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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Dec 26. 2018

그레이트 오션 워크 4

트레킹 4일 차 (8월 3일)


: 캐슬 코브 - 리얀스 덴 캠핑장 22km    


혼자 다니는 여행이 편하기는 하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뭐든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홀로 깊은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는 외롭고 쓸쓸하다. 여행은 동행이 맛이다. 여행의 기쁨과 즐거움은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데서 온다. 함께 수다 떨고 잔을 부딪치며 박장대소하면 삶의 찌든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동행은 먼 길을 멀지 않게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Good Morning! 모두 뽀송한 침대에서 개운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잼과 버터 바른 통밀 식빵에 우유 한잔, 거기에 렌틸콩 통조림 수프를 곁들여 아침 만찬을 즐겼다. 후식으로 오렌지와 사과를 먹고 마무리로는 드립 커피를 우려내 마셨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더하자 분위기가 만점이다. 본전 뽑자는 생각으로 늘어져 있다가 10시에야 짐을 정리해서 집을 나섰다. 워크 91의 로벤이 차를 끌고 와서 우리 짐차를 가져간다. 다음 접선 장소로.

    

- 영혼의 동반자들 -  

  

캐슬 코브의 절벽 위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곳이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요한나 비치(Johanna Beach)로 향했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도 만만치 않다. 점심 먹을 장소인 요한나 비치 캠핑장까지가 8km, 거기서 야영할 리얀 덴(Ryans Den) 캠핑장까지 가야 할 거리가 14km. 도합 22km를 걸어야 한다.   

  

무지개가 떴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무지개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해가 났다 비가 오다 하니 무지개가 잘 만들어질 날씨 조건이다. 캐슬 코브 뒤로 멀리 케이프 오트 웨이 등대가 가물가물하다. 먼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가야 할 길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걷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걷기가 무엇이기에 많은 선각자들이 걷기를 예찬하며 길을 걸었을까? 그리고 나는 또 왜 이 먼 호주까지 와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사람은 각자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각자 좋아하는 일과 추구하는 바도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왜 마라톤을 하지 않느냐고 달릴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산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름과 그름의 기준이 되지는 않으므로. 그러나 태어나 처음 홀로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인간에게 걷는 행위는 삶의 필연이요, 숙명이다. 걷지 않는다면, 걸을 수 없다면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걷는 것은 신성하다. 특별히 온몸이 녹초가 되도록 오랫동안 걷는 것은 삼천 배의 신성함에 뒤지지 않는다. 나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걷는 것. 소설가 박완서 님은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고 말씀하셨다. 여행길에서 걷는 이를 만나는 것을 누구보다 반가워하셨다.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암묵적으로 그와 나는 벗이며 영혼의 교류가 가능한 ‘소울 메이트’라 말할 수 있다. 지금 걷기에 의기투합한 다섯 명의 동료가 나와 함께 뚜벅뚜벅 길을 걷고 있다. 모두 나의 영혼의 동반자들이다.     


- 요한나 전투 -    


드디어 요한나 비치(Johanna Beach)에 다다랐다. 해변 입구에 Decision Point 경고판이 서있다. 그 표지판의 내용을 천천히,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표지판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 경고판을 허투루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만다. 바다가 나왔다며, 신난다며 해변에서 여러 가지 행위예술(?)을 즐겼다. 엄청나게 큰 파도가 거대한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그저 신나는 하나의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바다가, 그 파도가 얼마나 무서운 독수를 품고 있는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1차 요한나 전투는 요한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강어귀에서 치러졌다. 요한나 강(Johanna River)은 해안을 따라 1km쯤 흐르다가 바다로 흘러든다. 다른 우회로는 없다. 어느 지점에선가 강폭이 좁고 물살이 약한 곳을 골라 강을 건너야만 한다. 강을 탐색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강 하구에 이르렀다. 제일 좁아지는 목이었고 일견 제일 얕아 보였다. 김 교수님이 겁도 없이 맨 먼저 저벅저벅 강을 건너가신다. ‘어라 별거 아니네.’     

뒤를 이어 성철님과 단장님이 신발을 벗어 들고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허리까지 차는 높은 물결이 밀어닥쳤다. “어이쿠, 후퇴, 후퇴” 예상치 못한 높은 파도였다. 잘 살펴보니 파도에 박자가 있다. 작은 파도가 서너 번 밀려오고 나가면 이어서 큰 파도가 하나씩 섞여서 밀려온다. ‘아! 그랬구나. 조심했어야 했는데...’ 파도를 노려보다가 강을 다시 건넌다. 이번엔 박자를 잘 맞추어 무사히 건넜다.     

성철님은 바지에 넣어두었던 여권과 지갑이 젖고 말았다.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며 젖은 물건들을 꺼내놓고 모래톱에 앉아서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찰나. 엄청나게 큰 파도가 어, 할 사이도 없이 모래언덕 위로 덮쳐왔다. “파도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신발과 배낭을 들쳐 메고 혼비백산하여 뭍 쪽으로 도망. ‘연평 해전’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어이없이 방심하고 있다가 크게 당하고 말았다.     

일방적으로 당한 2차 요한나 전투의 손실이 컸다. 바지는 말할 것도 없고 등산화가 모두 젖어버렸다. 그나마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슬리퍼만 신고 나머지 트레킹을 이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성철님의 여권은 해초 더미 사이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만약에 유실됐다면 멜버른에 며칠 더 고립되어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바라는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성철님 양말 두 짝, 단장님 스패츠 한 짝, 스틱 다섯 개가 바닷속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 그토록 무서운 바다 -    


망연자실 바다만 바라본다. 김 교수님은 빌려온 스틱을 잃어버려 무척 애석해하셨다. 말로는 괜찮다고 새로 사다 주면 되지 하셨지만 속마음이 어디 그랬을까? 유심히 바다를 수색하던 주택 씨가 강을 도로 건너가 모래톱에 떠내려 온 스틱 네 개를 건져왔다. 단장님 스패츠는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어찌 손을 써 볼 수가 없었다. 김 교수님 스틱의 행방은 오리무중. 결국 나머지는 포기하고 장비를 수습하여 다시 길을 나섰다.     

모두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 사람이 상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100m쯤 해변을 걸었을까? 주택 씨가 무언가를 집어 들고 환호성을 올린다. 교수님의 스틱이 거기 떠내려 와 있었던 것이다. 요 녀석은 어떻게 이곳까지 떠내려 왔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모두 포기하고 있던 그때 주택 씨는 포기하지 않고 매의 눈으로 해변을 훑었던 것이다. 잃어버렸던 스틱을 되찾은 교수님의 표정은 마치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 마냥 감격 범벅이었다. 주택 씨를 얼싸 앉고 기쁨의 괴성을 내지른다. 괜찮으시다더니 괜찮은 게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요한나 비치를 되돌아본다.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그토록 무서운 바다가 될 수도 있다니. ‘요한나’라는 이름을 얻은 내력도 바로 이곳 바다의 변화무쌍한 파도 때문이라고 한다. 1843년 요한나 선장은 거친 파도를 피해 배를 이곳으로 몰고 와 닻을 내렸다. 그러나 엄청나게 큰 파도가 덮쳐와 배를 삼켜버리고 말았다고. 우리가 산을 탈 때에도 겸손해야 하지만 바다에서는 더욱 조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 반갑다, 캥거루! -    


계속 부둥켜안고 있으면 그 사람이 웃는지, 우는지, 괴로워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려견이 가장 안정감을 느낄 때는 만져줄 때가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줄 때라고 한다. 개가 귀엽다고 쓰다듬는 것이 오히려 개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입하기보다는 곁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위로가 된다.  

    

요한나 비치 캠핑장은 잔디밭이 넓게 펼쳐있어 분위기가 아주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에이레 리버에서 이틀째를 보낸 트레커라면 이곳 요한나에서 삼일 째 밤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젖은 옷가지들을 말리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비엔비 숙소에서 미리 만들어 온 멸치 주먹밥. 쪼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먹노라니 옛날 남한산성에서 추위에 떨며 청나라와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이 떠오른다. 요한나 전투를 막 치르고 온 뒤라 그럴까? 양말 없이 맨발에 젖은 등산화를 신고 터벅터벅 걷는 성철 님의 뒷모습이 볼수록 처연하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 밤 숙영지인 리얀 덴(Ryans Den) 캠핑장까지 남은 거리는 14km, 현재 시간 오후 3시. 아무리 서둘러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요한나 지역은 초지와 목장이 발달되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고, 양도 만난다. 캥거루도 많이 사는지 로드 킬을 조심하라는 팻말이 서있다. 과연 얼마 안가 캥거루 가족이 등장한다. 호주의 세 번째 야생동물이다. 우리가 호주 와서 보고 싶었던 동물들은 모두 만나본 셈이다. 반갑다, 캥거루!      

- 서울에서도 이 맛이 날까? -    


밀라네시아 비치(Milanesia Beach) 근처의 약속된 장소에서 우리 보물창고와 접선했다. 오늘 밤 야영에 필요한 텐트며 침낭과 식량들을 꺼내서 배낭에 옮겼다. 이곳에서 리얀 덴까지는 6.6km를 더 가야 한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해서 한국을 떠나올 때의 단단한 초심은 어디 가고 어떡하든지 무거운 배낭을 안 지려는 얍삽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한다. 겨우 6km 남짓인데.     

밀라네시아 비치에서 또 한 번 바다로 흘러드는 개울과 조우했다. 요한나 비치에서 데인 상처가 있어 작은 개울을 건너면서도 무척이나 마음이 조심스럽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한데 길도 급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곳부터는 가파르게 내려섰다 급하게 오르는 경사길이 이어진다. 그오길 전체 구간 중에 가장 난도가 높은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무거운 배낭까지 지고 있어 발걸음은 더욱 더디고 힘겹다. 헤드 랜턴을 장착하고 악전고투하며 용을 쓴 끝에 7시가 넘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저녁 메뉴는 오뚜기 짬뽕이다. 힘들게 걸으며 땀을 쏟은 까닭일까? 얼큰한 짬뽕 국물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온종일 걷고 난 후의 허기는 하찮은 푸성귀를 진귀한 맛으로 바꾸는 마법의 조미료이다. 별 것 아닌 음식이 환상의 별미가 된다. 불 맛이 더해진 짬뽕 한 젓가락에 애잔한 환희가 밀려온다. “짬뽕 너,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다들 이구동성으로 인스턴트 짬뽕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며 돌아가면 꼭 다시 한번 끓여서 먹어보겠단다. 과연 서울에서도 이 맛이 날까?     

   

모닥불을 피운다. 원래는 금지된 장난이다. 그러나 신발이며 양말들이 모두 젖어 불가피한 일이었다. 여름이었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호주의 여름은 산불이 잦은 계절. 엄격히 관리되는 산불방지 기간이다. 마른 나뭇가지는 지천에 널려있었다.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불 피우기의 달인인 주택 씨가 손쉽게 불을 일군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들어 간다. 모닥불 곁에서 불을 쬐며 상념에 잠긴다. 불은 일종의 타임머신, 시간의 전령사.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너울너울 우리 영혼을 데려간다. 불의 환영 속에서 나는 십 대 소년이 되고, 이십 대 청년이 되었다가 벼락 치듯 오십대로 넘어온다. 나는 잘 살았는가? 잘 살고 있는가? 순간 밀려오는 회한으로 가슴이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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