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고통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행복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가?라는 주제였다. 나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을 따라가 봤다. 나는 행복하다. 행복이 기본적인 상태이다. 올해 1월에 ADHD약과 우울증 약을 잠시 처방받아서 복용하고 있었다. 나는 우울했다. 우울감의 바닥으로 침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울감의 끝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불행하고 희망이 없어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우울감에 침전해서, 그 감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음을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우면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의 나는 밝을 때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었다. 밝은 날과 우울한 날을 오갔다. PMS도 심했다. PMS 기간에 주로 우울했고 죽음에 대해 스치듯 생각했다. 내 우울감의 근원에 대해 안다. 직장 내 괴롭힘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물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끝이 나는 고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몇몇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을 때, 중3 때 그 학생들 중 몇 명과 다시 같은 반이 되어서 다시 그들을 봐야 하고, 그들이 나를 본다고 생각했을 때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 다닌다고 했다. 자퇴에 대해 알아보긴 했는데, 결국 중학교는 끝까지 다니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잠시 텀을 가졌다. 과거의 괴롭힘과 고통은 상흔을 남기지만, 학교에서의 괴롭힘도 직장에서의 괴롭힘도 시간이 지나면 끝이 나는 괴롭힘이고 고통이었다.
그 괴롭힘의 기억이 우울감의 더 근본적인 뿌리는 아니었다. 내가 느꼈던 고통에 대해 정서적인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의 나, 중학교 3학년의 나는 고통을 혼자 겪었다. 어떤 일을 겪어서 감정이 어떤지 가족한테도, 선생님한테도 이야기를 해서 정서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감정에 대한 말을 하면 무시해 버리는 엄마의 태도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그 어떤 정신적인 고통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고, 여러 가지 증상들로 고통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엄마는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몸이 아파도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해서 학교에 그냥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엄마도 조금은 달라져서 아프면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정서적인 외로움이 나를 무력하게 했다.
가족에게 기대했던 정서적인 울타리를 밖에서 열심히 찾았다. 그래서 20대부터는 연애를 열심히 했다. 나이차이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차이가 어느 정도 나면 마음이 더 좋았다. 의지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었다. 친구한테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연인이 없으면 가족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음에 구멍이 그렇게 큰데 연애가 잘 될 리가 없었다. 한동안 지독한 회피형과 언제든 쉽게 도망갈 궁리만 하는 겁쟁이들만 만났다. 그러다가 “사랑을 알려준 연애”를 하게 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점차 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우정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연인 관계를 종료할 결단력이 없었을 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유일한 정서적인 가족이기에 떠날 수가 없었을 때 괴로웠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상태는 나를 고통받게 하는 것들에서 하나씩 멀어질 때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해서 더 이상 나쁜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을 때,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게 됐을 때, 부서를 옮겨서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괴롭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나갔을 때 찾아왔다. 자주 싸우던 연인과 헤어져서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을 때,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 삼아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던 사람들에게서 멀어졌을 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다. 부정적인 가정환경에서 비로소 물리적으로 벗어났을 때, 갑질과 일 떠넘기기, 팀원 간의 갈등, 편 가르기가 만연하던 부정적인 업무 환경에서 벗어났을 때 나의 기본적인 상태가 행복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행복은 내면에서 찾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너무나 부정적이면 행복으로 잠시 도피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행복하기는 어렵다. 고통받고 있는데 행복할 수는 없다. 고통에서 멀어지고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부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고, 내가 나의 본모습을 인정하고 순리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난 후, 행복이 기본적인 상태인 사람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니 깨달음이 왔다. 사람은 원래 행복하도록 되어있다고. 행복을 내면에서 찾는 것이라는 말의 참뜻은 주변 환경이 어떻든 간에 마인드 컨트롤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불행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단력과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최선을 다해 불행하게 하는 것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서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그것들을 하나둘 떠날 용기가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올해의 나는 우울감으로 침전하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우울감이 오더라도 전처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깊이 침전하지 않는다. 요가를 하니 신체적 뿐 아니라 정신적인 PMS 증상도 거의 없어졌다. 갑자기 가족들이 나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불행했던 연인관계가 종료되었고, 직장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도 더 이상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지 않는다. 만약 함께 일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내 힘으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나를 근원적으로 외롭게 하던 부모님에게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 마저도 완벽하지 않은 하나의 개체로서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부모님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에게 주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적당한 거리를 두기로 했다. 결핍의 근원을 아예 도려내버리니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는 일이 줄었다.
글을 쓰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나를 잘 알 수 있게 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많이 하면서 행복감을 충분히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