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으로 시작한 극기훈련
"돌선물로 달러를 받았어요. 편지에는 엄마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응원이 적혀있었죠."
여행을 좋아하던 아이의 엄마는 선물을 받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나는 순간이 더 유혹적이다.
허나 나라는 인간은 여행의 기쁨도 잠시 호텔방에서 아이 사진을 보며 훌쩍거릴 것을 알고 있기에 체념이랄까, 여행을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특히 이렇게나 뜨거운 여름 극성수기의 여행은 피했었는데 남편의 휴직과 맞물린 여름 방학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회사 쉬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싶어!"
한숨 쉬듯 말하는 남편의 표정.
요즘 들어 엄마 아빠 결혼사진이며 뱃속에 있을 때 자신이 어땠는지 자주 묻는 아이.
잠시라도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태교여행 때 갔던 곳을 가보면 어떨까.‘
여행 다닐 형편은 못되지만 남편의 장단에 맞춰 준비도 없이 아이와 함께 갈 여행가방을 쌌다. 마침 엔화가 좀 떨어지고 있었고 아이와 제주도 여행으로 비행의 희망을 얻은 참이었다. 우리는 로망과 이상을 가득 안고 태교여행과 같은 삿포로 여행을 계획했다.
태교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순간이라면 단연 '오타루'였다. 후라노-비에이에서 보랏빛 라벤더 밭과 에메랄드 빛 천의 호수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오타루. 기대 없이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마음을 뺏겼다. 오타루 운하에서 본 노을은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과묵한 남편마저 "아 행복하다"는 말을 입으로 내뱉었다. (서로 깜짝 놀라 쳐다보기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뱃속의 아이도 느끼고 있을까 연신 배를 만지며 평화를 안고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우리는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오타루로 향했다. 삿포로 역에서 JR을 타고 한 시간 즈음. 기차가 달리는 방향 오른편에 앉으면 바다가 펼쳐지고, 기차가 멈추면 작은 시골역에 내리게 된다. '왜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지?' 생각하니 만화 <슬램덩크>, 영화 <바다 마을 다이어리>에서 본 작은 바닷가 마을 느낌이다. (작품의 배경지는 도쿄 외관의 '가마쿠라'라는 동네라고 함)
3년 후 아이와 함께 다시 기차를 탔다. 만 3세 아이에겐 바닷가 풍경의 감흥도 잠시, 걷고 또 걷는 여행은 무리였다. 우리는 호기롭게 유모차도 가져가지 않아서 남편과 번갈아 땡볕아래 아이를 안고 다녔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날씨에 잠깐씩 오르골당과 카페에 가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호텔에 가고 싶다고 칭얼댔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이미 한계에 다다른 눈치다. 처음 로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여행은 둘째 날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숙소 가자마자 맥주 까자" 내가 위로하듯 말하자 남편은,
"난 루아 깔(?) 거야"
이게 무슨 소린가 내가 벙~찐 얼굴로 쳐다보자 해맑게 아이가 말한다.
"난 케이크 깔 거야!"
우리는 땀범벅된 얼굴로 한참 웃었다. 그제야 알록달록한 바람개비와 곳곳에 달려있는 작은 풍경(風磬)이 보인다. 바람에 계속 소리를 내어 기분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준다. 어딜 가나 아이가 좋아하는 미피, 키티, 마이멜로디 같은 산리오 친구들 캐릭터 카페가 있어 우리를 응원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시중과 극기훈련 어디쯤에 있는 것 같지만, 아이의 눈으로 말해주는 귀여운 상상은 혼자 듣기 아까울 정도로 작고 소중하다.
여행에 다녀와서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을 유치원에서 나누는 시간. 루아는 삼일 동안 시원하고 편안했던 순간보다 두 번째 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오르골 가게에서 오르골을 못 사고 못 만지게 해서 서운했어. 배를 탔는데 너무 더웠어." 했다고.
아이의 말을 듣고 선생님이 어떻게 여행을 계획하게 됐는지 물으시길래,
- 요즘 부쩍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해서
태교여행 코스 그대로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어머, 저도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감탄하시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는 다시는 못 갈 것 같아요.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