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바라보는 채식주의자
불현듯 한국 소설이 읽고 싶었던 나는 10월초에 베지터리안을 예약 했고, 몇 일 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수상 전에도 도서관 예약이 이미 꽉차 있어서 약 한달 반을 기다려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받아보게 되었다.
영혜의 남편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 소설은 영혜가 채식주의자로 선언함과 동시에 벌어지는 일상의 변화들을 포착한다.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행위 외에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외출을 한다던지, 섹스를 거부하는 등 낯선 모습에 화자인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그저 타인처럼 느낀다.
영혜의 다른 가족들은 또 어떤가. 아버지는 억지로 고기를 입에 넣으려고 하며, 엄마는 기력이 떨어지는 딸을 위해 염소즙을 약초즙이라고 속이는 등 딸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강요와 회유들. 채식주의자는 다양한 소수 그룹으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며 이 소설이 발행된 시점이 2007년임을 감안하면 영혜 가족의 반응이 전혀 놀랍지 않다.
지금에서야 한국에서도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있고 비건 메뉴만을 판매하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날 경우 그리고 시중의 슈퍼마켓에서 비건 제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 전투음식 같은 독일 식단
독일은 약 10%정도의 베지테리안이 있는 육식주의자가 대다수인 나라이다. 가장 대표적인 독일 음식도 소세지, 슈니첼, 학센 등 전부 고기메뉴들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옵션이 항상 존재한다. 예컨대 내가 다녔던 카셀 대학교의 구내식당(멘자)에서는 세 가지 메인 메뉴중 첫번째는 항상 비건메뉴였다. 때로는 모든 메뉴가 채식메뉴일 때도 있는데 최근에 다녔던 베를린의 학교에서는 오로지 목요일에만 고기 메뉴를 선보이고 기본이 채식메뉴로 셋팅되어 있다.
전세계에서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25%)며, 이후 멕시코, 브라질,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에 15~20%센트의 채식주의자가 있다. 우리나라는 약 3%의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추정되는데 이 수치는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고서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이유는 대부분 공장식 사육을 반대하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 그리고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환경적인 이유에서다.
주변 베지터리안인 독일인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주로 동물들이 잔인하게 도축되는 영상을 본뒤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결심한 친구들이 많다. 꼭 100프로 베지터리안 식단을 지키지 않더라도 육식을 지양하고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을 것이다.
독일 친구들이 하우스 파티를 할경우 굳이 베지터리안 친구들이 오지 않더라도 알아서 채식 메뉴들을 준비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기가 없이도 충분히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메뉴들이 많기도 하고 딱히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큰일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기준을 채식단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에는 무조건 비건 인증이 표시되어 있고 모든 카페에서는 일반 우유가 아닌 귀리 우유 (hafer milk) 옵션이 있다. 비건 요거트, 비건 치즈 등 대체유제품 뿐만 아니라 육식 코너에 가더라도 다짐육의 형태를 띈 대체육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육식 없이 단백질 및 지방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지만 더 많은 주의와 염려가 필요한 사안이며, 단체 식사가 보편화 되어 있는 한국에서 채식주의 메뉴를 고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걸린 일이다.
그렇기에 베지터리언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옵션이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데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면 일상은 쉬이 피곤해 진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선택권이 많은 독일의 환경은 다양성에 대한 이 사회의 태도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중에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