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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pr 17. 2020

지하철 공짜로 타는 방법_리옹, 프랑스

나의 비단길 이야기-44

#156 투 머치 토커 사야


 고등학교 때 알람을 항상 새벽 4시에 맞춰둔다던 친구가 있었다. 

 "아니 어차피 7시에 일어날 건데 4시에는 왜 깨?"

 "그런 거 있잖아,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자면 왠지 오래 잔 느낌인 거. 딱 일어나서 알람 끄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 기분 좋지 않아?"

 나도 요즘 그 친구처럼 첫 번째와 두 번째 알람은 흘려보낸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세 번째 알람이 울리고서야 비로소 침대에서 일어난다. 



 쌀쌀한 11월의 날씨에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히터 타이머를 다시 돌리고 온수기를 켜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물을 틀어놨다. 리옹으로 가는 버스는 어젯밤 플릭스 버스 어플로 예약을 해뒀다. 가격이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버스 가격은 날짜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하다. 그래서 나도 티켓이 싼 날을 따라 버스 일정에 나를 맞추게 된다.  

  토리노에서 리옹까지는 버스로 5시간.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는 긴 터널이 있다.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프랑스가 나오기 때문에 터널을 지나기 전 이탈리아 측 국경을 통과했다. 쉥겐 조약에 가입 한 국가들 사이의 국경 이동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쉬워졌다. 버스는 곧 터널로 진입했고, 길이 11km의 몽블랑 터널은 통과하는데만 15분 정도 걸린다. 어릴 때 알프스 자락의 휴양지 샤모니를 지나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로 향하며 이 터널을 지난 적이 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오는 터널이 신기해 휙휙 사라지는 노란 불빛을 계속 쳐다보고 있던 기억이 났다.    

  


 리옹 버스 터미널은 꽤 복잡하다. 두 개의 지하철역과 기차역, 그리고 버스 터미널까지 한 자리에 있다. 여러 대의 기차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뒤엉킨다. 간신히 출구를 찾아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터미널 앞을 흐르는 론 강을 건넜다. 다리 건너편에는 사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쌀뤼(Salut), 사야! 오랜만이야."

 "진짜 그러네. 잘 지냈지?"

 몸을 숙여 체구가 작은 그녀의 양볼에 번갈아 쪽 소리를 내며 인사를 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난 이후 그녀 역시 여행을 계속하다 지난주에 프랑스로 돌아왔다며,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며 웃었다. 


 사야는 변한 게 없다. 그때도 생각했지만 여전히 할머니처럼 말이 많다. 그녀는 A에서 시작된 말머리를 Z까지 막힘없이 이끌어간다. 이 정도라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신나 하는 타입이 아닐까, 만나자마자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음,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치는 것 외에는 한 마디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야을 따라 들어간 곳은 그녀의 단골집이었다. 주인 부부와도 친한지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오늘의 메뉴를 8유로에 먹을 수 있거든, 샐러드랑 메인 요리, 디저트 포함해서. 괜찮지?"

 "응 좋네, 나도 그럼 오늘의 메뉴로 할게."
 점심을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로 때워서 배가 고팠다. 음식이 늦게 나와서 조금 조바심이 났다. 마침내 접시를 받아 들자마자 햄버거 스테이크를 큼직하게 썰어 먹었다. 보통은 같이 먹는 상대와 식사 속도를 맞추는 편인데, 사야는 고기를 쥐똥만큼 작게 잘라먹으며 계속 말을 했기 때문에 음식이 줄지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저녁을 4시간 동안 먹는다더니, 그녀를 보며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을 했다.   



#157 까르푸에서 비빔밥 찾기


 부지런할 것 같은 사야는 11시가 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침실을 양보하고 거실 소파에서 자는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움직였지만 화장실 물을 내리는 소리에 깬 듯 그녀도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아침을 준비했다. 버터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녹이고, 모서리를 잘라낸 식빵에 펴 발랐다. 그 위에 슬라이스 햄과 치즈를 2장씩 얹고 팬에 노릇하게 구워냈다. 토스트를 자르니 치즈가 흘러내렸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그릴드치즈와 비슷하다. 맛있어서 3개나 먹었다. 사야가 브랜디를 따라줬다. 

 "나는 술 잘 못 먹는 거 알잖아, 근데 내가 여행할 동안 이 집을 임대했던 학생이 사놓고 마시다 만 술이 많더라고. 너라도 여기 있을 동안 열심히 마셔야지." 


 사무실도 다녀보고, 중학교에서 핸드볼도 잠깐 가르쳐봤다는 그녀는 요즘 동화책을 쓴다. 아침을 먹고 다시 소파에 누워 이불을 둘둘 말고는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벨쿠르 광장을 목적지로 찍고 지도를 따라 걸었다. 리옹은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다. 론 강과 손 강이 이곳에서 합쳐져 지중해로 흘러간다. 구시가지는 이 두 강이 만나기 전, 곶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있다. 섬은 아니지만 파리의 시떼 섬과 같은 구조다.  



 시내에는 리옹에 오면 꼭 먹는다는 부숑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부숑은 소나 돼지의 내장 등 부속물을 주재료로 하는 서민 음식으로 시작됐다지만 언제 이렇게 비싸졌는지, 프랑스 서민의 기준은 훨씬 높은가 싶었다. 호기심에 들여다본 메뉴판은 한 끼에 최소 20유로는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부숑 대신 카페에 들어가 핫 초콜릿을 한 잔 마셨다. 지하철을 타기 싫어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내가 가려는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은 언덕 위에 있다. 


 "너 리옹에서 지하철 공짜로 타는 법 알려줄까?"

 사야가 어젯밤 얘기해준 팁이 있다. 리옹 지하철 티켓은 1시간 동안 유효하고, 우리나라처럼 나갈 때 다시 표를 검사하거나 거둬가지 않는다. 때문에 환승을 안 하는 사람들은 펀칭을 하고 개찰구 앞에 표를 놔두기도 한다며, 그 표를 집어 찍고 들어가면 공짜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것. 나는 성당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는 푸니쿨라 앞에서 서성거리며 표를 두고 가는 사람이 있나 기다렸다. 공짜표를 노리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있는지 서로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경쟁자들이자 나에게 모범 답안을 보여줄 사람들, 일단은 한 명이 표를 주워 개찰구를 통과하는 것을 봐 두었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말이지.

   

 눈치를 보며 기다리길 십여 분, 한 중년 아저씨가 표를 찍고 게이트 앞에 놔두고 갔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태연한 척 표를 집어 들고 펀칭을 했다. 마법처럼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을 올랐다. 푸비에르 노트르담은 19세기 말에 지은 굉장히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이다. 프랑스인들이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르던 그 시기. 제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식민지와 노동자에게서 뽑아낸 부를 바탕으로 꽃 피운 부르주아 문화는 지금의 내가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불러주기에는 반감이 드는 말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는 성당 뒤뜰에서 리옹 시가지를 내려다보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하며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곳은 한 번쯤 꼭 들른다. 유럽 도시답게 전반적으로 낮고 평평한 스카이라인에 현대식 고층 빌딩이 몇 개 불쑥 솟아나 있어 생뚱맞았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영화 '라붐(La boum)'의 오프닝 장면에서 천천히 테마곡 'Reality'가 흐르며 파리의 새벽 스카이라인을 잡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생각났다. 아이팟에서 그 곡을 검색해 오랜만에 익숙한 멜로디를 들었다.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살아보지도 못한 80년대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놓고 온 듯한 감상에 빠졌다. 누군가 나에게 살아보고 싶은 시절을 고르라면 80년대를 고르겠다. 내 10대와 20대를 보낸 2010년대도 나중에 그렇게 기억될까?   


 

 사야의 집 근처 까르푸에 들러 저녁 재료를 샀다. 서유럽에 오니 확실히 마트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중동이나 동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아시안 푸드 코너가 따로 있어 쌀이나 간장, 각종 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서비스 비용이 비싸 식당 메뉴판을 보면 울게 되지만, 반면 마트에서 느끼는 물가는 그에 비해 저렴하다. 사야에게 해 줄 비빔밥을 만들 재료들을 골라 담았다. 여행을 하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비빔밥을 만들어 대접하는 게 루틴이 되다 보니 이제 꽤 능숙하게 만들 수 있다. 당근과 양파를 채 썰어 볶고, 고기를 양념에 재워 구워냈다. 냄비밥이 다 되면 달걀프라이까지 얹어 예쁘게 플레이팅을 마친다. 사야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옆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나중에 너 가고 나서도 이거 보면서 내가 한 번 만들어봐야겠어."

 우리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보드카 토닉을 쭉 들이켰다. 

     


#158 여행의 방향타


 

 사야네 아파트는 덧창을 내리면 해가 하나도 안 들어온다. 해가 중천에 뜨고도 어두컴컴한 실내는 시간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항상 하루를 늦게 시작하게 된다. 점심 같은 아침을 해 먹고 사야는 거실에서, 나는 침실에서 글을 쓰며 각자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산책을 겸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카페에 잠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여행이 길어지며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힘이 든다. 예전 같으면 지루해서 밖으로 계속 나가 놀자고 사야를 보챘겠지만 지금은 그녀의 쏟아지는 말을 들어주기도 벅차다.

 "너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괜찮아. 나도 딱히 바쁜 일은 없는걸."

 사야의 말을 믿고 염치없이 그녀의 집에서 며칠이나 식객으로 지냈다. 하지만 그녀의 말동무를 해줬으니 밥 값은 했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 친구는 혼자 있을 때 이 넘치는 말을 어디로 삭힐까 궁금했다. 



 이탈리아부터 서유럽으로 넘어오며 나는 이제 편안한 여행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힘들어졌다. 아니, 이제 이대로 여행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치기도 했고 목적도 없이 돈만 자꾸 써대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도 안시, 마르세유, 엑상프로방스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포기하고 아비뇽 한 군데만 골랐다. 최대한 빨리 프랑스와 스페인을 통과해 여행의 종착지인 포르투갈로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겨울은 오고, 언제까지 여행을 계속할 수도 없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11월이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여전히 포르투갈까지는 서쪽으로 1500킬로미터나 남았다.  


#159 까마귀가 나는 밀밭


 아침 일찍 출발하는 아비뇽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아직 자고 있는 사야를 내버려 두고 혼자 시리얼과 커피를 타 먹고 준비를 했다. 사야를 살짝 깨워 인사를 했다. 

 "나 이제 갈게 사야, 며칠간 진짜 고마웠어. 다음에 한국에 꼭 놀러 와야 해."

 "응? 어어 잘 가. 배웅 못 해줘서 미안해."

 그녀는 잠이 덜 깬 채 인사를 했다. 그녀 덕분에 며칠간 잘 먹고 잘 잤다. 이렇게 여행에서 고마운 사람이 늘어만 간다.

 


 아비뇽을 고른 이유는 반 고흐 때문. 아비뇽은 그와 관련이 없지만, 근교에는 그가 말년을 보낸 아를이라는 소도시가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 그런 풍경을 기대하며 버스 창문을 내다봤다. 하지만 추수를 끝낸 늦가을의 들판은 밀밭 같은 건 이미 진작에 갈아엎은 듯 휑했다. 빗방울이 흩날리는 궂은 날씨까지 겹쳐 기분도 물을 먹은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도착한 아비뇽에서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급적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며 샀지만 토리노에서 산 우산을 펼치는 날이 많다. 아비뇽에서는 호스텔을 찾지 못해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친절한 아주머니에게서 방 열쇠를 건네받고 좁은 방에 털썩 누웠다. 빗방울이 굵어지는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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