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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Mar 06. 2024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이의 교육기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아이의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하루가 좀 더 단정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오전시간은 내 마음과 집을 정리하고 오후에는 잠깐이라도 글을 쓴다. 세시가 되면 간식과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아이를 맞이하러 간다. 단순하지만 이 시간을 위해 두 달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오전 9시 15분. 셔틀을 태워 보내면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에 늘 가던 공원이 아닌 반대쪽 길을 선택했다. 아직 곳곳에 무너진 흙더미와 나무가 널브러져 있는 공사현장 쪽인데 왜 이쪽으로 왔을까 하는 순간, 멀리 성당 지붕이 보였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나... 심란했구나.

평소 기도도 미사참여도 잘하지 않다가 성당으로 가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늘 그랬다.


이십 대 중반.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고 밤낮없이 막내작가 삶에 충실했다. 더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열망에 모든 걸 쏟고 있었는데 갑자기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폐지된 사실을 알게 된 날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멍하게 있다가 종점까지 가버렸다. 종점은 공교롭게 불 꺼진 빈 성당이었다.


아파트가 즐비해있는 이 동네는 조금만 벗어나도 시골 산소 가는 길인가 착각할 정도로 다른 분위기다. 제법 큰 시골성당 옆에는 큰 절과 나란히 하고 있다. 종교 대통합 같은 평화로운 공간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웃음이 나왔다. 아직 찬 공기에 모자를 더 깊이 쓰고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님 상에 다가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왔니 마음이 좀 그랬지?'라고 말해주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어제 잠들기 전 아이의 까진 손에 약을 발라주었다. 어린이집에서 살짝 다쳤는데 선생님을 불러도 못 들으셨는지 쳐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아팠겠다. 다음엔 좀 더 가까이 가서 다쳤다고 말씀드리자." 했더니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

어디에 가도 규칙을 잘 지키고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으려고 애쓰는 스타일인 건 알았지만 아직 처음 가본 곳이 낯설고 긴장했겠구나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6세 반이 되었으니 전보다 더 어린이로서 스스로 부딪히고 이겨내는 연습 중일 거라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곁에서 충분한 사랑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며칠 이런저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선생님이 다정하게 이름 불러준 적은 없었어?"

"양말이 젖거나 불편한 일이 있을 땐 선생님께 말씀드려. 여벌 옷 엄마가 보냈어."

그래도 아직 선생님이 친근하지 않은 건지. 단체 생활에 무조건 순응하는 건지. 유치원만 다녀오면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하던 작년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새로운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서 왜 이렇게 내 마음이 개운치 않은지 생각해 봤다. 선생님이나 어린이집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늘 방문하거나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마음 한 구석이 걸리는 건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게 뚜렷한 단점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뭐가 문제일까?


아이의 행동을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아이가 많은 이 구역의 특징인 걸까. 새로운 기관에 보낼 때마다 아이의 적응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마다 "어쩜 이런 말을 하죠?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하며 칭찬해 주시는 말에 조금은 의연하게 별거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인사하기에 바빴는데. 이번 통화는 달랐다.

"좀 스스로 잘하려고 해서인지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행동해서 좀 아쉬웠어요."


선생님도 아이도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부디 나의 노파심이 편견이길 바란다. 부모의 상황 때문에 환경을 옮겨야 했고 다시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 것에 미안해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과연 내가 좋은 부모일까? 속상해진다.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본다.

'처녀의 몸으로 사람의 마음으로 어떻게 신을 품었나요. 당신은.'


모든 상황을 제어하려 하지 말자. 나의 묵상의 결론이다. 일정이든 마음이든 뭐든 정해져야 편안한 나라서 마음의 갈무리를 해야 했다. 아이의 교육기관을 자유로이 고를 수 없었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나머지는 힘을 내보는 거라고. 아이는 계속 커가면서 여러 상황에 부딪히고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때마다 용기와 지혜가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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