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
독일에 와서 가장 충격적인게 뭐였냐고 묻는다면 바로 남녀 혼성 사우나였다.
한국에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문화라서 도대체 이 사우나의 목적은 뭘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고유한 독일의 문화체험의 일부로서 직접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직접 체험과는 별개로 chatGPT에게 혼성 사우나의 목적을 물으니,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고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게 가장 크다. 성별, 나이, 체형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NUDE인 상태로 익명의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그 자체로 편견을 내려놓도록 한다는 거다.
내가 간 곳은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vabali.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건물 전체가 마치 인도네시아 발리의 어느 wellness 리조트를 연상시킨다. 시간권을 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종일권을 끊어서 하루종일 사우나를 즐긴다.
- 출처는 공식 홈페이지
다양한 컨셉의룸들을 옮겨다니며 사우나를 즐기다가 찬물로 샤워한뒤 또 다시 온탕가 냉탕을 번갈아 다니면서 슬슬 몸을 녹인다.
나체로 사우나에 들어서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한건 아 한국인은 마주치지 말았으면 !
이었는데 두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인데 한국인이면 어떠리 싶기도 했다. 한국인 특유의 눈치보기가 온몸에 베여있어서 겠지
시설을 이동할때는 당연히 가운을 걸칠 수 있지만, 사우나에 들어서서는 나체 상태를 유지하는게 룰이다. 너도 나도 벗고 있는데 나 혼자 무언가를 걸치고 있는게 불공평 해서일까?ㅎㅎ
최대한 다른 사람의 나체를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본능적으로 눈이 가는건 어쩔 수 없다. 정말 다양한 피부색의, 다양한 몸들이 사우나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재빠르게 공간을 스캔했다.
동행인은 사우나를 즐기는 독일인으로서 어색해 하는 나를 보며 릴렉스 라며 씨익 웃었다.
경험자의 격려 때문이었는지, 몸을 녹이는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는지 슬슬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옷을 걸치고 있는지 아닌지, 내 몸을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뻥 뚫린 공간에서 아무 눈치를 보지 않으며 나체로 걷는 건 정말 태어나서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사우나 문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인들은 몸을 대하는 시각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여름 공원에서 태닝을 하기 위해 상의탈의한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때때로 호수에서 나체로 수영하는 아저씨들을 종종 보곤 한다. 물론 나체 수영이 보편화 되어있는 건 아니다.
수영이나 태닝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완전한 나체나, 나체에 가까운 노출이 허용되는 클럽이 베를린 곳곳에 존재한다. 발가 벗은 채로 레이빙을 하는게 나로서는 영 내키지 않지만, 뭐 어떠랴. 미리 촬영 금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고, 몰래 영상을 찍는 이들이 있을 경우 바운서들이 바로 제지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 촬영하는 사람들을 막을 도리는 없겠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몸일 뿐이며 특별히 과도한 성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는 거다. 그저 내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고 남의 몸도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몸을 단절하여 분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식스펙, 애플힙을 타겟으로 하는 운동법 부터, 자기 만족으로 포장되는 바디 프로필까지.
잠시였지만, 내 몸 구석구석을 뜯어보고 평가하는게 아니라 그저 생존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