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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Jun 21. 2023

음주운전은 건강보험이 안 돼요

외상외과 실습썰

본 내용은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각색하였습니다.


외상외과 회진을 돌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환자를 보고 있는데, 한 환자가 퇴원을 하고 싶다고 계속 그러셨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최대한 빨리 퇴원하게 해달라고...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병동에서 나와서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음주운전은 건강보험이 안 돼.


...방금 전까지 연민의 감정이 있었는데, 쏙 들어갔다. 제발 다른 사람 치지 않은 단독 교통사고였길 바라면서 회진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내는 병원비가 싸다. 그것은 국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즉, 병원비가 n원이 나왔을 때, 국가가 m원을 병원에게 주고 나는 n-m원만 지불하는 식이다. 국가가 내주는 비율은 상황마다 다르며,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위해 건강보험료를 낸다.

이해가 잘 안 간다면? 검색을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https://hineca.kr/1913 이 글이 좀 쉽게 잘 쓰인 것 같다.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의료보험 체계를 갖고 있다. 영국 같은 경우는 보험의 형식이라기보다 세금으로 운영되며 거의 모든 의료비가 무료고, 미국은 대부분이 사보험이라서 보험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는 병원비를 쌩으로 내야 하니 엄청 비싸고, 별 거 아닌 병 같지만 파산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흘깃 보면 영국 시스템이 괜찮아 보이지만 느리고, 예약을 못하고, 재정이 적자 나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 미국은 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우리나라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 주장은 많은데 글쎄, 제약회사가 수가가 낮아 흑자가 안 난다고 의약품 공급을 중단하고 접근성이 너무 좋아 응급실에는 비응급 환자가 밀려오고...  정답은 없다. 누군가 최선의 의료시스템을 찾았다면 전 세계가 도입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다시 돌아가보면, 국민이 소중하게 낸 건강 보험 재정을 그런 경우에까지 사용한다면 모두가 화가 날 것이다. 술 마시면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운전자는 없을 텐데,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면 음주운전고의성이 강한 행이라 본다. 국민건강보험법 상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보험급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음주운전은 건강보험이 안 된다.

참고 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126162100057
만약 건강보험이 안 되면 병원비가 얼마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건강보험요양급여비용"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무료로 인터넷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우리가 내는 돈과 급여 항목에 대한 실제 비용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 보면... 너무 힘들다. 

2022년 2월 자 기준 건강보험요양급여비용: https://repository.hira.or.kr/handle/2019.oak/2964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펼쳐는 보고 계산은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급여비율은 대충 50%라 가정하고, 인터넷에 나온 본인부담금 기준으로 반올림을 해서 계산을 해보겠다. (정말 대충대충 계산하니 믿지 마시길...)

외상외과 진료비는 상급종합병원이니 20만 원쯤 나온다고 한다. (참고: https://medicalworldnews.co.kr/m/view.php?idx=1510925358)
응급 수술을 했는데 무슨 수술인지 모르겠다. 대충 맹장 수술도 10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급하게 개복으로 하는 거니 아주 싸게 잡아서 본인부담금 300만 원, 보험 적용 안 되면 600만 원이라고 생각해 보자.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로 올라갔는지 일반병실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운이 나빠서 중환자실로 갔다고 생각해 보자. 잘 모르겠지만 입원료가 하루 7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으니 보험적용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15만 원이라 가정해 보자. 한 일주일 입원하면 100만 원. 
그 외에 식비라든가,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또 교통사고 환자는 뼈가 여기저기 부러지는 일이 많아 정형외과 수술도 여러 번 받아야 한다. 


그걸 다 포함하면 일주일 입원에 대략 천만 원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참고로 내가 봤던 한 환자는 이틀인가 삼일 만에 1000만 원이 넘어가셨던 분도 있다. (이 분은 음주운전은 아니었지만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병원비가 끝이 아니다. 자동차보험비용, 상대방이 있으면 합의도 해야 하지, 뭐 여기저기 돈이 많이 나간다. 

술 마시고 '에이 뭐 이 정도는~ 어차피 단속도 안 해~'라면서 운전대를 잡는 분들은 자신의 차를 얼마에 샀는지 생각해 보자. 저 차 팔아도 감당이 안 될 수 있다. 물론 사고 나면 찌그러져서 팔지도 못할 테지만. 


p.s. 술 먹고 킥보드도 타지 말고, 자전거도 타지 말자. 추가로 걸어가다가 자빠지지도 말자. 애초에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지 말자. 다쳐서 왔으면 병원에서 진상이라도 부리지 말자. 당신이 어떻게 다치든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주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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