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하러 내 발로 철학원에 찾아간 이야기
이름을 바꿔야지 결심을 했었다. 불리는 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도 마음에 안들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는 흔해서 싫었는데, 연애를 시작하고 내 이름에 애정을 담아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기니 나도 내 이름에 조금은 정이 갔었다.
요즘에는 내 공식적인 이름은 그저 사회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불리는 이름, 혹은 밖에서 만났는데 한글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 학교에서 만난 친구 말고는 영어 관련 대외활동을 예전부터 많이 했고 내가 스스로를 해일리라고 소개하기도 하니까 해일리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닉네임이자 영어 이름인 해일리로 소개하고 해일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좋았다. 공식 이름은 주어진 것이고, 해일리는 내가 만든 이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생이랑 친척동생들 모두와 달리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에게 정이 없으니 내 이름에도 더 정이 안 갔다.
미취학아동 시절에 한자를 좋아하는 친할아버지에게 이름 한자를 배웠는데, 이름의 한자 뜻이 그다지 매끄럽게 연결되어 어떤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름 한자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생겨서 언젠가는 꼭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점차 강화됐다. 인생이 뭔가 엄청 괴롭고 뜻대로 안 됐던 2021년부터 철학원에 가서 이름에 대해 물어보고 이름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뤘다. 작년부터 올해 초에 여러 일들을 겪고 나서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결심이자 올해의 목표가 되었다.
어제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늦잠을 자고 밤에 커피를 마셔서 잠들지 못한 것도 있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감정이 침전했다. 많이 우울했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연민이 들면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소개팅 등 인만추를 하지 않고 지내는 동안 누군가가 눈에 들어와서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는 일은 드물고,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나도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 좋아하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싫었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성격, 인품, 외모, 직업 등 뭐가 됐든 어떤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먼저 관심이 생겨 그 사람을 좋아하면 스스로를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데, 누군가가 나한테 보이는 관심에 조금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조금 관심을 보인 것뿐인데, 그 사람을 굉장히 좋게 보려고 했던 것도 같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마치 애정결핍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믿고 좋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나에게 진심을 표현하고 마음을 써주는 모습이 좋아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특히 브런치에 나의 뇌신경학적 특성을 드러낸 이후에 나를 있는 그대로 누군가가 받아들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전보다 조금 더 마음을 주는 것 같았다. 어쩔 땐, 내 글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진하게 관심을 보이면, 내 글을 읽고 나서 마음이 변하면 어떡하지 하고 꽤나 초조해했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한 사람도 아니면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괜히 간절했다. 이런 내가 슬프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면, 조금 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면, 가족이 나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해 준다면 새로운 사람이 보이는 관심을 확대 해석한다거나 관심에 격하게 반응하지 않고 초연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결핍이란 있다가 없을 때 느껴지는 것이고 나는 원래부터 애정을 느꼈던 적이 없기에 실제로는 결핍감은 느끼지 않는다. 그저 상상을 할 뿐이다. 내 모습에 의심이 들 때 그쪽으로 스스로 연관 짓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면 이 고리를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원래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이제 진취적으로 실행해 옮길 힘이 생긴 것뿐이었다.
내 이름에 고유한 좋은 뜻은 없고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직업과 삶의 방향을 내 이름에 담아서 만들었다는 아주 합리적인 추론을 했다. 내 이름은 그 사람의 자아의 확장판을 반영할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를 대하는 것도 그랬다. 나의 고유의 가치, 타고난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아의 확장판을 원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와는 관련 없는, 의미 없는 이름의 한자를 바꿔야 한다고 꽤 오래 생각했고, 올해 들어서는 힘들고 아팠던 나의 과거와 확실하게 분리되고 싶어서 이름을 아예 바꾸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서 새벽에 철학원 겸 작명소에 네이버로 예약을 했다. 오늘 아침에 주말에만 가능하다고 회신이 왔다. 나는 오늘 철학원에 가서 사주를 보고 작명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곳을 찾아서 결국 갔다 왔다. 마음을 먹었으면 어디서 하는가 보다 언제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평소에도 어디서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둔다거나 노력을 쏟지 않고 적당히 믿을 만한 곳을 느낌으로 찾는 편이다.
오후에 휴가를 몇 시간 내고 사주를 보고 작명을 의뢰하고 왔다. 사주에 대해 설명을 쉽고 친절하고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잘해주시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어느 누구보다 납득이 되게 조언해 주셨다. 나의 새 이름 작명이 기대가 된다.
불리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등록되는 이름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존의 내 이름이 어떤지도 살짝 물어봤는데 여기저기서 이미 균형이 깨져있는 이름이었다. 사주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지 않고 넘치게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가지고 있는 한자를 가지고 있어서 무조건 꼭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바꾸라고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먼저 추천받은 것은 아니다. 사주에도 나는 아주 주도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내 이름도 내가 알아서 바꿀 것이다.
나는 온갖 귀찮음을 무릅쓰고 공식 문서상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번거로운 절차를 행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때문에 침전한다거나 내게 주어진 것을 탓한다거나 하지 않고 내 힘으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을 주도하겠다는 강한 결심이자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