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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Sep 07. 2024

드디어 루틴이 생겼다

회사 밖에서의 일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한 주를 평일과 주말로 단순하게 나눠본다면, 나의 평일 아침은 그보다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나의 아침은 미라클 모닝이란 저 세상 이야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우 수동적으로 시작된다.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두 번의 알람을 끄고 나면 물 한 모금 마신 후 TV를 켠다. 주로 트는 영상은 예능이나 유튜브 등으로 이미 한번 봐서 집중하지 않아도 되지만 들리는 말소리가 유쾌한 것들이다. 그날 약속이 없으면 화장은 생략, 안경을 장착하고 출근 버스를 놓칠세라 오늘도 달리며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9~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만 7년 가까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모바일 게임은 카트라이더 외 한 적이 없고 (카트라이더도 몇 번 하다 그만두었다), 영상도 잘 보지 않는다. 대체로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거나,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이나 뉴스를 보거나, 그도 아니면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감은 채로 아침의 1시간을 평화롭게 보낸다. 종종 업무 메신저로 속이 시끄러워질 때가 있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K-직장인이 그렇듯 나 또한 커피를 내린다. 여름에는 아이스커피,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로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는 나름의 의식을 평일 아침마다 행한 후 회사에서의 아침을 요이땅- 시작한다. 그렇다고 오전 내내 집중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동기들과 메신저도 하고, 상사 몰래 딴짓도 조금씩 하면서 아침 업무를 쳐내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그리고 또 정신없이 보내다 퇴근 시간.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회사에서의 루틴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이토록 단순하다. 한편으로는 단순하기에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 나의 평일은 어떠어떠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무실 밖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루틴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 구미가 당기는 것을 했다. 2023년 초까지는 그랬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많이 쏟고 나니 사무실 밖에서는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봤지만,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요가를, 클라이밍을, 스페인어를, 그 외 무수히 많은 것들을 그만두었다. 물론, 클라이밍 같이 더 하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초반의 어려움을 넘어서면 흥미를 느낄법한 활동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맞닥뜨린 초반의 장애물을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넘어야 하나, 싶었던 나는 조금 시도해 봤다가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발을 빼고는 다른 것들을 찾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새로운 취미를 갖기 어려웠다. 2022년까지는 그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3년 3월에는 반드시 올해 운동을 루틴으로 삼겠다 다짐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필라테스였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혼자 하는 운동에 당최 흥미를 못 느끼는 편이라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도 오래 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약 1년 반을 하고 있다. 사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필라테스에 재미를 붙였다기보다는 성실하게 가지 않은 결과로 남아버린 잔여 수강 횟수를 홀라당 날리기가 아까웠던 것이 컸다. 그래서 재결제하는 시점에 ‘잔여 수강 횟수를 이월하면 더 열심히 다녀하지!’ 하고 마음먹는 것이다. 그렇게 1년 반을 수강하면서 간간히 중급 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정도에 왔다.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 중에서는 실력이 매우 매우 매우 느리게 올라가는 편이지만,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한다. 초급반을 넘어선 자체가 기적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하고 있다. 운동 시작 초반에는 퇴근 후에 필라테스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괜히 겸연쩍었다. 몇 개월 하지도 않았고, 얼마나 할지도 모르겠기에 스스로가 좀 찔린 탓이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퇴근 후에 필라테스한다! 고. 2023년 이후 가장 큰 수확이다. 수십 번의 실패를 거쳐 드디어 나도 꾸준히 하는 운동이 생겼다. 여전히 나이롱 수강생이긴 하지만.

사실 여전히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냥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힘을 얻는다.


일본어 또한 사적인 루틴 중 하나가 되었다. 매주 주말 아침, ’오늘은 가지말까…‘ 수십 번 고민하지만 오늘 빠지면 허공으로 날아가버릴 회사의 외국어 지원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진다. 가자, 가자… 그렇게 몇 개월을 했고, 드디어 더듬 더듬이지만 말하고 싶은 문장 몇 개 정도는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히라가나를, 가타카나를 다시 공부하면서 ‘이거 또 얼마나 하려나’ 싶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도 가을이 되었고 나 또한 불성실하지만 그래도 끈을 놓지 않은 결과를 보고 있다. 어려워서 스트레스받던 초반을 넘어서니, 조금 할 줄 아는 데에서 오는 약간의 흥미도 맛보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일본어 그 자체보다 큰 수확인 것 같기도 하다.


자기 계발에 게으른 사람이라, 이 외에 루틴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다. 그렇지만 뭐라도 꾸준히 할 때의 긍정적인 감정들을 이번에 느꼈으니, 재미없어 보이지만 의미 있다면 도전해보려고 한다. 사실 실패한 루틴이 너무 많아서 글로 풀어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가뭄에 콩 나듯 성공한 것들을 톺아보며 올 가을도 잘 보내자 다짐한다. 한두 가지 즈음 더 시도해 보자는 소소한 결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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