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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3. 2021

마지막 다문화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21년 2월, 다문화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마무리해야 했다. 3월부터는 세종학당재단 파견 교원이 되어 베트남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세종학당재단 상반기 파견 교원은 1월부터 해외 파견을 가고, 교원은 출국일에 맞춰 재단과 계약을 시작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파견을 못 가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되어 파견 학당의 개강일에 맞춰 계약을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는 세종학당이 3월 중순에 개강한 덕분에 1, 2월에 다문화 아이들을 더 가르칠 수 있었다.


나에게 익숙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에서 다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 또한 배운 점이 많았고, 즐거웠고, 보람도 느꼈다. 성인들만 주로 가르치던 내가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가르치게 되면서 아이들 나이와 수준에 맞는 한국어 교육 방안을 고민하고,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 그리고 가끔 엉뚱하면서도 재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잃어버린 동심 찾은 것 같아 즐거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코로나 19 때문에 암울한 현실을 잠깐 잊어버릴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보며 교사로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


해영이가 그린 한국어 학급 생선들. 해영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잘못 말한 '생선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생선님'에 꽂혀 버렸다.


해영이와 진규, 경수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기 일주일 전에 다음 주가 나와 함께하는 마지막 한국어 수업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3월부터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했다. 해영이는 ‘아, 왜요...’라고 하며 살짝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매우 아쉬워했고, 진규도 ‘어? 어...’ 하며 당황했다. 하지만 경수는 살짝 놀라면서도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경수 : 아...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선생님이 궁금하긴 해요.


해영이는 공책에 편지를 써서 읽어 주었다. 내용은 그동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재미있었고 나에게 많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직접 보고 싶었지만 해영이는 읽어만 주고 부끄럽다며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을 하기 전날, 우리는 또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종이비행기 놀이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신나게 종이비행기 놀이를 한 다음, 해영이의 제안으로 운동장 달리기 시합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마지막 수업 날, 나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같이 1층 현관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뒷정리를 하고 갈 거니까 너희 먼저 가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 주고 앞으로도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아이들도 나에게 안녕히 계시라며 꾸벅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아이들 뒷모습을 계속 쳐다봤는데, 경수는 그냥 집에 가는 게 좋은지 깡총깡총 뛰며 ‘우와아아’ 하고 뛰어갔다.


교실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보다 5분 정도 늦게 교문을 나섰는데, 버스정류장에 가는 길에 아까 신나게 뛰어가던 경수가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을 봤다. 웃으며 경수에게로 뛰어갔는데, 경수는 눈이 빨개져서 울고 있었다.


나 : 경수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경수 : (말없이 훌쩍거린다)

나 : 혹시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서 그래?

경수 : 흑... 흑.... 네에...

나 : 아까는 기분 좋게 인사했으면서. 갑자기 울고 그래. 경수가 많이 아쉬웠구나.

경수 : 히잉....


집에 가다가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는 울지 말라고, 다음에 더 재미있는 한국어 수업을 할 거라고 그동안 선생님이 많이 고마웠다고 경수를 토닥이며 안아 줬다. 하지만 경수는 끝까지 훌쩍이며 집에 갔다. 새로 오실 선생님이 궁금하다면서, 학교에서는 씩씩하고 밝게 잘 웃으며 인사했으면서 집에 갈 때는 저렇게 울다니, 나도 괜히 마음이 찐해지면서 경수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3월 초에는 작년 10월 30일까지 병설유치원에서 가르쳤던 진수를 만났다. 올해도 기회가 된다면 진수를 가르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유치원에 연락해서 진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감사하게도 허락해 주셨다. 약속한 날 진수를 보러 가니, 진수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놀이도 하고 킥보드 타기 놀이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도 했다. 진수는 그동안 쌓아 왔던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프레디와 보니 이야기도 쉴 새 없이 하고 새로 좋아하게 된 캐릭터 이야기도 했다. 10분 정도만 만난다는 것이 30분이 넘어갔다.


진수 : 아, 선생님, 나 이제 형아 됐는데.

나 : 진수 7살 형아 됐지? 형아 돼서 좋겠다.

진수 : 응. 좋아요.

나: 선생님이 진수 많이 보고 싶었어.

진수 : 나도 선생님 보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싶었어요.


진수와 수업을 못한 지 거의 5개월이 됐는데 진수는 작년에 우리가 같이 놀았던 것 공부했던 것을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해 주니, 감동적이어서 살짝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별의 아쉬움은 만남의 가치를 더 아름답게 해 주는 것 같다. 소중한 인연과 이별할수록 새로 만나게 될 인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만날 학생들도 나와 의미 있는 인연을 맺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은 이별하지만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과 나중에 우연히라도 웃으며 마주쳤으면 좋겠다.


날씨가 풀리고 따뜻한 봄이 되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아름답게 활짝 핀 꽃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도 길가에 핀 목련을 봤는데 갑자기 내가 가르쳤던 다문화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꿈도 저 꽃처럼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하고. 겨울이 지나면 언제나 봄은 오지만, 그 봄은 작년 왔던 봄이 아닌 새로운 봄이다. 새로운 봄이 오고 나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왔듯이 아이들도 지나간 시간보다 더 새롭고 특별한 시간이 오길 바란다. 비록 오래 가르치지 못하고 잠깐 가르쳤지만, 그 인연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었길 바란다.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하지만 나와 지냈던 짧은 시간이 아이들의 밝은 미래에 한 줌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 표지와 목련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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