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가장 처음에 무엇을 하게 될까?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해당분야 최고가 누군지 확인한다. 일종의 모범답안을 확인하는 셈이다. SNS담당자가 되고나서 공공기관 SNS를 둘러봤다. 곧 전국 지자체와 국가기관 SNS 전부를 들여다봤는데(600곳 좀 넘는다) 초창기에는 SNS로 유명한 몇몇 기관을 분석했다. 당시에는 부산경찰, 고양시, 한국민속촌이 두드려졌다.
부산경찰 SNS 시작은 권효진 경장이다. 그가 보여준 필력은 공무원의 것이 아니었다. 공무원이 행정할 때 사용하는 문체가 요약되고 건조한 깔끔한 것이라면 그가 보여준 것은 문학적이고 여유있는 말투였다. 심지어 경찰이 취급하는 각종 범죄 행위들을 웃긴 비유를 들어 나른한 오후 라디오 멘트처럼 조곤조곤 나긋나긋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부산 동부서 소식입니다'라는 식으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데 ‘여자친구와 헤어져도 여자친구와 먹던 밥맛은 잊을 수 없었나봅니다.’라며 전 애인 집에 무단침입 사건을 소개하거나 ‘남의 집에 도둑질 하러 가서 그 집에 있던 컴퓨터로 자기가 하던 게임에 접속하던 도둑이 주인이 오자 놀라 도망쳤다가 접속한 게임 아이디를 추적해 검거된 사건을 두고(사건부터가 심상치 않다.) 차마 로그아웃을 하지 못한 범인은 소환사의 계곡(게임 상 지명)으로 소환됐습니다’라는 식으로 소개한 것이다.
이런 ‘드립’들을 두고 누리꾼들은 ‘담당자가 약을 했나’라고 농담을 건냈고 부산경찰은 마침 마약수사 에피소드를 전달하며 ‘담당자는 음성으로 나왔다.’는 식으로 받아치는 재치를 보였다.
부산경찰의 아버지 권효진 경장(당시)와 부산경찰 드립
이런 홍보 스타일은 후임자인 장재이 경장은 이를 이어받았다.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담당자가 바뀐지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들도 권효진경장이 한 것인지 후임자는 장재이 경장이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이들이 지금도 경장인지 더 진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것이 부산경찰이 보여준 톤 앤 매너였고 이 둘 덕분에 부산경찰은 당시 공공기관이 SNS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모두 휩쓸었다고 한다. 2016년 부산경찰 페이스북은 팔로워가 30만명을 넘었으며 당대 최고의 예능 무한도전과 콜라보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부산 경찰은 경찰업무 특성상 자극적인 소재가 많았다. 자잘한 잡범죄부터 강력범죄까지 콘텐츠로서 자극이 강했고 그 중 몇몇은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것이어서 악에 대한 분노와 정의구현의 염원이 담겨 여론이 형성되기에 적합했다. 이런 특성은 콘텐츠가 확산되는 SNS의 특성과 만나 극대화 되었고 부산경찰 페북에 현상수배문이 종종 걸릴때면 좋아요가 수십만을 기록했으며 그 덕분에 때로는 범죄자를 검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부산경찰 SNS를 보면 초창기에는 트위터가 주력이었고 내가 담당자일 때는 페이스북이 주력매체였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당시 게시물들은 보면 동부서 소식입니다. 남부서 소식입니다처럼 본청 외에도 여러 지역대로부터 소재를 발굴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운영방식을 충주시에 그대로 도입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당장 충주시는 경찰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흔치 않았다. 실제 이런 일이 흔해서도 안됐다. 범죄가 매일 일어나는 도시라니, 고담시티여? 시민이 툭하면 죽고 다치고 사고나면 안되잖는가? 경찰과 지자체는 콘텐츠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부산경찰처럼 각 부서로부터 소식을 듣는 것도 당시 충주시 분위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 이정도 수준의 말장난을 할 수 있겠구나.’가늠하는 정도였다.
고양고양시는 말투도 고양이인고양
고양시청은 고양고양이라는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를 앞세우고 있었다. 고양이가 이건 뭐고양?하며 귀여운 고양이 말투로 떠들고 있었다. 당시 고양시청 홍보팀장님이 처음 캐릭터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거기에 찰떡같은 홍보담당직원이 영혼을 불어넣고 있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다 큰 어른이, 그것도 고양고양 거리는 말투를 쓰려니 상당히 민망했을 법도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프로 아닐까 생각한다. 고양시는 그렇게 공공행정 영역을 넘어 대한민국 캐릭터에 한획을 그었다.
이것도 충주에 적용할 것을 생각해봤다. 내가 공주시였다면 프린세스니, 공주 부캐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충주다. 혹자는 충주의 충을 우스개로 벌레충이라고도 했다. 실제로는 충성할 때 충이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진지하고 고루했다.
심지어 지금은 충주에 충주씨라는 귀여운 캐릭터가 있지만 당시에는 충주시 대표 캐릭터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고양고양이 같은 캐릭터를 만들자니 엄두가 안났다. 또 설령 어찌어찌 만든다해도 잘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캐릭터가 너무 많았다. 어디에 둘레길이 유행하면 전국에 둘레길이 생기고, 무슨 빵이 유행하면 전국에 비슷한 빵이 생기듯 캐릭터가 유행했다고 해서 모두 캐릭터를 따라 만든다면 그건 잘해봤자 아류라고 생각했다.
한국 민속촌 계정 '속촌 아씨'와 민속촌 알바. 이런 애들을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참고한 곳은 한국 민속촌이었다. 민속촌은 '속촌 아씨'라는 캐릭터가 조선시대 소녀랄까 낭자말투로 민속촌 소식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민속촌 알바’로 불리는 걸출한 캐릭터들이 활약해서 콘텐츠들을 만들고 있었다. 민속촌 알바란 민속촌 거지, 구미호, 사또, 체대생 등 민속촌 내 주민이면서 한 콘텐츠를 담당하는 역할이었는데 각각 끼있고 능력있는 친구들이 알바로 지원해서 열연을하니 지금의 콘셉질, 부캐놀이를 앞서간 느낌도 있다. 또한 당시로서는 드물게 영상매체를 활용하고 있었다. 아씨라는 캐릭터, 한명한명이 연예인 같이 활약하는 민속촌 알바, 스튜디오 같은 민속촌에서 당시로서 드문 야외촬영 영상까지(영상도, 야외촬영도 귀했다). 내가 참고한 곳 중 가장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곳이었다. 이건 도저히 내가 할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생각이 반대로 튀었다. 이 정도 수위, 즉 선을 지키되 이들이 한 것은 빼고하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따라하려해도 내가 잘 따라할 수도 없고 잘 따라해봤자 제2의 혹은 아류, 짝퉁이 될 듯 했다. 그런거라면 차라리 이들과 겹치는 영역을 피해서 새로운 것을 하는게 낫겠다 생각이 든 것이다.
SNS담당자가 됐다. 공무원이 되고 4년차에 충주시 온라인 홍보 총괄이 된 것이다. 홍보담당관 온라인 홍보 총괄 담당자. 멋지지 않은가? 홍보라는 단어는 어감이 워낙 신선하고 창의적인 느낌이다. 거기에 온라인이라고 하니 또 신기술, 미래지향적인 느낌이고 여기에 총괄이란 말까지 붙으니 드라마에 나오는 젊고 유능한 실장님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실상은 그냥 담당자가 한명이란 뜻이다. 이때 심경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회사에 들어갔더니 삽 하나를 손에 쥐어주면서 "니가 우리회사 건축 총괄이니 지금부터 사옥을 지어라." 한 느낌이랄까.
SNS담당자가 됐다. 남들은 출근하면 눈치보면서 하는 SNS를 나는 이제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대놓고 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문제는 내가 SNS를 안하던 사람이란 것이다. 평소 블로그라도 만지작 거리던 사람이라면 노는 것처럼 일할 수 있겠지만 일단 난 이쪽에 문외한이었다. 이제 출근하면 뭘해야 하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충주시는 SNS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올때부터 블로그니 카카오스토리니 몇 종류 SNS를 충주시는 이미 운영하고 있었다. 단 주력으로 한다기 보다는 A직원의 일곱번째 업무, B직원의 세번째 업무마냥 소일거리를 몇몇이 나눠서 맡은 모양새였다. 그러다 내가 오면서 온라인 홍보는 한 명이 모두 하도록 업무를 묶었다. 말 그대로 총괄하게 됐다.
새로 옮긴 자리에 앉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충주시 온라인 홍보 담당자다. 충주시에 대한 내용을 온라인으로 홍보하면 된다. 온라인이야 인터넷을 말하는 거고 그렇다면 홍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사춘기 중학생마냥 유치해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무척 중요한 질문이었다.
홍보 그거 광고 찍고 관심끌면 되는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요즘 말로 관종이 돼야 하는 것인가? 중학생 때 온라인 게임을 하면 쓸데없이 진지한 말투때문에 50대 PC방 사장님이냐는 말을 들었던 내가?오호 통재라. 업무를 위해 페르소나까지 바꾸는 세계, 그것이 극한직업 공무원의 세계다.
홍보는 왜 하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그냥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은 것도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 사람 말에 권위 비슷한 것이 생기고, 장사를 하면 장사가 잘되고 등등 이득이 생기지 않는가. 그냥 단지 많은 사람들이 안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그 물건을 사고, 어떤 행사에 참여하고, 어떤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이다. 결국 홍보는 어떤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행정기관인 충주시는 왜 홍보를 할까? 가령 충주시가 열심히 보조사업을 추진하는데 아무도 보조금 신청을 안한다면 효율적인 행정집행이 안될 것이다. 행사를 기획했는데 사람이 안 모이면, 공공도서관 같은 건물을 지었는데 사람이 지었는지도 모르면 큰 건물은 텅텅빈 채로 파리만 날릴 것이다. 보조 사업도 예산을 수억, 수십억을 확보해 놨는데 아무도 신청을 안한다면 죄다 망한 사업이 될 것이다. 결국 정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홍보라 생각을 했다.
덧붙이자면 충주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내가 사는 도시를 더 알려 더 사랑하게 하는 것, 그로 인해 내가 사는 동내가 더 발전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득을 보는 것, 가령 옥수수를 판다면 더 잘 팔리고, 놀러온다면 더 잘 놀러오게 하는 것 그런게 홍보 아닐까? 두루뭉술한 개념들이 내 머리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때만 해도 왜?라는 것도 없이 막연하게 충주에 대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 정도가 전부였다.
문득, 대한민국 뭇 사람이 충주를 얼마나 알까 생각해봤다. 암만 생각해도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았다. 특히 젊은이들이라면 충주를 알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첫번째 목표는, 전국에 충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전 국민이 안된다면 온라인에서만이라도 충주를 알게 하는 것으로 잡았다.
두번째는 충주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이었다. 충주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지, 어떤 시책을 추진하는지, 충주에는 어떤 관광지가 있고, 어떤 농특산물이 있는지를 알고 그것에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충주시라는 이미지, 곧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공무원, 공직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편견을 없애고 싶었다. 공무원이 되고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신문기사, 이야기를 참 많이 접했다. 진취적이지 않고 안정만 추구해서 공무원이 됐다는 둥, 안되는 이유를 찾는다는 둥, 그러다보니 철밥통이라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둥, 내 세금으로 월급받는 것들이 등 공무원은 나라를 좀먹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본 공무원들은 그렇게 권태롭게 한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절대다수는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욕을 먹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무원을 욕했다. 그런 오해를 풀고 싶었다. 공무원이라고 다른 세계 사는, 말 안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너, 나, 우리는 같은 사람이고 우리도 열심히 하고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것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민원을 예로 들면 가슴에 화가 가득차서 민원을 넣고 거기에 공무원은 기계적으로 답변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친구끼리 서로 부탁하고 도와주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물론 이런게 얼마나 가능할지는 전혀 모른다. 안된다고 내 책임도 아니고. 다만 앞으로 먼 길을 간다면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 정도로 한번 생각을 해 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