 오랫동안 통치했던 메디치 가(家)의 보물들이 모여있다는 곳. 나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피렌체까지 와서 우피치를 안 보다니, 어젯밤 계획을 짤 때도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평소에 관심도 없는데 피렌체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우피치에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의무감에 '해야 하니까'가 아닌 '하고 싶으니까'의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피렌체에 왔으니, 혹은 그림들이 유명한 것들이라 봐야 될 것 같은 거야, 아니면 진짜 보고 싶은 거야?' 

 내가 내린 답은 '별로'. 대신 나는 시간을 보내러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가짜 다비드 상 앞에서 초등학생 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 어디 누가 그 일을 해줄까 주변을 살폈다. 내가 찾아내기도 전에 그 누군가가 나를 먼저 찾아냈다. 

 "저기,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말을 건 사람은 터키인 아타칸. 그는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에서 의대에 다닌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난간에 기대 이야기를 했다. 그와 나 모두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 만났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터키에 고향이 어디예요?"

 터키인을 만나면 항상 하는 내 질문. 웬만한 터키의 대도시들은 다 가봤기 때문에 내가 자신 있게 내미는 질문이다. 답변을 들고 이어질 내 말은 '저 거기 가봤거든요.'

 "저는 카흐라만마라쉬에서 왔어요."

 예상외의 답변이지만 문제없었다. 나를 카흐라만마라쉬로 이끌어줬던 메흐메드에게 감사했다.   

 "에 진짜요? 저 거기 친구가 살아서 몇 달 전에 갔다 왔는데."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은 우리는 문제없이 대화를 이어가며 베끼오 다리를 향해 걸었다. 

     

 

 강가를 걷는 건 항상 좋다. 아타칸은 말이 많은 친구였다. 그의 수다를 들으며 베끼오 다리를 건너 시뇨리아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광장은 붐볐다. 오늘 저녁 만토바로 돌아간다는 그의 기차 시간을 같이 기다려주기로 했다. 커다란 건물의 계단에 물 한 병씩을 사들고 앉았다. 그는 내 터키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같이 기다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보냈어."

 내가 할 말을 그가 대신해줬다. 그를 기차역 앞까지 배웅해줬다.  



 아타칸과 헤어지고 또다시 할 일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나는 피자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두오모나 광장 근처는 식당이 너무 비싸다. 최대한 관광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지도를 보고 멀리 떨어진 피자집을 골랐다. 30분을 걸어 도착한 그곳은 아저씨 한 분이서 혼자 운영을 하는 곳 같았다. 나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했다. 잘게 다져진 피자 치즈가 아닌 칼로 숭덩숭덩 썰어낸 모짜렐라 치즈의 두께가 느껴졌다. 치즈에서 나온 고소한 기름과 호물호물 씹히는 토마토 건더기가 잘 어울렸다. 마르게리따 피자의 본질이라고 불러줘도 괜찮을 것 같다. 맥주를 시키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따가 슈퍼에서 사면 훨씬 싸게 마실 수 있는데. 까르푸에 들러 북이탈리아에서 많이 마신다는 비라 모레티(birra moretti) 한 캔을 샀다. 마피아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려진 로고가 멋있다. 다시 강변으로 돌아가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멀리 두오모에서 치는 종소리가 퍼져왔다. 나는 벤치가 차가워 쓸쓸해졌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나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읜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의 지붕 우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_<외인촌>中,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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