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제주도민이 되다

소설로 배우는 제주도 문화와 부동산

by 루파고

삼 개월이 지났다. 한 달만 자유를 만끽하자던 나재주는 벌써 한 달째 백수로 지내고 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제주를 많이 접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제주에서 뭔가 색다른,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일 것 같아서였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수익활동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한 달 살이를 운영하여 적지만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삼 개월 째 그는 그저 백수다.

먼바다에 영혼을 투척해 둔 지 오래다.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나재주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 가수면상태에 접어들던 그는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며칠 전 별채에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치고 돌아간 지민이었다. 예쁜 얼굴에 백치 같은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 손님이다. 아내가 질투를 할 정도로 나재주와는 죽이 잘 맞았다. 만약 한 달만 더 지냈으면 아내가 오해를 살 수도 있을 정도로 살가운 사이였다. 지민의 성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오지랖 넓은 나재주의 성격 때문이었다. 지민은 제주에서의 삶이라는 로망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제주살이에 합류한 지민은 나재주의 가족과 부대끼며 가족처럼 지내다 육지로 돌아갔다.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민의 빈자리는 티가 났다. 이모처럼 따르던 아이들이 더 섭섭해했다. 그런 지민의 전화는 나재주에게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이. 서울지민! 잘 지내나? 벌써 제주지민이 그립네. 그런데 어쩐 일이야?”

나재주는 반가운 마음을 감추려 뻣뻣하게 말했지만 친근한 기운은 감추지 못했다.

“사장님은 참~ 반가우면 반갑다고 하세요. 우리 사이에 질질 끄는 것도 그렇고 해서 직설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다름이 아니고요. 우연히 제주 쪽에 관련된 일을 하는 선배와 만났다가 사장님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네요. 혹시나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선배 회사에서 요즘 제주도에다가 투자를 엄청나게 하고 있다는데 일 잘하는 사람이 너무 없다잖아요. 그래서 제주 내려가서 일자리 못 찾고 백수 된 나름 쓸 만한 사람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당장 보자고 하네요. 어떠세요? 저도 선배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나보시면 좋겠어요. 선배도 좋은 사람이고 사장님도 좋은 사람인 것도 같고 해서 말이죠.”

지민이 나재주를 들었나 놨다 하며 선배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는 지민의 선배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제주와 관련된 업무를 한다니 반갑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겼다. 나재주는 고민할 이유가 없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하고 약속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백수 생활도 삼 개월쯤 되자 쉬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싶었던 그다.


지민의 선배와는 첫 만남부터 호감으로 시작되었다. 지민이 어찌나 양념을 많이 쳐 놓았던지 나재주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칭찬 일색이었다. 어떤 면으로는 자기 자신보다 지민이 자신을 파악한 게 더 사실 같다는 생각이 들어 타인에게 자신을 읽힌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류심사, 면접과정은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순식간에 진행됐다. 그의 근무지는 판포리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경사면이 있긴 했지만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면 되는 거리다. 사무실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사무실에는 카페가 하나 딸려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건축가라면 지어보고자 했던 그토록 꿈꾸던 이상향이 녹아든 건물이었다. 나재주는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주변부터 한 바퀴 둘러보았다. 주변엔 귤나무가 가득하다. 흔히 보았던 귤밭과는 많이 다르다. 빽빽하게 심어진 밭이 아니다. 듬성듬성 귤나무가 심어져 있고 사이사이로는 벤치와 테이블, 흔들의자, 유리온실, 조형물, 해먹 등 어디든 쉴 곳 투성이다.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이 촘촘하게 묻어 있었다. 제주 안의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분 정도 건물 외곽을 감상하다 돌아가니 정문 앞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아마도 현장 관리인쯤 되어 보였다. 그가 다가서자 두 사람이 그를 반기는 듯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한참 기다렸습니다. 일찍 오실 줄 알고 나왔는데 벌써 오셨었군요.”

그들은 한건축 대표와 이희웅 소장이었다. 그들의 환대에 어쩔 줄을 모르는 나재주의 모습이 초등학생처럼 순수해 보였다. 소장은 첫인상부터 흡족한 듯 보였다. 한건축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

나재주는 그들이 누군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소장은 이미 눈치를 챘는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나재주에게 건넸다. 그의 명함에는 회사의 로고와 함께 이희웅 소장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다. 그의 상사였다. 나재주는 그의 허술한 외모에 오판을 한 것에 후회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재주는 ‘어리석어서’라는 표현을 잇지 못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 소장의 미소 덕분이었다. 소장은 나재주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와 뜻이 맞는 분이 오신다고 해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우리 함께 제주를 제주스럽게 만들어 보시죠. 아니군요. 제주를 제주로 남을 수 있게 잘 보전해 보시죠.”

소장은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건축은 소장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얼핏 알 수 있었다. 건축인허가를 받는 날에는 배 회장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소장은 한건축의 면모를 담보로 인크루트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건축은 배 회장과 이희웅 소장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여러 과제를 통해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익숙해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행로에 함께 할 사람이 한 명 더 나타났다. 바로 제주를 사랑해서 제주도민이 되고자 했던 나재주다. 그들은 비록 제주도 출신이 아니지만 제주도 토착민만큼 혹은 그 이상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를 제주스럽게 지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제주만의 색. 제주색을 그들은 발견하고 발굴하고 보전하고 발전시켜서 세계의 제주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 꿈을 꾸는 자의 것이다. 제주의 미래는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위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지켜질 것이다.





1. 서문

2. 긴급회의

- 제주의 장묘문화

- 제주신화와 오름

- 진입로를 막아 선 묘적지

- 묘적지, 무연고묘지

- 국가기관 소유의 묘적지 인수

3. 급매물

- 제주도 주택문화의 이해

- 계약서 없을 경우 계약금 반환에 대한 사례

- 문화재와 개발 인허가문제

- 제주도 토지 특성

- 농지 취득 시 알아 두어야 할 정보

4. 건축업자가 되는 길

- 괜당이란

5. 선물

- 제주도 제2공항에 대한 단상

- 김녕 도시계획 등 정보

- 예래지구 문제

6. 고뇌

- 제주도 농업

- 영어교육도시와 제주신화월드

7. 오늘은 잔금 치르는 날

- 제주은행 서울(육지)지점 정보, 주택담보 대출 시 유의해야 할 점

- 지도상 거리, 물리적 거리, 과거와 현재의 교통편

8. 푸념

- 곶자왈이란, 곶자왈 훼손에 관한 의견

9. 배 회장의 서류

- 중산간지역의 훼손, 골프장 건설로 망가진 한라산

10. 올 것이 오다

- 토지거래 시 유의할 점, 세금문제, 다운계약에 관한 지침

11. 제주도민이 되고 싶어요

- 건축물 양성화 신고 관련 내용, 법규

- 제주도 건폐율과 용적률

- 건축법상 진입로 규정

12. 제주색 건축

- 제주도 건축법 개정안

- 보전등급, 상대보전, 절대보전에 관한 법률

- 절대보전/상대보전지역

- 특화경관지구(구. 수변경관지구)

- 오름에 붙은 토지의 규제

- 동굴보호에 묶인 토지

-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

- LNG기지와 가스관 공사

- 지하수 문제

13. 실행력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

14. 귀한 존재라는 걸

- 농지전용/산지전용

15. 돼지 잡는 날

- 진입로 관련법안/일반토지사용승낙서와 영구토지사용승낙서

- 제주도 일자리 문제

- 제주도 커피숍 분포

- 제주도 교육환경

- 제주살이, 한 달 살이 그리고 제주도 인구의 진실

16. 건축업자의 길

- 제주색 묻어나는 건축물들

- 제주도 행정구역 편제

17. 현실성 없는 정책도 비극이다

- 제주도 양돈과 환경오염 문제

18. ROLEX

- 제주도 농가주택과 자폐증의 상관관계

19. 제주살이

20. 올레의 비밀

21. 푸른빛 더러운 제주바다

22. 오수관 있나요?

- 오수관, 상수관 관련 내용

23. 제주도민이 되다

2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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