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의 독일 대학 체험기
요즘의 캠퍼스는 분명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 때는..1시간 정도 교수님의 원맨쇼 이후 마지막 10분은 q&a시간을 가지는게 통상적이었다. 10분 동안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나는 속으로
'아 빨리 학식먹으러 가야하는데 왜 이렇게 질질 끌어..라는 한심한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도서관으로 향해 두꺼운 전공 서적을 쌓아 놓고 정치 사회 코너의 단행본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노트 했다. 이 필기를 근거로 중간,기말 고사에서 항상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지만, 정작 내 의견을 개진하는 형태의 상호작용에는 관심이 없었고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기를 수가 없었다.
그저 유명한 교수나 학자가 하는 말이니 최대한 내 의견인척 하면 되겠지. 하는게 편하고 효율적이었다.
이렇게 혼자하는, 주입식 공부가 익숙했던 나는 학부 마지막 해에 호주로 교환학생을 갔고 한국에는 없는 튜토리얼(Tutorial) 이라는 시스템에 벙찌고 말았다.
주로 10인 미만의 소규모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이 코스는, 박사과정생이나 교수가 facilitator로 참여한다. 간단히 말하면 수업 내용에 대한 내 생각을 자발적으로 얘기하는 토론의 장이었다. 매주 튜토리얼에서 내 의견을 물어볼까봐 전전긍긍했는데, 돌이켜 보면 부족했던 영어 실력이 탄로날까봐도 있었지만 애초에 수업에 대한 내 생각이 없다시피 했으므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 이후 독일에서 또 한번 튜토리얼의 벽에 부딪혔다. 독일도 대부분의 강의는 tutorial과 하나의 셋트로 진행되는데 (block) seminar라는 형태로 진행되고는 한다. 학,석,박사 생이 함께 수업 내용에 대해 각자 의견을 개진하고 때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서 수업 내용을 조금 더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독일에서는 모든 수업이 마치 튜토리얼과 같았다. 교수가 그날의 테마에 대해 10분간 지식 전달을 하고 중간중간 옆친구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준다. 20분 정도 이후 오고 간 의견을 함께 발표하고 나머지 수업도 이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국에는 수업 자체가 학생들의 의견 교환으로 채워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매 수업마다 학생 발표가 있고 그에 대한 피드백, 그룹 발표가 반복 된다.
- 토론과 발표의 무한 루프
실제로 교수는 의견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지지 않게 하거나, 한 두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독차지 하지 않게 하는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가끔 학생 의견에 피드백을 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또한 유사하거나 반대 이론, 학설, 실제 사례등을 언급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나는 영어로된 텍스트를 매번 소화하기에도 바빠서 메인 텍스트나, 추가 텍스트를 전부 소화한게 손에 꼽을 정도로 기본 내용을 좆아가는게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튜토리얼에서 텍스트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게 사실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반면,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누가 끊지 않으면 거의 폭주 기관차처럼 간단하게는 자기 생각부터 연관된 실제 사례, 반대 의견등을 개진하고는 했는데 처음에는 이런 시스템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발표 그리고 피드백
하나마나한 얘기를 왜 할까 라는 생각을 했고,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인데 왜 저렇게 열번을 토하는 거지.
그런데 이런 생각의 저변에는 나는 내 의견이라는게 없을 뿐이어서 냉담한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거다.만약 정말 수업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더라면 팔짱끼고 봐서는 안됐다. 나는 수업의 참관인이 아니라 수업의 일부 였고 이끌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의견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나와 다른 의견을 확인하고 왜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좆는 과정은 중요하다. 단순히 방법론을 넘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입밖으로 내뱉고 피드백을 받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공감을 얻든 반박을 당하든 건설적인 피드백을 얻었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학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수업에 참여하면 할수록 텍스트를 통째로 암기하는 것보다 그 수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확률이 높다. 내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독심술을 부리지 않은 이상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훈련을 반복하면 텍스트 행간에 숨겨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고 조금 더 풍부한 에세이를 작성할 수 있다.
조금더 나아가서 이러한 의견 교환 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이기도 하고 다양성이 존중 받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 의견을 말하고, 다른 이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애초에 내가 독일에서 배우고자 했던 것, 바로 정치라는 모호한 학문은 천천히 돌아가더라도 개개인의 의견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독일의 대학과 학교 시스템은 이를 아주 잘 구현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다. 내 생각이 잘못됬다고 비웃으면 어떡하지 혹은 내 부족한 영어로 충분히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까 등 , 머릿속으로 수십번의 자기 검열을 거칠 때가 있다. 그런데 불필요한 이런 잡생각은 집어 넣고 그냥 한번이라도 내뱉는 연습을 한다면 두번, 세번째 시도가 조금이라도 수월하다. 결국 내 틀을 깨는건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거니깐. 부단히, 꾸준하게 연습하는 수밖에.
그리고 오늘도 단전에서 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요점만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