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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n 08. 2023

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사랑했던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니

개인적으로 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친구가 되는 것은 이별의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은 있다. 집착 없이 원만히 헤어졌어야 하고 이별에 대해 잘 받아들였어야 한다. 마음 정리가 백 프로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둘 중 한 명이 연인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즉 타인의 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친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귄 기간이 짧았고 그래서 연인으로서 서로 그렇게 많이 알아가지 못했다면 친구로 남아서 조금 더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친구로 알고 지내면서 다시 연인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요량은 아니다. 조금은 그런 요량이었더라도 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연인에서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친구에서 연인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은 어느 정도 환상이 개입하는 일이고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가 부여한 나름의 특별한 이유로 신뢰를 주기로 선택하는 일이다. 한 번 쉽게 헤어졌으면 깨져버린 환상과 신뢰를 다시 이어 붙이기는 쉽지 않다.


친구로 지내면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고, 단기적으로는 그 사람한테 준 정을 한 번에 회수하지 않아도 돼서 공허함이 줄어든다. 이성으로서의 감정보다도 편안하고 나와 비슷한 점들이 있는 것 같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적이 있다. 만약에 동성이었어도 똑같이 친구가 되고 싶었을 텐데 이성인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면 연인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나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매우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런 감정을 느낀다. 어떤 사람과 통하는 것이 있을 것 같다는 감정.


이성에게 이런 감정을 느꼈다면 남자로 느껴지나 느껴지지 않나가 두 번째 문제이다. 이성으로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통하는 점이 있을 것 같다, 친해지고 싶다의 감정으로 아주 짧게 만났다가 헤어진 적이 20대 때부터 몇 차례 있다. 그중 몇 번은 그 이후에 친구로 지냈다. 학교에서 만난 사이인데 집도 가깝고 그래서 일 년 이상 친하게 잘 지낸 적도 있었고, 헤어지고 한두 달 정도 가깝게 지내다가 각자 새로운 연애를 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진 경우도 있었다. 관계는 유한했지만 그 시기에 만큼은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긴밀하게 알아가면서, 연인이면 쉽사리 하지 못할 이야기도 하고 더 자연스럽게 성격도 보여주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고, 한편으로 연인 관계라는 가능성에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바꿔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원래 연인이 아니라 친구로 지냈을 인연인 것 같다. 오래 사귀었던 사람이나 짧게 만났더라도 친구가 아닌 이성의 감정으로만 만났던 사람들과는 헤어지고 자주 본다거니 하지 않았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나를 꽤 좋아해 줬는데 내가 헤어지자고 한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당연히 하지 않았다. 미안하니까. 다시 한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차인다면, 그깟 자존심보다 내 마음의 기승전결이 더 중요하니, 안전하고 성숙한 믿을만한 사람이라면 친구로 지내면서 마음을 싹 정리할 시간을 가져도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감정에 대해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감정에 대해 정면돌파해서 끝까지 느끼고 비교, 분석, 분류, 통계화해서 설명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가져가는 것을 좋아하는 천생 작가(변태) 재질이지만.


오래 만났고 사랑했던, 나에게 가족이었던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때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묻고 아주 가끔 만나기도 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처음 헤어지고 나서는 우리가 친구로 만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친구로도 잘 맞다고 생각했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그 마저도 미안해서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한 때는 기승전결을 다 하지 않았기에 아주 가끔 연락하는 친구로 남았던 것이고 이제는 연을 다 해버렸기에, 연락을 해서 서로의 마음을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하거나 헤집어 놓지 않는다.


다시 전처럼 예쁘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연락을 해서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묻거나, 만나서 시간을 보내면 너무 마음이 아파질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이 다칠까봐서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못한다. 헤어진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그런데 사랑이 먼저 끝난 건지 헤어져서 사랑을 끝내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 시절의 나의 조각과 그의 조각은 물리적 세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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