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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Sep 02. 2019

Her Story - 세 살 버릇 아흔까지


1936년에 유치원, 1937년에 소학교에 들어갔다. 겨우 일고여덟 살이니 학교에서는 막 공부를 시키지 않았고 나도 당연히 공부만 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선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일본 선생님들은 일본식으로 교육했다. 유치원에서는 일본어로 배우지 않았던 듯하다. 소학교 저학년 때는 조선어를 배우는 시간도 있었으나 고학년으로 접어드는 어느 순간 일본어가 완전히 국어가 되었고 철저히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우리말만 썼다. 어머니는 책상에 나를 붙잡아 앉혀 놓고 한글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게 자연스레 한글을 배우고 떼었다. 우리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공부해라"라는 말을 했고 통지표 나오는 날만 '검열'을 했다. 성적이 적혀 있는 통지표를 가지고 집에 오는 날이면 회초리를 옆에 두고는 "가져와. 이래 내봐. 어디 보자"라고 했다. 잘못했으면 종아리를 치려하셨는데 맞은 기억은 없다. 성적은 보통이었나 보다. 당시에도 요즘 세대의 자습서 원형이라고 할 만한 보조 학습서도 있었다. 집에 와서 공부를 할 때는 자습서를 보기도 했지만 주로 교과서를 자꾸 되풀이해서 보는 것이 전부였다. 공부보다는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이 재미났고 흥을 돋게 했다. 어머니가 잔소리한 기억은 없다. 부모님은 매사에 강압적이거나 강권하지 않았고 나도 강한 의견을 내고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소학교 4학년 때 선생님들이 예의범절, 생활규범, 절약정신 등을 가르친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까지 그때 배운 대로 주변에 예의를 차리고, 규칙이라면 지키고, 알뜰하게 절약하며 살아왔다. 특히 일본인이었던 가사 선생님이 생각난다. 꼭꼭 씹어 먹으라고 가르치며 음식에 침이 많이 섞여야 위로 넘어가 소화도 잘되는 거라고 소화 과정을 설명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오래 씹어 먹고 자식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조용하고 차분한 선생님으로 학생들이 따라오도록 자분자분 설명했으며 바르게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양하게 수놓는 법도 배웠다. 나의 아이들이 엄마는 뭐든 척척 태어나면서부터 다 하는 줄 알았겠지만 수놓기는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손에 익힌 것이다. 

이때 배운 것들이 머리에 새겨져 있고 그때 가르침대로 여태껏 살았다. 그 가르침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이라 어느 나라의 초등학생이라도 배워야 할 덕목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아흔까지도 그 습관대로 산다. 버릇과 습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언제나 어려운 시기를 거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근검절약하고 열심히 일하는 법을 따랐고 그렇게 실천하면서 살아왔다. 자식들이 몇 해 전부터 손에 힘도 없는데 조금이라도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전기 코드를 아픈 손마디로 무리하게 잡아 빼려 애쓰거나 속옷을 기워 입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되었다. 아흔이 되니 백내장 수술을 하고 녹내장으로 한쪽 눈이 갑갑하고 안 보여서 눈 때문에 서서히 바느질은 손에서 놓게 되었지만 전기 절약하기는 여전히 실천하고 있다. 

1941-42년 즈음 소학교 친구들과 함께 기념 사진. 나는 오른쪽 안경 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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