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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감정으로 나를 끌고가는 의외의 것들

어둠주의보

by 해센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한국드라마는 특히 거의 안 본다. 드라마에 꼭 등장하는 어떤 장면들을 보면 따뜻한 장면인데 나는 슬퍼서 너무 많이 운다. 슬퍼지려 하지 않아도 때로 슬픈데 굳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안보려고 한다.


친구와 밥 먹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친구와 대화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다. 혼자 밖에서 밥먹을 때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옆사람의 대화가 안들리게 밥을 먹어서 괜찮다. 그런데 친구나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한다. 어떤 주제가 나를 건드려 생각을 그 쪽으로 몰고 간다. 슬프게 만든다.


내가 외면하려 하는 것들이 드라마나 타인의 대화, 때로는 누군가가 꺼낸 주제로 등장할 때 혼자서 어둠 속을 헤멘다. 그 자리에 있지만 표정이 들키진 않을까 걱정하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드라마에 나오는 저 사람, 옆 테이블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 테이블에서 이 주제를 써내는 사람의 삶에 대해 상상해본다. 나와는 아주 완전히 다른 정서겠구나, 내가 종종 이렇게 힘든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전혀 모르는 감정이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행복한 타인들처럼 느껴진다. 때로 타인의 실패, 아픔에 공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같지 않잖아라고 속으로 말한다. 내가 너였으면 행복하겠다, 그리고 사실 어떤 일로 힘들다고 말하는 중에도 너의 본질적인 행복이 보여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나의 긍정은 생존이라고 느껴진다. 세상이 주는 것 하나하나 누리며 그때그때 조금씩 행복할 수 있으니까. 드라마 안보고, 타인의 대화 안듣고, 그 주제만 누가 안꺼내면 난 괜찮으니까. 그리고 깊은 관계만 안맺으면 덜 힘드니까. 결국은 관계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구멍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충만함은 나는 다시 다르게 태어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괜찮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누군가를 만나면 힘들었다. 괜찮지가 않거나,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다. 불안함과 지침의 사이를 늘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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