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소아청소년과 실습썰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했습니다.
저출산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과가 있다. 바로 산과와 소아청소년과이다.
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산과는 아기를 분만하는 과고, 부인과는 여성생식기 관련 질환, 예를 들면 자궁근종, 자궁경부암, 난소암, 생리불순 등을 다루는 과이다. 그래서 산부인과를 지원하면 보통 부인과를 많이 희망하고 산과는 적다.
소아청소년과는 아이들의 내과이다. 내과와 외과의 차이점은 수술을 안 하는 과냐 수술을 하는 과냐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래서 외과의 경우는 세부전문으로 소아가 있고, 내과는 소아를 잘 다루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아가 성인의 축소판처럼 생각해서 단순히 약 용량만 줄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축소판이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겼겠지? 하여간 소아청소년과나, 다른 과의 소아 세부전문의나, 지원이 적다.
개인적으로는 저출산인데 산과 실습을 도는 동안 산모가 한 명도 안 오면 아무것도 못 배우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소아청소년과 실습을 돌 때 단순 감기 말고 소아 환자가 오기는 할까, 걱정이 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할 과가 아니면 해당 과의 환자를 보는 기회가 어쩌면 평생에 있어 거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쨌든 의대 졸업의 목표는 일차의료의를 만드는 것이고, 그러면 모든 과에 대해 대략적인 지식이 있고 경증 중증을 분류해서 큰 병원으로 보낼지, 본인 선에서 끝낼지 판단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나중에 혹시 애기가 울면서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은가? 주변에 소아과가 없어서 급한 대로 내과에 왔어요... 아니면 어디 산골짝 여행 갔는데 분만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너무 MBTI N인가 하여간 실습은 많이 보고 다양하게 돌면 좋다.
하지만 실습 도는 첫날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무슨 하루에 분만이 10건 정도 되지?
무슨 소아병동이 두 자리 빼고 꽉 찼지?
난 왜 못 배울까 봐 걱정했지...?
물론 매일 10건씩 넘었던 것은 아니고 그날이 유난하기는 했고, 병동이 거의 꽉 찬 것도 하루만 그랬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았던 이유는 우리 병원이 큰 병원이고, 작은 병원이 안 하니까 우리 병원으로 몰려서 환자가 많게 된 것이었다.
일단 산과는 내가 실습 도는 당시에 코로나가 극심했는데, 우리 병원이 코로나 산모 분만이 가능했다. 아침 회진 때 (아마도 119로부터) 전화가 오면 분명히 여기로부터 50km가 넘게 떨어진 곳 같은데 여기로 이송하겠다, 그래 와라, 그런 대화가 오갔다. (물론 코로나 산모 분만 시에 학생들은 참여를 못 했다.) 게다가 우리 병원과 같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대학병원의 산과 교수님이 해외 연수를 가셨다는 소문이 들렸다. 참말인지 아닌지는 확인을 못 해봤지만, 해당 병원에서 넘어온 산모가 있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실습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돌았다...)
소아청소년과는 야간에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이 지역에 우리 병원밖에 없었다. 아침 교수님 회진 전 학생 회진(?) 같은 것을 하는데 (교수님에게 전달할 환자의 상태를 미리 요약정리를 하는 시간이다) 새로 오신 환자분께 어떻게 오셨어요~ 물어보면 "어떤 증상 때문에 OO병원에 갔는데 거기가 응급실에서는 소아를 안 본다고 해서 이쪽으로 왔어요." 라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그럴 수 있지만 담당 교수님이 학생이 모든 환자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길 바랐어서 해당 병원이 너무 미웠다. 제발 데려가면 안 되니... 내 쪼만한 머리로는 이걸 다 못 파악하겠는데...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못 배우고 떠날까 걱정했던 생각과 달리, 배운 것이 하도 많은 실습이 되어버렸다. 희귀 질환도 보고, 흔한 질환도 보고, 외국인 환자도 보고... 저출산이라서 한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급이 감소하고, 그래서 남은 수요가 전부 특정 병원으로 몰려서, 그 병원은 바빴다. 이해는 한다. 이것은 봉사활동이 아니고 직업이고, 이것도 돈벌이 수단이니까. 그래도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다. 나는 미혼이라서 막 엄청 잘 체감은 안 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절실한 현실이 아닐까.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기피과 중에서 그냥 지금 있는 인원수로도 잘 굴러가는 과가 있다고. 어차피 그 병은 심각한 병이므로 대학병원으로 와야만 하고, 개원도 안 되는 과라서 만날 미충원이지만 그래도 적당히 잘 굴러간다고. 나중에 저출산이 더더욱 심해지면 소아과와 산과도 그런 날이 오게 될까? 아니면 그전에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까?
p.s. 다른 의과대학을 다니는 친구가 저번에 물어보았다. 너네 병원은 아기 나오면 방송 안 해? 뭔 소린가 들어보니, 그 병원은 출산이 있으면 전체 방송으로 '오늘 우리 병원에 소중한 생명이 탄생했습니다'하면서 알려준다고 했다. 우리 병원은... 만약 그랬으면 방송 너무 많이 한다고 민원 들어왔을 듯...
p.s. 실습 썰은 과거라서 현재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