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wo Popes (2019) 영화 후기
ㅡ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28항 中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내정치(社內政治)처럼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정치질(?)과 친목질을 목격할 때가 참 많다. 사람이 모이면, 파벌이 나뉘고, 뒷담화가 벌어지는 게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면서도 인간관계는 여러모로 참 피곤하다. 왜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지 갑갑할 때가 참 많다. 부부싸움을 생각해보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하실 거다. 그런 답답함을 느낄 때 <두 교황>이라는 구세주를 영접했다.
버디 물은 언제나 재밌다.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브로맨스는 언제 봐도 흥미진진하다. <두 교황>도 마찬가지다. 비틀스, 아바, 베사메무초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두 할아버지가 벌이는 꽁냥질은 그냥 재밌다.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안소니 홉킨스)와 프란치스코(조나단 플라이스)의 실화를 상상력으로 버무린 팩션(Faction) 영화다.
두 교황은 종교관, 사상적 배경, 국적, 성격, 취미, 기호 등이 다르고, 속해있는 파벌도 다르다. (나중에 베네딕트 16세가 되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안소니 홉킨스)는 요한 바오르 2세의 측근이며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로 첫 손에 꼽히는 거두다. 그는 타 종교와의 화합을 중시하면서도 정통 교리 수호했던 요한 바오르 2세의 뒤를 이어 보수파를 이끌게 된다. 반면에 빈민가에서 신도들과 함께 축구를 응원하는 (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는)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조나단 프라이스)은 남미 특유의 해방신학을 대표하는 개혁파의 희망이다.
요한 바오르 2세가 선종하시자 라칭거는 요한 바오르 2세의 후계자라는 명분 삼아 교황에 오르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를 간파한 베르고글리오는 콘클라베(Conclave)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설득해 라칭거 추기경에게 표를 던진다. 이렇게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트 16세로 선출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베르고글리오는 은퇴를 결심하고 교황의 허가를 청하기 위해 로마로 향한다. 우연의 일치로 베네딕트 16세 역시 그를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서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라칭거는 복식과 절차에 엄격하고, 클래식을 좋아하고, 고향 바이에른 음식을 주로 즐긴다. 반면에 베르고글리오는 격식과 예의에 얽매이지 않으며, 비틀스와 아바를 즐겨 듣고, 가까운 시장에서 직접 재료를 사 와서 요리해먹는다. 두 교황의 감춰진 개인사와 비하인드가 나오며 소소한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깨알 유머가 있어서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그 밑바탕에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경쟁구도를 깔아놔서 긴장감도 살아있다. 이처럼 종교가 나오지 않는 종교영화이며, 버디 물처럼 두 할아버지의 캐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두 교황>은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 교황이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의 어록을 인용하며 합의점을 도출한다. 이때 등장하는 "그것은 타협이 아니고 변화입니다"라는 대사는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교황은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파벌은 다르지만, 보수신학과 해방신학 모두 ‘세속주의로 인한 신도 수 감소, 사제들의 성추문, 바티칸 은행의 부정부패’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가 그렇듯 인식은 동일하나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다.
노장사상의 상대주의처럼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나 국가도 유일하고 단일한 기준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오늘의 좋은 생각이 내일의 나쁜 생각이 된다. 인간의 경험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유연해야만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로 굳어지면 독단이 된다. 억압하고 변화를 방해하면 파시즘, 전체주의가 된다. 이런 이치를 잘 아는 두 종교인은 서로의 죄를 용서해줌으로써 관점의 차이를 좁힌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베네딕트 16세 성하께서는 단순한 스캔들로 퇴위하신 게 아니다. 교황청 안에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던 이탈리아 파벌에 의해 자신의 개혁이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바티리스크’ 기밀문서까지 유출시키며 이 비리를 알리셨다. 또, 이태리계 아르헨티나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월하게 선출된 데에는 교황청 내에 이탈리아 파벌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베네딕트 16세도 젊을 적에 개혁파이셨지만, 68 혁명의 영향을 받은 독일 대학생의 과격한 시위를 직접 목도하시고 큰 충격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극 중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종교관이 자신과 맞지 않음에도 그를 후계자로 임명한 데에는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다. 또, ‘교황’은 단순한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바티칸 시국’의 세속 군주다. 이런 권좌를 자기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이런 베네딕트 16세는 자신에게 부족한 자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대신해 개혁을 마무리지어줄 적임자를 선별해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18살의 애송이 옥타비아누스를 발탁한 것이나 태종이 충녕대군(후일의 세종)에게 왕좌를 물려준 걸 보면 후계자를 고르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거론치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그렇다, <두 교황>은 정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정치란 해롤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이 말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Who gets what, when and how)"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즉 정치는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가톨릭 교단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람이 모이는 단체와 집단에서는 권력 및 지위 혹은 이권 획득 위해 선동과 분탕, 날조가 횡행한다. 이런 대립에 지친 분들께 <두 교황>은 심심한 위로와 깊은 성찰을 보여줄 것이다.
★★★★☆ (4.5/5.0)
Good : 경쾌한 연출에 웃음 터지고, 이념 뛰어넘는 모습에 감동도
Caution : 단순한 종교와 교황의 얘기로 한정 짓지만 않는다면!
■앤서니 매카튼은 "출발점은 항상 진실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시나리오를 썼다. 이를 위해 “두 교황의 전기와 말하는 방식 등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봤다”며 두 사람의 신념이나 발언 등에 기초해 두 인물의 논쟁을 재구성해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은 이탈리아계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식으로 '베르골료'로 읽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베네딕토 16세를 찾아간 교황 별장에서 이탈리아인 정원사랑 요리에 들어가는 '오레가노'에 대해 얘기하거나 피자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합니다. 실제로 이탈리어어도 능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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