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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남식 May 31. 2024

문체부에서 연락이 왔다.

지방 말단공무원, 중앙부처 온라인홍보 실무자에게 강의하다.

 담당자가 되고 6개월이 좀 덜 되었을 때 사무실 자리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문체부였다. 문체부라면 홍보 업계에서 중앙부처 아닌가? 전 업무 때 내가 만든 공모전 포스터가 선거법 시비가 걸려 선관위 전화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순간 PTSD가 도졌다. 그동안 했던 홍보들이 머리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촤차착 지나갔다. 혹시 내가 나랏님을 욕했던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어떤 법이라도 어겼던가? 드립이 선을 넘었나?


 들어보니 다행히 나쁜 얘기가 아니었다. 문체부는 그동안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같은 40여개 중앙부처 온라인 홍보 실무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매월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해왔다고 했다. 거기엔 유명한 웹툰작가, 홍보 실무자들이 와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중앙부처끼리 업무협조를 하거나 우수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설렜다. 전화로 설명을 듣는 동안 나도 거기 초대되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 끝에 문체부 담당자분이 나도 거기 오라는 것 아닌가? 내심 기대했던 말이 나오자 내 맘 속에서는 소리없는 환호성이 터졌다.  공직경험도 적고 직급도 낮고 나이도 어린 지방도시 말단 공무원이 중앙무대에 초대된 것이다! 호!그런데 말 끝이 조금 이상했다. 오긴 오는데 와서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나더러 강의를 하라는 것이었다. 실무자들끼리 강사로 가장 부르고 싶은 사람 투표를 했는데 거기서 내가 뽑혔다고 했다.     


  기뻤다. 충주시 홍보 사례가 드디어 이 바닥에 소문이 났구나, 전국에 퍼졌고 중앙에도 닿았구나 싶었다. 인디밴드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연말 가요대전 같은 행사에 초대된 기분이랄? 그동안 내가 자리에서 하 홍보가 시늉만 하는 홍보가 아니었구나! 지에서 몇몇들끼리만 웃고 떠드는 매니악한 게 아니구나! 충주시 홍보가 전국의 불특정 다수에게 제법 넓게 퍼졌구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 인구 20만인 지방 작은 도시에서, 그것도 경력이 5년도 안된 어린 직원이 중앙부처를 모두 모은 자리에서 강연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라 생각했다. 굉장한 서사를 갖는다 생각했다.  이 중앙부처 강연은 곧 '충주시 말단 공무원이 중앙부처 공무원 강의'같은 제목으로 보도자료가 나갔는데 나중에 생각지 못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내겐 첫 강의였다. 그 전에 사례발표 같이 30분 안쪽의 비교적 짧은 PT는 몇 번 해봤지만 2시간씩 혼자 떠드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심지어 강의라니. 지금보면 당시 요청이 어떤 명사나 현자를 초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수사례 발표 정도 의미였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는 궁금했을 것이다. 충주시 이상한 홍보를 하는 담당자 정체가. 과연 얘는 공무원일까 공익일까 내지는 잔략일까 아니면 원래 이상한 사람일까하는 호기심. 아무렴 어떤가?마냥 기분이 좋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발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접신 한 것 마냥 10포인트로 A4 16쪽 정도 되는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완성했다. 내가 담당자가 되고나서 지난 6개월간 한 일들을 적었다.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고, 그 결과 이랬다는 식으로. 나중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소리내어 읽어보니 발표시간에도 얼추 맞았다.     

 PPT 슬라이드는 대략 80여쪽이었다. 80여쪽 중 들어간 글자는 전부 다 해서 20줄 이하였다. 대부분 충주시 포스터거나 인터넷 짤방이었다. 아초에 파격적인 행보로 강연을 하게 됐는데 무엇하나 평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보다 직설적이고 직관적이기 위해 노력했다. 재밌는 홍보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 강연이 재미없다면 그거야 말로 모순아니겠는가? 화면마다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 재미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B급 홍보로 알려진 충주시 홍보 포스터의 단순하고 튀는 모습이 발표와 화면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나는 강연장에 오는 사람들도 모두 홍보대상이라 생각했다. 강연장에서 강연을 듣는 이들이 충주시를 기억한다면, 혹 호감을 얻는다면 그 사람들이 사무실로, 집으로 돌아가 충주시 얘기를 할테고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더 강한 인상을 남기고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오감을 최대한 자극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지 생각이 미쳤고 시각, 청각이 내 강연이라면 촉각, 미각, 후각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게 됐던 것이다.     



지금봐도 막 던졌다

  원래는 발표하는 날에 충주시 대학찰 옥수수를 서너 박스 삶아서 가져가려 했다. 그래서 강의 시작 전에 청중이 보는 앞에서 상자를 개방하고 김이며 냄새를 폴폴 풍기다 하나씩 나눠주면서 시작하려고 했다. 크흐.   충주시는 그 전에  오프라인에서 옥수수, 고구마 등 농특산물을 홍보했고 경품으로 나눠줬었다. 당시 온라인에서 충주시 최대 유행어는 옥수수 털어도 돼요?’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거래하는 농가가 충주 도심에서 너무 멀어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서울 가는 동선이 1시간 이상이 늘어났다. 택배를 보낼까도 생각했는데 옥수수가 많은데 거리는 멀다보니 비용이 상당했다. 냉동 진공포장 옥수수인데 미리 보냈다가 그쪽 식당에서 쪄달라고 할까싶어 식당까지 알아봤지만 시원찮았다. 그 많은 인원이 먹을 대량의 옥수수를 강의 시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먹을 수 있게 쪄 가려면 식당용 큰 솥에 물을 올려서 오랜시간 끌여야했다.(물이 많으니까) 하지만 강의 시간이 오후 2시 경이었기 때문에 식당은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해야했기 때문에 옥수수를 삶아줄만한 식당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판매처에서 아침부터 무리해서 삶아간다한들 옥수수가 식으면 최고의 맛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갓 삶은 옥수수에서 나오는 김, 냄새, 그리고 식감까지 재현하고 싶었다.


 제품을 최고의 상태로 보여줄 수 없다면 안보여주느니만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어설프게 충주시 옥수수를 홍보한답시고 먹으라 권했다가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제품의 차별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어, 뭐 평범하네’라고 생각한 순간 거기 있는 사람들이 충주시 옥수수를 굳이 다시 사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 잘 됐던 홍보도그저 과장광고로 치부될 것이다. 그럴바엔 다른 제품을 홍보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사과즙을 준비했다. 사실은 옥수수보다도 사과가 충주의 오랜 특산물이다. 당시 충주시 페이스북 첫 화면에는 까만바탕에 형광색, 원색에 기본폰트 글씨로 큼직하게 충주시 대표 콘텐츠를 적어뒀었다. 그 중에는 ‘믿음, 소망, 사과. 사과는 충주 사과’라는 카피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과즙은 옥수수보다 값 싸고 현장에서 먹고 뒷정리까지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여러모로 사과즙이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사과즙을 여러박스 사서 차에 싣고 올라갔다.      


 강의장에는 미리 도착했다. 강의장을 미리 둘러봤는데 강당 같은 곳은 아니고 직사각형 형태의 평범한 강의실이었다. 화면을 띄워놓고 맨 뒷자리에 앉아보니 앞자리 책상 등에 가려 화면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계기로 이후 발표화면은 설명자막을 위쪽으로 배치하는 등 화면 구상 전반을 손봤다. 그밖에 마이크, 리모콘 등을 확인했다.     


 청중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각 부처 실무자들은 당연하게도 나와 같은 공무원들이었다. 주최한 문체부 직원분들과 함께 강의장 입구에서 사과즙을 하나씩 나눠드렸다. 그리고 청중 틈에 섞여있다가 슬그머니 걸어나와 강의 시작다. 문체부에서 나를 소개해주시면서 “지금 드시는 사과즙은 충주시에서 발표자가 준비한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분위기가 금방 달아올랐다. 그리고 내 첫 강의가 시작됐다.                


강의 제목은 '나라면 보겠는가?'로 정했다. 첫화면, 까만화면을 가득 채운 궁서체에 청중이 술렁거렸다. 솔직히 민망했다. 다만 직관적으로 너 같으면 보겠냐? 내가 봐도 이게 재미있냐?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내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뱉어내자 생각했다. 큰 화면에 내가 그린 대한민국 지도가 나타났다. 거기에 충주를 표시했는데 대한민국 지도가 피카츄 모양을 하고 있다. 100정도 강의를 하는 동안 내가 의도했던 모든 곳에서 웃음이 나왔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100분간 계속 웃음이 터졌고 다행히 지루하지 않게 강의를 마쳤다. 강의 후에는 열띤 질의응답까지 내 첫강의는 두시간을 넘겨서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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