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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비를 맞았다

우산이 없는 기분을 살아내는 법

by 해센스

우산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았다.

20분 동안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왔다. 편의점이 있고, 우산이 필요하기도 해서 우산을 사도 되는데 그냥 비가 맞고 싶었다.


낮부터 느끼던 우산이 없는 기분을 한껏 느끼고 싶었다. 낮에도 비를 맞았지만 모자랐다. 젖을 정도로 맞고 싶었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면서 몸이 조금씩 젖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전이었으면 울었을 기분이 들어도 울지 않을 것 같았다. 울지 않을 거라면 비에 젖기라도 하고 싶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우는 것보다는 비에 젖는 것이 나았다. 비를 맞으며 걸어보니, 가라앉는 기분을 산뜻하게 느끼기에 비에 적당히 젖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산이 없는 기분…


어제 팬케익을 먹으니 우산이 있었던 느낌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산이 없는 느낌이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드리웠다.


우산이 없는 것보다 지치는 기분은 우산이 있는 척하는 것이다. 우산을 사느라 애쓰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 인생처럼 우산이 없으면 비 오는 날 나가지 않거나 우산을 어디선가 사고 싶지 않았다.


우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씩씩하게 걷고 싶었다. 우산이 없는데 있는 척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산이 없고 같이 씌워줄 사람이 없다면 그냥 비를 맞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 마음 편하자고 우산이 있는 척했다.


이 정도 비는 우산이 없어도 맞기 좋았다. 양팔이 자유롭고 팔에 떨어지는 비 느낌이 좋았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내 몸도 같이 젖으니 조금이나마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사람 사는 세상 말고 내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자연과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들의 세상과 연결된 느낌. 가방에 전자기기가 없었다면 더 마음껏 편안하게 비를 맞았을 것이다.


깨끗한 비가 내린다면 부슬부슬 비 오는 날에는 그냥 비를 맞고 싶다. 깨끗한 비가 아니어도 때로 그냥 비를 맞아야겠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 주는 모든 것들은 다 자연스럽다. 다 마음을 괜찮게 해 준다. 햇살도, 비도, 구름도, 달도…


비를 맞으면 괜찮을 거야.
너를 위해 적당한 강도로 흩뿌려줄게.
우산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오히려 자유롭고 시원하다는 것을 알려줄게.


우산이 없다고 느낄 때 나에게 필요한 건 우산이 아니라 비가 내게 온몸으로 주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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